문화인류학이론 Essay 2
* 너무 나도 감당 안 되는 글을 써 버려서, 페북엔 공유 안 할 예정. 호호.
여전히, (탈)구조주의
미국의 저술가 쿠르츠웨일은 그가 1980년에 쓴 구조주의에 관한 책에서 이미 “파리에서 구조주의의 시대는 거의 끝나 가고 있다”(Kurzweil, 1980/1984, 4쪽)고 명시적으로 적고 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착안된 초기의 구조주의는 이미 사라졌다”(Kurzweil, 1980/1984, 13족)고 덧붙인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주장되었던 인류의 ‘보편적 구조들’이 나타난 적도 없고,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그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이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의 원본에 가까운 판본은 더 이상 학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레파토리들을 쉽게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마도 인류학이든 문화연구에서든, 연구자들은 어떤 학문에서든 구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구조주의 이론들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연구하는 방식들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쿠르츠바일은 동시에 “구조주의의 가정들은 프랑스 사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후기 구조주의에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Kurzweil, 1980/1984, 4쪽)고도 썼다. 탈구조주의라는 경향으로 묶을 수 있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와 가타리, 료따르의 글을 묶어 번역한 이정우(1990, 9쪽)는 편역자 서문에서 “탈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란 분명 구조주의를 전제한 표현”이라고 썼다.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구조주의가 끝장이 나고 탈구조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 아니라, 탈구조주의는 “전형적인 구조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경향을 말하는 것이며 언제나 구조주의에 병행”한다는 것이다.
보편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나, 타당성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특정한 구조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구조주의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비판의 자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비판을 하기 이전에 연구자로서 ‘구조’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구조 대신에 ‘법칙’이나 ‘일반화’, ‘유형화’, ‘단순화’ 같은 표현을 넣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구조주의’적인 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날의 시도들도 구조주의라는 항을 전제한 채 거기에서 밖으로 빠져나가고자 하는 하나의 탈구조주의적인 수행과 실천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철학자 김형효(1989)의 저서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에서 소개하고 있는 ‘구조주의 사상가’인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그리고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 체계>의 저자인 에드먼드 리치의 이론을 구조주의가 받게 되는 비판 지점을 벗어나려는 ‘탈구조주의적’인 실천 혹은 구조주의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이러한 시도들 각각을 간단하고 미숙하게나마 정리해보려고 한다.
에드먼드 리치의 신구조주의(Neo-Structuralism)
구조주의 철학이 그 이전의 철학에 대해서 가하는 비판은 서구적 이성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다(김형효, 1989, 33쪽). 레비스트로스의 ‘보편성’에 대한 추구가 의미를 갖는 것 역시도, “미개 사회든 현대 사회든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은 언제나 동등한 사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을 지침으로 삼았다”(Wiseman, 1997/2008, 57쪽)는 사실과 관련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 존재는 모두 같은 종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에 같은 선천적인 정신 구조를 소유한다고 주장했다”(Lavenda & Schultz, 2007, p. 218).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의 기능주의를 비판하면서, “한 사회의 기능적 제 요소가 거기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생활기능과의 표현관계라고 말하고, 그 관계는 단순히 경험적 관찰의 수준에서 느껴지는 차원에서 기술된다고 보는 것은 사회구조의 무의식적 차원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문화의 보편적 법칙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김형효, 1989, 252쪽)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에게 문화의 본질은 구조이며, 이런 구조들은 모든 가능한 구조들로 이루어진 전체 체계의 일부로서 존재한다(Davies, 2002/2005, 130쪽).
그런데 여기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다시 한 번 구조의 차원에서 ‘보편성’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 자신과 그가 대표하고 있는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되고 만다. 비판자들은 레비스트로스가 수행한 신화(myth)나 다른 문화 현상들에 대한 특정한 구조적 분석의 타당성을 문제 삼거나, 구조주의자들이 문화를 단일체로 보면서 그들의 해석을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위치시키고 싶어했던 것, 인간의 행위성(agency)을 분명하게 부정했던 것 등 을 비판했다(Lavenda & Schultz, 2007, pp. 218-219). 극단적으로 클리퍼드 기어츠는 레비스트로스를 ‘두뇌적 미개인’이라고까지 불렀는데, 그는 “의미는 형식적 구조가 아니라 목적에서 나오는 것인데, 레비스트로스는 상징적 요소들의 내적 관계에 치중했기 때문에 실제 생활의 일상적 논리에서 벗어났다”(Davies, 2002/2005, 134쪽)고 주장했다.
에드먼드 리치가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해설 및 비판서에서 레비스트로스를 비판하고 있는 중요한 논리도 ‘보편성의 역설’에 관한 차원에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을 동물 상태의 인간과 구별 짓는 것은 곧 문화와 자연을 구별하는 것이라는 가정(즉 인간의 인간성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는 가정)에서 논의를 시작”하지만, “인간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을 확립하는 것(즉 ‘자연스러운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탐구 목적과 역설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Leach, 1970/1998, 170쪽). 더불어 레비스트로스가 꼼꼼한 민족지, 문화기술지를 바탕으로 하기 보다는 ‘피상적’인 수준의 문화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리치는 “포괄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환원주의는 그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패배”시킨다고(Leach, 1970/1998, 177쪽) 비판하면서, 레비스트로스의 최근 저작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독선’을 프로이트주의에 빗대기까지 한다.
리치가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시도한 자기 자신의 작업은 오늘날 영국적 버전의 구조주의로 이해되기도 하는 ‘신구조주의(Neo-Structuralism)’로 명명되기도 한다. 리치는 보편적인 정신 구조를 발견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실제 삶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며, 레비스트로스의 프로젝트가 과도하게 야심차고, 너무나도 추상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 체계>를 통해 리치는 레비스트로스의 카친 족에 대한 연구가 부정확한 민족지적 정보에 기반한 부분이 있음을 비판하고, 기존의 ‘평형 모델’적인 설명에 대항하는 그 자신의 고유한 ‘진동’에 관한 모형을 제시한다.
리치는 “사회의 개념적 모델은 평형 체계 모델일 수밖에 없지만, 실제 사회는 절대 평형상태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Leach, 1964/2016, 37쪽). 그는 “현실 상황은 대부분 불일치와 모순으로 가득하고, 이 불일치와 모순이 사회변동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보았다(같은 책, 42-43쪽). 따라서 그는 “사회인류학의 평형 이론은 한때 정당했지만”, 이제는 “오늘날 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사회 가운데 안정성을 향한 뚜렷한 경향을 보여주는 사회가 거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같은 책, 395쪽)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것을 구조주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혹은 거기에서 나아간 설명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탈구조주의적 실천’이라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현상이 0과 1로만 구분되는 현상인지, -1, 0, 1로 구분되는 현상인지, 혹은 그 사이에서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현상인지를 제대로 구분하기만 해도 현상에 대한 조금 더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유사하게 굼사와 굼라오라는 ‘이념형적 모델’을 설정해 놓고, 카친 사회가 그 사이를 진동(oscilation)한다고 본 것만 해도 이미 구조주의적인 설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성과를 리치가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게 구조에서 벗어나는 변이들이나 혹은 변화의 지점들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것은 리치가 보편적인 욕망으로서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두려고 하는 설명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서 드러난다. 인류학의 연구방법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급진적이지는 못하다. 그는 존재론적으로는 이념형적인 평형이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사회든 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인식론적으로는 후자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이 평형 모델을 아예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예컨대, 리치는 “사회 체계가 필연적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해서, 구조적 사고에 훈련된 사회인류학자들이 전통적 분석 테크닉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같은 책, 395쪽)고 쓴다. 책의 1964년판 서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리치가 “사회에서 평형이 작동한다고 가정되는 기간을 150년으로” 오히려 “늘려 잡았”고, “총체적인 동적 평형 체계가 1세기 혹은 그 이상의 주기 내 모든 사건을 포괄한다고 가정한다”(같은 책, 20쪽)고 명시적으로 적고 있는 부분에서 리치가 여전히 사회의 동적인 성격을 제한적으로만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
푸코의 미시권력론과 계보학
미셸 푸코는 그 자신이 1968년 이후에 종종 ‘스스로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언급해왔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그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정의된 권력론, 국가론 등을 비판하거나 혹은 보편적 구조의 존재, 구조에 의한 결정론을 광범위하게 부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푸코의 이론을 ‘탈구조주의적인 실천’으로 묶어서 볼 여지가 존재한다. 게다가 푸코의 글을 읽어보면, 그것이 그의 글쓰기 전략인지 그저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구조적이거나 도식적이라고 볼 수 있을만한 설명을 전개하다가, 모든 일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식의 추가 전제를 덧붙이는 양상으로 서술하는 지점을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구조주의로부터 앞으로 더 나아가고자 하는 부분을 그의 미시권력론과 계보학적 역사서술이라는 두 측면을 통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권력론의 측면에서, 푸코는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주체화’시키는지의 문제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푸코는 권력을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권력의 정의는 억압에 의하거나 이데올로기를 통해 작용하는 것에 가까운데 비해, 푸코에게 권력은 이데올로기보다는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권력은 특정 집단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권력 행사자와 다수의 피권력자의 관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권력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Foucault, 1980/1991, 193쪽). 푸코는 우리 사회를 규율적이라고 특징짓는 태도와 온순하고 규범화한 주체들만이 사는 규율 잡힌 사회를 엄격하게 구별한다(Merquior, 1985/1999, 185쪽). 일단 육체 위에 권력의 효과가 발휘되고 나면 권력은 역으로 그 육체 위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Foucault, 1980/1991, 85쪽). 푸코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미셸 페로는 감옥 수감자들의 저항, 테일러 시스템의 실패, 기숙사 시설의 실패, ‘성스러운 월요일’ - 매주 첫날에 일하기를 거부했던 유럽 노동자들의 사례 - 등 소극적 저항의 예를 언급하기도 했다.
푸코의 계보학은 니체로부터 빌려온 개념으로, 푸코는 계보학을 사건이나 역사의 전개 속에서 개념과 초월적 주체에 의존하지 않고, 지식과 담화와 대상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설명해 내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Foucault, 1980/1991, 150쪽). 푸코가 계보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은 ‘왜 특정 시기, 특정 지식의 질서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원만하고 지속적인 발전 도식을 따라가지 않는 갑작스러운 도약과 진화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Chomsky & Foucault, 2006/2010, 187쪽). 푸코는 제도, 기능, 대상 혹은 국가로부터 출발하는 연구에서 그것의 외부로부터 출발하는 연구 전략을 사용하는데, 그는 “틀에 박힌 대상이나 척도를 규범으로 삼아 제도, 실천, 지식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문제는 유동적인 테크놀로지를 통해 지식의 대상들을 이루는 진실의 영역이 구성되는 운동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Foucault, 2004/2011, 168-172쪽). 또한 푸코는 이렇게 권력관계를 탈제도화, 탈기능화함으로써 권력을 계통이 아닌 계보로서 인식할 수 있게 되며, 권력관계가 어째서 부동의 관계가 아니라 불안정한지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강의노트에 적어두고 있다(같은 책, 174쪽).
알튀세르의 중층결정론
루이 알튀세르의 중층결정론은 일반적으로 교조주의 맑시즘에서 이야기하는 하부구조 결정론에서는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여전히 경제 결정론적인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알튀세르의 분석에 의하면 억압적 국가 기구(RSA),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SA)와 같은 국가기구와 그 안에서 행사되고 있는 국가권력이 중요한 것으로 떠오르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구조결정론, 경제 환원론에 반하는 것이다. 즉,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 개념을 일부 수정하여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알튀세르의 사회구성체는 하부구조에 의해 상부구조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형태가 아니며, 역사적 변증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도래를 예감하지 않는다.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경제’는 최종심의 위치에 서서, 각각의 사회구성체에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중 어떤 것이 지배심이 되는가를 결정한다. 알튀세르는 지배심을 갖는 사회구성체의 구조와 작동을 중층결정(과잉결정, overdetermination)이라 명명했다(Cf. Althusser, 1971/1991, 149-157쪽).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에 상대적 자율성과 중층결정론 등을 보탰지만,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개인적 주체는 여전히 구조의 담론에 의해서 규정되는 수동적 존재로 축소되었고, 경제 구조의 결정론을 배격하면서도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의 중요성은 부인하지 않았다”(김연종, 1998, 37쪽)는 것이다. 또한 ISA를 통한 국가권력의 작동을 설명함에 있어, 주체들의 자율성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하고 기능주의적인 설명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에 대해 추후에 반박한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1970년 덧붙인 글에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계급투쟁의 대상이자 장소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지배이데올로기의 실현은 지난한 계급투쟁의 결과이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윤종희 외, 2008, 156쪽). 알튀세르의 중층결정론의 최종심 개념이 경제 환원론이라는 것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알튀세르는 “최종심급의 고독한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Althusser, 1969)고 언급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적 모순은 결코 정치나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형태를 띠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알튀세르가 경제적 결정론, 즉 생산관계라는 일종의 구조를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상부구조의 ‘절대적 자율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일종의 ‘탈구조주의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또한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 중에는 그가 이데올로기의 역사성을 부정했다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이것도 구조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알뛰세가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고 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의 역사성을 완전히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알뛰세는 단수의 이데올로기와 복수의 이데올로기를 구분했는데(Althusser, 1971/1991), 탈역사성의 특성을 갖는 것은 이데올로기 일반을 뜻하는 단수의 이데올로기(ideology)에 한정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근본 원리, 근본 구조 등의 초역사적이라는 것이다. 복수의 이데올로기(ideologies)인 개별 이데올로기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각 그 자체로서 생성, 소멸 등의 역사를 갖는다. 또한 구조를 벗어나는 행위자들의 저항성이나 행위성에 대해서도 알튀세르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만 해도 그람시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 나오는데, 알튀세르는 놀랍게도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 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 오래도록 국가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계급은 하나도 없다”(Althusser, 1971/1991, 152쪽)고 쓰고 있다. 또한 주체 구성에 관해서 서술함에 있어서도 “ISA 안에서 실현된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실천”하는 소문자 주체(subject) 외에 예외적으로 그러한 실천에 포섭되지 않는 악한 주체들(bad subjects)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논의함으로써 알튀세르는 저항적 주체의 가능성, 구조에 포섭되지 않는 행위성의 가능성을 적어도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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