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화론 Week 3 Response Paper
시카고 미술대학(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 교수인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우리 수업에서 이후 읽게 될 문헌들의 출처이기도 한 <미술(예술)을 통해 생각하기Thinking through Art>라는 책, 그리고 자신이 편집한 이 책의 다양한 글들, 그리고 관련 전공의 교수이기도 한 스스로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스튜디오 아트(studio art)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정돈된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의 논점은 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느낌을 주는데, 이를 마지막 결론부에서 요점만 정리해서 다시 잡아주고 있다.
첫째, 연구(research)나 새로운 지식(new knowledge)과 같은 단어들은 행정적 문서들에만 국한시켜 사용하여야 하고, 그 자체가 딱딱한 저작(serious literature)이 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새로운 학위(스튜디오 아트 박사)에서 논문의 수준(scholarship)은 인류학, 철학, 미술사와 같은 다른 전공에서 요구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학위는 오늘날 대학의 통일성이나 파편화와 같은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의 초점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점을 지난 주 읽었던 티모시 존스(Timothy E. Jones)의 글과 비교해보면 첫 번째 요점에서는 의견이 조금 갈리고, 두 번째 요점은 두 사람이 비슷한 의견이며, 세 번째 요점은 엘킨스가 조금 더 제시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지난 주 수업에서의 이론(theory)-실행(practice)의 구분에 관한 논점을 엘킨스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의 논점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할만한 부분이 많았다. 일단 그는 그가 읽은 다양한 글들에서 연구(research)와 새로운 지식(new knowledge)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예술과 관련된 새로운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경유하여 – 이해(understanding), 해석(interpretation), 글쓰기(writing), 비개념(the nonconceptual) 등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기, 과학(science)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서 연구(research)를 재정의하기, 실행(practice)을 강조하기, 예술 작품(art object) 그 자체를 지식으로서 승인하기 - 대체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엘킨스는 이러한 시도들 각각이 지니는 의의를 검토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러한 접근들이 결국 대학 내의 다른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는 것으로 이어지거나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약간은 억지로) 봉합하려고 하는 시도로 읽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행(practice)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예컨대 의학, 법학, 간호학 등에서 쓰이는 실행 개념과 비교해 스튜디오 아트 분야에서의 실행 개념의 정의는 상당히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연관해 스튜디오 아트 박사 제도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한 엘킨스의 생각도 인상적이었는데, 스튜디오 아트가 충분히 이론적이지 않고 실행 위주로 보이는 것 때문에 이것이 대학에서 주변화 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위계 구조가 있고(hierarchical), 일관성(coherence)이 있는 학제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에서 통찰력이 느껴졌다. 또한,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불충분함’이 스튜디오 아트 박사라는 새로운 학제의 출발 지점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예술을 만드는 것(making)과 연구하는 것(studying)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disjunction)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엘킨스의 의견에 동의가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엘킨스가 연구(research)나 새로운 지식(new knowledge)이라는 용어와 거리를 두는 까닭 중에는 이 용어들이 이미 과학(science)의 모델에 기반하고 있어서 예술가(artists)들에게는 애매한 개념일 수 있음을 들고 있으며, 모든 학문이라는 게 그러한 특수한 과학의 모델에 근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지난주부터 예술과 관련한 새로운 (박사)학위과정과 관련된 글을 읽고 있지만, 소속된 학제 탓인지 내 경우에는 계속해서 이러한 내용들이 내가 속해 있는 학제(문화연구)에서도 비슷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혹은 visual culture studies) 또한 기존의 학제들로는 일정한 주제들을 다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간학제적인 학제 기획이라는 점에서 스튜디오 아트 박사학위가 결국 그 이론적 자원들을 다른 학제에서 만들어진 저작들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처지’를 겪었다. 또한 영국에서 발흥한 대문자 문화연구로부터 영향을 받은 전통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비판적 연구(critical research)로서의 기획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문화연구가 그 본래의 실천적(practical) 성격을 잃어버리고 이론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식의 내부 비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고민들이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진행 중인 사고이지만 문화연구에 관한 내 현재의 관점/입장은 다음과 같고, 아마도 반대로 이러한 내 관점을 스튜디오 아트 관련한 새로운 학위라고 텍스트 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관점에도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
먼저 이론과 실천을 계속해서 이분법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엘킨스의 표현처럼, 무언가 이상하다(tricky). 이론 또한 중요한 실천이고, 실천 또한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되며 두 가지가 얽혀 있어서 분리하기 어려운 것인데, 예컨대 문화연구의 실천성을 회복하자는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우선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심스러운(!)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고, 예술 관련 전공에서 실행(practice)을 이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자는 입장은 예술을 신비화하면서 ‘학위’라는 공인된 상징자본만을 가져가고자 하는 의심스러운 관점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이론도 하나의 실천/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엘킨스가 언급했듯 그 학제의 체제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론적 논문을 통해서든 경험연구 논문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방식의 결과물을 통해서든 그 학제 내부의 지식 체계에 일종의 이론적인 기여를 하는 실천이 계속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학에서의 연구 및 연구자 재생산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체계가 ‘객관적으로’ 보아 객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만 이 체계가 객관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는 객관적인 체계가 존재해야만 학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 전제 자체를 공격하는 담론이 있다면 그것은 학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배제가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학제적인 새로운 학제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학제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이 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조금 애매하다고 여겨진다. 최근 이상길 선생님이 이번 학기 초에 여러 수업에서 ‘문화연구는 하락세(declining)에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문화연구를 공부하는 제자들을 약간 '우울'하게 유도하신 일이 있는데, 선생님의 진단은 간학제 연구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통해서 학제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 문화연구의 지위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사실과 관련된다. 문화연구 관련 학제들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문화연구 ‘학과’의 지위는 위태로운 데, 문화에 관한 다양한 관점의 연구들을 국문학, 영문학, 사회학, 인류학 등 인접한 조금 더 역사와 뿌리, 체계가 튼튼한 학문들에서‘도’ 진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아트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의문이 드는데, 지난 주 리딩에도 나왔었고 이번 주 리딩의 114쪽에 있는 일종의 연구문제 리스트들을 보아도 이러한 문제들이 왜 ‘새로운 학문’으로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예술사회학으로 풀 수도 있을 것이고, 예술사회학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아닐지언정 ‘융합’의 흐름 속에서 다른 학제의 재료들을 예술사회학 전공자가 빌려왔을 때 스튜디오 아트 전공자가 진행한 연구가 예술사회학과 어떠한 차별성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스튜디오 아트뿐 아니라 비교문학, 여성학, 문화연구 등 다양한 학제간 학문이 공통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기존의 학제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꾸 비판적/실천적/행동적 학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고 하거나, 실기와의 관련성을 더 강조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어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사실상 분과학문으로 학제가 나뉘어져 있는 상황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이 있는 것임을 인지한다면, 간학제적 기획으로서 등장한 학제들만큼 기존의 안정적인 분과학문으로 여겨지는 학과들도 사실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간학제적 ‘신생’ 학문들이 학제간의 경계 짓기와 주도권 잡기 싸움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생 학문이 기존 학문에 비해서 ‘후발’이며, 그것이 확보하고 있는 자본량이 이미 너무 뒤진 상태라는 사실로 환원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효과적인 전략은 학문 장에서의 내기물이라고 볼 수 있는 ‘지식 생산’에서 후퇴하여 다른 무기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식 생산을 더 잘 해 내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 전략을 조직하는 일이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