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에 덧붙인 보론
수업시간에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와 시마 빌게(Sirma Bilge)가 쓴 저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1장을 발제하면서 덧붙인 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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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성 개념 및 이론을 처음 제시한 학자는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Williams Crenshaw)로 알려져 있다. 그의 1991년 논문(Crenshaw, 1991, pp. 1242-44)은 당대의 페미니즘 담론과 반인종주의 담론이 유색인종 여성의 교차적인 정체성(intersectional identities)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며, 교차성 개념을 (이전 논문에서) “흑인 여성들의 고용 경험의 복합적인 차원을 만드는 데 있어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interact) 다양한 방식들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용어 자체는 크렌쇼의 논문에서 사용되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교차성이 담고 있는 개념 그 자체는 주 텍스트에서도 언급되듯 크렌쇼가 처음으로 포착한 ‘아주 새로운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크렌쇼 자신도 유색인종 여성이며 교차성 개념을 일단은 인종과 젠더의 교차를 분석하는 데 사용했듯이, 교차성은 용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흑인여성 페미니즘(black feminism)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페미니즘이 제1세계, 백인, 중산층, 이성애 여성 중심의 경험을 일반화, 보편화한다는 흑인과 유색 인종 여성들의 비판은 젠더, 계급, 인종, 민족, 섹슈얼리티 등 정체성의 복수성과 억압의 교차성이라는 측면에서 페미니즘 이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이나영, 2013, 43쪽).
이때 교차성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 혹은 사회적 분리의 원리가 되는 범주들의 모델이 단순결합되는 것과 같이 이해되기도 한다. 즉 흑인여성의 경우, 흑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모두, 동시에 경험한다는 것이 교차성이라는 용어의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웨스트와 펜스터마커(West & Fenstermaker, 1995, pp. 11-14)는 일군의 페미니스트 사상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과 수학적인 은유는 젠더와 인종, 계급 등을 분리할 수 있다는 환상에 근거한다는 이유를 들어 비판한 바 있다. 젠더, 인종, 계급에 대한 각각의 분리된 억압, 분리된 경험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예컨대 노동자 계급의 유색인종 남성과 노동자 계급의 백인 여성이 ‘노동자 계급’이라는 공통적인 계급성을 기반으로 자동적으로(autonomous) 연대할 수 있다는 사고로 이어지면서, 교차성의 관점이 원래 지적했던 노동자 계급운동에서 유색인종 노동자의 경험이나 여성 노동자의 경험이 제대로 다뤄질 수 없다는 논리를 무화시킨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젠더, 인종, 계급 측면에서 모두 억압받는 사람이 이 중 두 개나 하나의 범주로부터만 억압을 받는 사람이 덜 억압받는다는 식으로, 억압에 서열(ranking)을 매기는 위험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차성 논의는 ‘모든 지배의 체계들이 교차하는 지점(at the intersection)’을 상정하며, “그 누구도 인종과 계급을 동시에 경험하지 않고서 젠더를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크렌쇼의 강연 영상이 트위터에서 많이 순환되고 있는데, 크렌쇼는 교차성 개념이 적어도 자신의 관점에서는 복수의 정체성들(multiple identities)을 나열하는 문제 - “나는 정체성이 3개고, 너는 6개고, 걔는 17개고...” - 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오히려 취약성(vulnerability)을 만들어내는 구조나 제도의 문제들을 지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지적하였다.
(출처: https://twitter.com/kimberlynfoster/status/896489355807789060)
개념상으로, 이론적으로는 매우 흥미롭지만 교차성의 관점에서 실제로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난감함을 겪게 되는데, 연구자 개개인의 교차성 개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 분과학문적인 사회화의 결과 등에 따라서 단일하지 않은, 때로는 같은 개념을 쓰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입장에 서는 연구들과 연구방법에 대한 제안들이 이루어져 왔다. 맥콜(McCall, 2005)은 교차성 연구의 흐름을 범주(category)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세 가지의 연구경향/접근법으로 구분한 바 있다. 반범주적 복합성(anticategorical complexity) 연구는 분석 범주를 해체(deconstruct)하려는 입장에서, 사회적 삶은 어떤 변수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정된 범주는 범주간의 차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불평등을 생산하는 사회적 소설(social fiction)과 같은 것으로 가정하는 흐름이다. 범주내(intracategorical) 복합성 연구는 다른 두 흐름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경향으로, 교차하는 범주들 사이에서 도외시된(neglected) 지점에 있는 특정한 사회 집단들에 집중하는 연구들에 해당한다. 맥콜은 앞서 언급한 두 연구 경향을 교차성 진영 내에서 주류적인 흐름으로 파악하고, 범주간(intercategorical) 복합성이라는 세 번째 연구 흐름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교차성 연구의 방향으로 설정한다. 이는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분석 범주들을 받아들이고, 사회 집단들 간의 불평등 관계와 복합적이고 갈등하는 차원들을 따라 불평등의 배열이 변화하는 것을 기록하는, 즉 “범주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연구 방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범주간 복합성이라는 통계적 사회학과 친연성이 높은 연구기획은 결국 개개의 범주들을 단순 변수화하는 데서 그친다는 측면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선행연구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적인 분석에서 주와 페레(Choo & Ferree, 2010, p. 137)는 실제로 실행된 몇몇 교차성 연구가 1) 다중적으로 주변화된(multiply-marginalized) 집단에게 ‘목소리를 주는’ 레토릭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며 이 과정에서 가정된 중산층 독자와 연구대상 집단 사이의 차이를 과장하게 된다는 점, 2) 실제 연구 디자인에서 교차성이 각각 변수의 주 효과(main effects) 외에 변수 간의 상호작용 효과(interaction effects)를 추가로 분석하는 정도로만 활용될 뿐, 표시되지 않은(unmarked) 범주 변수들을 자료 자체의 수집 및 권력 관계의 분석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3)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계급(class)의 우선성을 전제한다는 점 등의 한계 경향을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세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예 교차성 개념이 ‘계급’ 범주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념 자체의 유용성을 의문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정진회(2016, 41-44쪽)는 교차성 개념이 “차별받는 사람들이 겪는 경험을 묘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차별이 왜 일어나는지, 서로 다른 차별이 왜 교차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계급’을 “자본주의의 착취적 사회관계”가 아니라 “여러 차별 중 하나이거나 또 다른 정체성쯤으로 취급”하는 교차성 개념은 “사회를 전체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며 저항을 개별화한다”고 비판한다. 저항의 개별화라는 논의는 교차성이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더 분화된, 흩어진 형태의 정체성 정치 이상의 정치적 전망을 내놓지 못한다는 주장과 닿아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교차성 관련 논의들이 모두 같은 정치적 전망을 내놓는 것도 아니거니와) 교차성 관점이 정체성 정치와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은 앞서의 비판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것으로 여겨진다.
크렌쇼(Crenshaw, 1991, pp. 1296-99)는 교차성의 관점을 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반본질주의(antiessentialism) 관점과 분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에 관해 언급한다. 특히 그가 ‘속류 사회구성주의(vulgarized social constructivism)’라고 칭하고 있는 반본질주의의 한 가지 형태가 어떠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에 관해 비판하는데, 그러한 관점은 정체성의 범주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범주가 우리의 생활세계에 존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게 되는 문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따라서 범주가 없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대하거나 그러한 ‘궁극적’인 상태를 지향하는 것은 오히려 종속의 과정과 경험을 은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범주화의 과정은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며 ‘black’이나 ‘queer’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종속된 사람들이 그러한 정체성의 표지들을 저항의 장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체성 범주들을 비워내고 파괴하는(vacate-destory) 정치와는 다른 점유하고 의존하는(occupy-depend) 정치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속류 구성주의는 의미 있는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때 교차성 개념은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역할이 아닌, 정체성 정치를 연합(coalition)의 관점에서 다시 사고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흑인, 여성과 같은 집단 범주들이 내부의 차이들(intragroup difference)의 연합의 형태로 세워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범주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는 주장보다 더 정치적인 가능성을 지닌다는 주장이다.
니라 유발-데이비스(Yuval-Davis, 1997/2012, 224-237쪽)는 페미니즘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유사한 전망을 횡단의 정치 혹은 횡단주의(transversalism)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는 “페미니즘(과 그 밖의 형태의 민주주의) 정치를 여성들의 차이가 인정받는 연합정치의 형태”로 보기를 제안하며, 집단 형성의 경계를 “본질주의적인 개념의 차이” 대신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정치현실”을 바탕으로 사고하기를 권장한다. 횡단주의는 “동질적인 출발점을 가정함으로써 포함이 아닌 배제로 끝나는 ‘보편주의’와 ‘차별적인 출발점’으로 인해 어떤 공통된 이해나 진정한 대화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상대주의”를 모두 빗겨 나간다. 그리고 횡단의 정치에서 “통일성이나 동질성으로 파악되었던 것은 대화로 대체”된다. 거의 유사한 입장이 정치 이론가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아고니즘(Agonism) 관점을 바탕으로 설명되기도 한다(김문정, 2015; 조주현, 2012). 아고니즘은 상호 투쟁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격려적인 관계로 정의되는데, ’자유‘나 ’정의‘와 같은 진리를 우선 선험적으로 설정한 후 그 진리를 구현해나가는 투쟁의 전략과 차이를 둔다. 페미니스트 정치학자 린다 제릴리(Linda Zerilli)가 특히 이 논의를 바탕으로 “같음이나 차이를 전제하는 정체성 정치에 구속되지 않고 ‘여성’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정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김문정, 2015, 299쪽). 이러한 주장은 “제2물결 페미니즘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근대적 계몽의 프로젝트였음”을 확인하고 비판하는 작업이 되며,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이란 ‘여성’의 정체성을 “앞질러서 발언하는(anticipatory) 구조로서 그 주장을 통해 페미니스트 주체인 ‘여성’을 구성”해 나가는 실험이 된다(조주현, 2012, 181-182쪽).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은 교차성이 페미니즘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 개념 자체가 더 많은 교차로로 확장될 수 있음을 많은 ‘페미니스트’라 지칭되는 사람들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하여 빌게(Bilge, 2013)는 ‘표백된/백화하는(whitening) 교차성’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분과학문 혹은 다소 단순한 ‘여성’ 정체성에 기대 있는 관점에서의 교차성 연구들이 교차성 이론이 페미니즘의 발명품(brainchild)임을 강조하는 수사와 교차성의 계보를 확장해야 한다는 수사를 동원하여 인종 문제를 교차성 논의에서 지워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신자유주의 지식생산 체계에서 여성학의 분과학문화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논의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교차성 개념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탈정치화한다. 애초에 교차성 관점을 제기한 사람들이 ‘여성’ 내부의 차이의 문제를 강조했던 유색인종 여성 학자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차성의 표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개념이 교차성 개념의 표백 현상, 암묵적인 ‘젠더 우선성’ 가정 혹은 교차성이 페미니스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현상 등을 의식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다중격차(Multiple Inequalities) 개념은 교차성의 관점과 매우 유사한 논의들을 제기하고 있다(cf. 신진욱, 정세은, 장지연, 2016). 다중격차는 “단지 사회 불평등이 다차원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여러 불평등 차원 간의 상호작용과 체계적 연관성, 그리고 불평등에 관련된 주체 위치와 정체성의 교차성을 압축하는 개념”(81쪽)이며, 다중격차에 대한 접근 방식도 분리하는(seperate) 접근, 추가하는(additive) 접근, 가로지르는(transversal) 접근 등으로 구분되는데(84-85쪽), 이는 교차성에 대한 몇 가지 서로 다른 이해의 방식과도 유사한 분류이다.
여전히 계급을 선험적으로 우선적인 범주로 설정하면서 교차성 이론을 비판하는 게 부적당한 것처럼, 젠더를 계급을 대체하는 선험적 범주의 자리에 두려는 욕망과 함께 교차성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또한 생물학적 이분법에 근거하거나 그곳으로 환원되는 ‘여성’ 범주화에 근거한 페미니스트 정치학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이나영(2014, 35-38쪽)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남성 간의 차이, 이에 기반한 평등의 문제를 넘어 집단 내부의 ‘차이들’에 주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여성주의자들의 연구물에서 “젠더가 생물학적 남성/여성, 혹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녀의 역할로 협소하게 이해되고 ‘여성’에 대한 분석이 ‘젠더분석’으로 등치되는” 문제가 발생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교차성 이론이 이를 극복하는데 유용한 방법론으로 쓰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 교차성 개념에 관한 논의들을 아무리 제대로 끌어온다고 한들 ‘쓰까페미’들을 비난하는 일부 진영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역설적으로 교차성 논의가 바라보는 정치학적 전망인 연합정치, 횡단의 정치, 아고니즘의 정치가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를 의심해 보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사회운동의 내러티브가 여성주의 운동에서도 반복될 필요는 없다는 데 강력히 동의한다.
참고문헌
Bilge, S. (2013). Intersectionality Undone: Saving Intersectionality from Feminist Intersectionality Studies. Du Bois Review, 10(2), 405-424.
Choo, H. Y. & Ferree, M. M. (2010). Practicing Intersectionality in Sociological Research: A Critical Analysis of Inclusions, Interactions, and Institutions in the Study of Inequalities. Sociological Theory, 28, 129-149.
Crenshaw, K. (1991). Mapping the margins: Intersectionality, identity politics, and violence against women of color. Stanford law review, 43, 1241-1299.
McCall, L. (2005). The Complexity of Intersectionality. Signs, 30(3), 1771-1800.
Yuval-Davis, N. (1997). Gender and Nation. 박혜란 (역) (2012). <젠더와 민족: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 서울: 그린비.
West, C. & Fenstermaker, S. (1995). Doing Difference. Gender and Society, 9(1),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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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정세은, 장지연 (2016). 다중격차의 사회적 균열 구조와 사회정책적 대응. <동향과 전망>, 97, 81-110.
이나영 (2013). 페미니즘과 미디어 이론. In 이나영 외 <다시 보는 미디어와 젠더> (17-61쪽).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이나영 (2014). 한국사회의 중층적 젠더 불평등 - ‘평등 신화’와 불/변하는 여성들의 위치성. <한국여성학>, 30(4), 1-45.
조주현 (2012). 후기 근대와 사회적인 것의 위기: 아고니즘 정치의 가능성. <경제와사회>, 95, 163-189.
정진회 (2016). ‘교차성’은 차별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인가? <마르크스21>, 16, 3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