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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마타 Mar 05. 2019

‘20대 보수화’라는  문제설정의 빈곤함에 대하여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기획회의> 483호(2019. 3. 5)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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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20대 보수화’론을 반박하는 글을 기고한 일이 있다. 최근 20대 남성의 보수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당시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일베’로 상징되는) 특수한 방식으로 새롭게 보수 이념화된 젊은 층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20대 평균을 놓고 보면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로 자신의 정치성향을 응답하는 무당층의 비율이 높아지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논의를 전개한다. ‘20대 보수화’론이 왜 진보의 정치전략으로서 적절하지 않은지를 지적하는 것이 한 축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보수화’로 논의되고 있는 경향이 청년층 내에서 왜 성별화되어 나타나는지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보수화’를 정치 지형도에서 청년층이 과거와 비교해 ‘보수’를 더 지지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으로 한정해 사용하고자 한다. ‘보수화’는 청년들이 가진 다양한 가치관이 보수적으로 되는 현상을 통칭하는 용법과 구별 없이 혼용되기도 하는데, 최근 ‘20대 보수화’ 논란이 불거지게 된 근저에 있는 우려는 이들의 ‘진보’ 정권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사실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환원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20대 보수화’를 말하지만     


지난 12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20-30대 청년 1,00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0대 초반(19-24세) 남성이 자신의 이념성향을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19.1%)보다 ‘보수’라고 응답한 비율(25.9%)이 높은 유일한 코호트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 현 정부 국정지지율 등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20대 남성 보수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횡단 자료(cross-sectional data)만으로는 젊은 층이 실제 보수화된 것인지 혹은 시기상의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2030세대=진보’라는 도식이 최근의 현상을 상당히 예외의 일로 여기도록 하지만, 막상 한국의 20대는 이미 2007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에게 60% 이상의 표를 몰아준 전력이 있으며 2012년에도 셋 중 한 사람이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역으로 2016년 촛불 정국 및 2017년 대선 과정에서 2030세대는 압도적인 ‘진보’ 그 자체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20대가 ‘진보화’나 ‘급진화’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상식’이 젊은이는 당연히 진보 성향이라는 데, 혹은 그래야 한다는 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탈이념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전제로 도입해보면 어떨까. 생애 전반에 걸쳐 한 가지 이념을 고집하지 않는 중도 성향의 스윙보터가 짧은 기간 사이에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매번 여러 가지 조건들을 고려하여 새롭게 자신의 정치이념성향을 ‘선택’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전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상상되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탈이념화된 중도층 청년’들의 행동을 더욱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베’나 ‘극우청년단체’, 좌파 운동권 정파조직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일부를 제외한다면)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의 보수정당, ‘진보’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과 동의어로 상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정의상 양극단에 있는 이념성향이지만, 실제 현실정치에서는 비슷한 주장과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며 ‘막말’이나 일삼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인 집단에 가깝게 여겨진다. 유권자들에게 정치는 차악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했던가. 탈이념화된 20대 유권자는 ‘덜 싫은 쪽’에게 그때그때 마음을 준다. 정권 지지를 철회한 일부 ‘20대 남성’은 최순실 게이트와 2017년 대선을 거치는 동안 자유한국당 세력이 더 싫었기 때문에 잠시 ‘진보’였지만, 최근 현 정권이 더 싫은 이유들을 발견하면서 또 잠시 ‘보수’로 돌아선 것뿐이다.     



전략과 정치의 부재     


개인의 이념성향은 생애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고 또 언제나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전제가 있기에 서로의 가치관에 개입함으로써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려는 정치가 가능하다. 이 기본적인 원리보다 ‘젊은이는 진보적인 게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이 앞서 작동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20대 보수화’론이고, 이는 특히 ‘진보’ 진영에서 정치의 부재와 20대 타자화라는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0대가 진보적일 것이라는 등식은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으며 최근 20대들의 보수화가 두드러진다는 논의는 보수 언론을 통해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어 온 담론이기도 하다. 이때 ‘20대 보수화’론은 플러스 방향으로 작동한다. 보수 진영에게는 유권자의 귀환을 알리는 청신호이며, ‘보수’로 호명된 청년들은 격려와 환대를 받는 위치에 놓인다. 보수 진영에서 나온 청년 담론들(실크세대론, G세대론 등)이 주로 청년들이 이미 여러 가지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해 왔던 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 ‘20대 보수화’론이 다뤄지면 거의 항상 마이너스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는 진보 진영에게 유권자 이탈을 알리는 위험 신호가 되는 탓이다. ‘청년=진보’라는 등식이 너무 강고한 탓에 마치 맡겨둔 표를 잃은 듯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20대 보수화’는 문제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기에 청년들은 그 자체로 도대체 이들이 왜 이렇게 ‘순리를 벗어나게 되었는지’ 분석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 내지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내면화하며 자랐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것이 그간 나왔던 유력한 담론이었다. ‘20대 개새끼론’처럼 보수 혹은 탈정치 성향의 원인을 계몽이나 교육의 실패에서 찾으면서 청년들을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사례도 흔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이 20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이명박근혜 교육’을 받은 탓으로 돌린 것은 전례가 이미 많은 사례다.     


‘20대 보수화’라는 문제설정이 진보 진영에게 결코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설정 위에서 보수 진영은 일종의 어부지리로 청년들을 챙기고 격려하는 정도의 이미지라도 챙길 수 있었지만, 진보 정치는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는 허상에 몰두하다가 외려 청년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미지인 ‘꼰대스러움’을 장착하게 되었다. 최근 청년들의 자기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진보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진보 진영은 ‘20대 보수화’의 원인을 분석하려고 오랫동안 애써 왔지만,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오히려 우리 편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혹은 아직 입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우리 편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지 전략을 짜는 일에서 시작된다.     



상상된 공동체의 성별화     


한 가지 더 해명해야 할 문제가 있다. 최근의 ‘20대 보수화’론의 새로운 내용은 바로 20대를 성별에 따라 다시 세분화하여 ‘20대 남성’이 ‘보수화’된 코호트로 지목되고 있으며, 역으로 ‘20대 여성’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연령-성별 코호트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의 전제를 이어받아, 20대 남성과 여성의 이념성향을 일관된 가치 체계로 논의하지는 않겠다. 20대 남성이 더 보수적이고 여성이 더 진보적이어서, 혹은 깨어 있어서일까? 이런 식의 설명은 재귀적이어서 설명력이 없을뿐더러 앞서 논의한 ‘20대 보수화’론의 패착을 ‘20대 남성’과 관련해서 반복하는 실책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국면적으로 이들이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적인 선택을 누적시킨다고 할 때, 왜 성별에 따라 청년들의 선택이 분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지난 21일 관련한 주제로 열렸던 정책기획위원회 토론회에서 정치학자 서복경은 이를 ‘정보망의 차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20대 초반에서 성별 의식 격차가 나타난 것은 최소한 자신의 연구가 시작된 2008년 이후에 지속된 현상이며, 따라서 최근 발생한 기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의 가설은 20대 초반 집단적으로 군입대를 하면서 사회로부터의 정보망이 상당 부분 단절된 20대 초반 남성들이 같은 연령대의 여성들과는 다른 정보 획득 및 의견 형성 경로를 거치게 되며 이때 발생한 차이가 점차 좁아지지만 상당 기간 유지된다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믿음이 다른 국민들의 믿음과 괴리되는 근저에 유튜브,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정보가 퍼지는 경로가 있는 것처럼,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공론 형성이 별도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 이는 청년층 내에서 여러 가지 여론이 성별화되어 나타나는 원인을 적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 군 복무로 인한 정보망의 단절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 이전에 젊은 층의 여론 형성과 유통의 진원지라고도 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남초’와 ‘여초’로 이미 성별화되어 존재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부 20대 남성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정부의 ‘페미니즘 친화적 성향’이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인 것처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성별화된 여론 형성의 장에서 20대 남성들을 현재 자극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안티-페미니즘 정서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꾸준히 생산하면서 이것을 ‘보수’와 접합시키려 하는 정치공학적인 담론이다. 이러한 보수의 정치는 ‘20대 보수화’라는 경향으로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결과물을 국면적으로 산출해내고 있다. 이에 맞서 진보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시 강조하건대, ‘20대 보수화’론을 반복하는 것은 정치가 될 수 없다. 20대 남성이 ‘진보’에게 정말로 중요한 유권자 집단이라면 이들의 공론장에서 현재의 보수 담론보다 더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선명한 비전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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