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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마타 Oct 13. 2019

'386세대'와 '86세대'의 차이

* 이 글은 <참여사회> 통권 266호에 실렸습니다.



세대론은 일반적으로 세대 내의 이질성, 그리고 세대 간 연대의 가능성을 간과함으로써 사회적 적대의 전선을 잘못 긋게 만드는 오류와 맞닿아 있다(cf. 김선기, 2014). 따라서 특정한 세대론, 예컨대 ‘○○세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령 기준을 바탕으로 한 세대 구분 이상으로 더 섬세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86세대’라는 세대 명칭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86세대’를 (특히 최근 논의되는 맥락에서는) 단순히 현재의 50대(1960~69년생)의 대체어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한국인 전체를 연령에 따라 구분되는 세대들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는 강력한 사회적 상상이 존재한다. ‘386세대’라는 세대 명칭은 애초에 이러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는 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의 20대가 ‘신세대’ 내지는 ‘X세대’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는 상황에 대한 단순한 대응물로서 당시 30대를 ‘386세대’라는 신조어로 호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권자 집단으로서 혹은 앞뒤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적 가치관을 가진 취향 집단으로서 ‘386세대’가 논의될 때도 언제나 ‘386세대’는 특정 연령/출생코호트를 단순히 대체하는 말로 사용됐다.     


반면, 최근 정치 및 시민사회 엘리트들을 논의할 때 등장하고 있는 ‘86세대’는 절대로 50대와 동의어가 아니다. 정치학자 허석재(2015, 40-41쪽)는 “세대 내에서도 소수 엘리트와 다수 대중으로”의 “분화”가 일어나지만, 세대 연구 및 관련 논의에서 엘리트 수준과 대중 수준이 좀처럼 구별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관점을 수용하여 볼 때 ‘86세대’라는 범주의 정의에 이미 1) 연령코호트 기준 외에 최소한, 2) 국가권력의 중심부에 잇거나 내지는 이를 둘러싸고 투쟁하고 있는 특유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     


최근 세대 간 형평성 관점에서 ‘386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사회학자 이철승(2019, 8쪽) 또한 기존 사회운동적․정치적 세대론과는 다른 “정치적․경제적 이익추구 및 분배 네트워크로서의 세대론”을 제기한다. 그에게 세대는 “비슷한 연령집단의 친구 모임들의 상호 연결된 ‘총체’ 혹은 ‘거대한 동년배 네트워크 덩어리’이자 정치․경제적 이익을 의식적으로 도모하는 ‘정보 및 자원동원 네트워크’”(같은 글, 6쪽)의 의미다. 학교 제도의 영향력 내에서 형성된 또래집단 중심의 연결망은 세대 현상이 조직되는 배경이 되는데(cf. 김선기, 2017), 따라서 ‘86세대’의 네트워크는 명시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사실상 폐쇄적으로 작동한다. ‘86세대’가 자신의 연결망 안에 있는 또래 ‘86세대’를 사회의 주요 위치에 추천․배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86세대’는 결코 ‘386세대’라는 개념이 이전에 설명해왔던 그 세대와 결코 같은 세대가 아니다. ‘86세대’는 60년대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현재 50대가 된 모두를 포괄하지 않는다. ‘386세대’를 형성시킨 계기라고들 하는 민주화운동의 경험도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민주화운동을 한 모든 사람이 현재 그 자원 분배의 네트워크 내에 들어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50대는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도, 경제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노후 대비와 자녀 양육이 당장 막막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은퇴를 앞둔 직장인 등이 또 다수를 이루고 있다.     


실질적으로 ‘86세대’는 2019년 현재의 사회 권력층을 지시하는 말이다. 현재 사회 권력층을 이루는 개인들의 특성을 추출하면 그들의 연령대(50대), 그리고 세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민주화운동, 시민사회 1세대 등) 및 가치관(대북관, 진보 성향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세대’라는 말을 붙여 표현할 뿐이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사회 권력층은 50대이지만 50대는 사회 권력층이 아니다. 다시 바꾸어 말해, 오늘날 사회 권력층을 ‘86세대’라는 말로 부르지만 50대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에 가까운 386세대 전체가 사회 권력층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구분이 말장난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최근의 ‘86세대’ 용법과 오래된 ‘386세대’ 용법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두 가지 지점에서 중요한 효용을 지닌다고 본다.     


하나는, 사회 권력층 내지는 정치 엘리트를 ‘86세대’라고 부르는 용법과 50대 일반을 ‘(5)86세대’라고 부르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세대론 꾼들의 의도를 좌절시키기 위해서이다. ‘86세대’와 청년세대를 상대편으로 놓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는 것 같은 세대 갈등 내지는 경쟁 구도를 설정하는 담론은 마치 최근 나타난 것처럼 논의되기도 하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보수 진영이 유포해 왔던 ‘청년세대’ 담론의 전형이다(cf. 김선기, 2016). 보수 진영에서는 2000년대의 20~30대에게도 당시의 ‘(4)86세대’가 ‘너희들의 기회를 점유하고 있으니 빼앗아야 한다’는 식의 논의를 전개해왔다. 이는 현재의 60대 이상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 세력이 ‘86세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오랜 세월 진행된 프로젝트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향이 일시적인 것인지 지속될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최근 청년층 내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20대 초반 남성 코호트에서부터 스스로를 ‘보수’라고 답하는 비율이 ‘진보’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세대론은 사회적 갈등의 전선을 엉뚱한 곳에 긋게 만들어 폐해를 낳지만, 권력이라는 정치적 내기물을 두고 ‘세대 게임’(전상진, 2018)을 벌이는 플레이어들은 그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건 말건 관심이 없다.     


다른 하나는, ‘86세대’로 불리고 있는 사회 권력층이 자기 자신의 현재 위치 내지는 지위를 오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시민사회를 거쳤든, 학자 이력을 가졌든, 30년 전 민주화운동에서 무슨 일을 겪었든 ‘86세대’는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커다란 리더 집단이다. 이들은 많은 경우 정부 관료이고, 담론 주도층이며, 자원을 배분할 힘을 가졌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연령-세대를 추출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86세대’를 ‘전략적 세대(strategic generation)’(Edmunds & Turner, 2002)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전략적 세대는 정치적 변화를 위한 이념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며, 그들이 생산한 상징적 질서, 세계관은 자기 자신들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환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자리에 맞는 기본적인 책임감과 능력이 요구된다. ‘86세대’는 여전히 국가의 억압에 맞서 저항하는 ‘진보’와 ‘민주’의 담지자가 아니라 이제 어떤 면에서는 국가 그 자체가 되었으므로, 특정 세대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의 담당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그 역할에는 당연히 현재 자신들의 네트워크 밖에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포용’하는 일,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몫을 남기고 분배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     


참고문헌     

김선기 (2014). 세대연구를 다시 생각한다 : 세대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문화와 사회>, 제17권, 207-248.

김선기 (2016).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 : 2010년 이후 청년세대담론에 관한 비판적 분석. <언론과 사회>, 24권 1호, 5-68.

김선기 (2017). 청년-하기를 이론화하기 : 세대 수행성과 세대연구의 재구성. <문화와 사회>, 제25권, 161-210.

이철승 (2019). 세대, 계급, 위계 : 386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 <한국사회학>, 제53집 제1호, 1-48.

전상진 (2018). <세대 게임>. 문학과지성사.

허석재 (2015). 세대연구의 경향과 쟁점. <미래정치연구>, 제5권 제1호, 21-47.

Edmunds, J. & Turner, B. S. (2002). Generations, culture and society. Ope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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