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의 여느 새댁들처럼 알마(33)도 소개팅 다음 날 결혼에 골인했다. 9년 전 이모의 주선으로 나간 선 자리, 흰 피부에 새까만 머리를 지닌 남자는 40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케이, 알라뷰."
남편이 할 줄 아는 영어는 딱 두 마디였다. 알마는 앞에 앉은 그의 선한 웃음에 인생을 걸었다.
"우리 남편 재키찬 닮았거든요."
그의 웃음은 이제 앨범 속에만 있다. 기억은 자꾸만 흐려져 사진을 봐야만 또렷해진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남편과 알마가 함께 찍은 사진. 남편과 지낸 4년 동안 찍은 사진이 수백 장이다. 알마는 사진이 꽂힌 앨범을 보물처럼 보관한다. ⓒ 김성인
스물아홉 알마를 남겨둔 채,
남편은 먼저 떠났다
4년 전 겨울, 남편이 떠났다. 알마의 고향 필리핀보다도 훨씬 더 먼 곳으로 영영 떠났다.
그해 어느 봄날,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이 배가 살살 아프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간암과 직장암이었다. 한국말이 서툰 알마도 'cancer'만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쩌다 이런 심각한 병에 걸렸는지, 알마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너무 늦은 발견이었다. 청주, 대전, 서울까지 오가며 두 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의 수술을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평소보다 더 부지런히 살았다. 자신의 건강을 증명하려는 듯, 운동도 꾸준히 하고 밥도 잘 먹었다. 그러다가도 문득 아파서 방을 굴렀다.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투병 생활이 6개월쯤 접어들자 몸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복수가 차서 배가 가득 불러왔고, 얼굴이 누렇게 떴다. 누워서 지내는 남편을 알마는 종일 옆에서 돌봤다.
"필리핀 가지 마. 은지랑 끝까지 여기서 살아야 해."
"나 안 죽어. 누가 죽는다는 거야."
신랑은 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알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알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진단을 받은 지 1년도 안 돼서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쉰, 알마는 스물아홉, 결혼한 지 4년 만이었다.
커다란 이층집에 알마와 딸 은지 단둘이 남았다. 두 모녀의 장화와 슬리퍼가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김성인
이층 집에 알마와 네 살배기 딸 은지 단둘이 남았다. 집에 들어오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한 1년은 넋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한국에서 살기를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수없이 많다.
'필리핀으로 돌아갈까? 그럼 우리 딸은 어떡하지?'
'만약'이 꼬리를 물었다. 남편을 원망하려고 해 봐도 잘해준 기억뿐이었다. 4년 사는 동안 싸운 적이 없었다.
3남 5녀 중 남편은 여섯째였다. 아래로 여동생을 둘 둔 막내아들이었다. 막내아들이 제일 먼저 떠난 집안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7남매가 슬픔을 함께 진 덕에 이겨내기도 쉬웠다.
"알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해."
형님들, 올케들, 아주버님들은 알마를 앉혀두고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면 가~ 한번 만나 봐."
"아녜요. 저 그냥 딸 키우고 살 거예요."
은지 고모부는 알마 집 마당에 예쁜 정원을 가꿔주었다. 봄에는 꽃잔디가, 여름엔 도라지꽃이 정원을 뒤덮었다. 고모는 알마에게 '양성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알마는 남편 대신 양씨 집안의 막내딸로 살고 있다.
알마 라모스(33)가 집 앞에 서 있다. ⓒ 김성인
남편과 함께한 4년,
남편 없이 지낸 4년
남편이 있을 땐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했다. 남편이 떠난 후, 알마는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했다. 그런 알마의 발목을 잡은 건 국적이었다. 한국생활 9년 차인 알마는 아직 한국 국적을 따지 못 했다.
외국인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방법은 일반귀화, 간이귀화, 특별귀화의 세 가지가 있다. 일반귀화 신청자는 필기시험과 면접심사를 거친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은 간이귀화를 통해 더욱 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국적법 제6조 제2항
배우자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외국인이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5년 이상 계속하여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지 않아도 귀화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
- 그 배우자와 혼인한 후 3년이 지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
- 위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였으나,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주소를 두고 있던 중 그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또는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자로서 위의 잔여기간을 채웠고 법무부장관이 상당(相當)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 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나, 그 배우자와의 혼인에 따라 출생한 미성년의 자(子)를 양육하고 있거나 양육해야 할 자로서 위의 기간을 채웠고 법무부장관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결혼이주여성들은 혼인 후 2년만 지나면 국적법 제6조 제2항의 첫 번째 요건에 해당하게 된다. 혼인귀화 신청자는 필기시험이 면제되므로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은 혼인 몇 년 후 면접심사만으로 수월하게 국적을 취득한다. 면접심사 당일에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와 동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알마처럼 남편이 사망해 혼인이 단절된 경우엔 필기시험 대상이 된다. 이혼이 아닌 사별인데도 혼인귀화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곁에 있고 없음에서 비롯되는 차이를 알마는 이해할 수 없다.
국적법 시행령 제4조 제3항단서 및 국적법 시행규칙 제4조 제1항·제3항
- 부부가 함께 귀화허가 신청을 한 경우의 배우자 1명-미성년자
- 만 60세 이상인 사람
-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 또는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
-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
- 귀화허가 신청일을 기준으로 최근 3년 이내에 귀화허가 필기시험에서 100점을 만점으로 하여 60점 이상을 득점한 사람
- 그 밖에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사람
※귀화허가 신청 시 필기시험 면제 요건
남편을 보내고 알마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은 공부였다. 2015년부터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을 이수하며 국적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귀화 신청 시 필기시험이 면제되지만, 프로그램 과정 중 이뤄지는 중간평가도 만만치 않은 산이다.
1부터 5까지 총 다섯 단계의 과정에서 알마는 5단계까지 왔다. 알마는 5단계 종합평가를 두 번 치렀다. 그리고 얼마 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여기저기서 합격 소식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알마, 합격했어?"
"나 떨어졌어요."
"무슨 문제가 나오길래? 왜 떨어져~"
"OO 엄마, 이거 다 어떻게 외워요? 1945년 광복절 있잖아요, 그거 이유도 알아야 돼요. 1950년, 6·25잖아요. 그거 다 알아야 돼~ 대통령 도와주는 건 국무총리! 우리나라 법은 민법, 형법! 행자부 뭐 이거저거 다 알아야 돼. OO 엄마는 다 알아요?"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기면 되는 시험. 59점이 적혀 있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알마는 너무 속상해서 울었다.
"면접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애국가도 부르고. 4절까지 다 외웠는데 면접관이 그냥 1절만 하라고 해요. 아마 필기에서 떨어진 것 같아요. 이혼할 때 받는 게 위자료인지 합의금인지, 헷갈리잖아요. 네 개 중에 하나 고르면 되는데 너무 헷갈려. 일주일 동안 농사도 안 나가고 밤 열두 시까지 공부했어요. 근데 왜 떨어뜨리는 거야 정말."
사회통합프로그램 종합평가는 4지 선다형 객관식 필기시험·쓰기 시험·면접 심사를 한다. 모의고사 형태로 알마가 쓴 작문에 선생님이 첨삭해 두었다. ⓒ 김성인
눈물 젖은 성적표를 뒤로하고 알마는 다시 절치부심한다. 9월 4일에 개강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 50시간 수업을 이수하고 10월 21일에 종합평가를 치른다. 이미 들은 수업이지만 평가에서 떨어지면 50시간을 재이수해야 한다.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재. 알마는 중급으로 시작해 심화 과정까지 마쳤지만, 시험에서 연속 두 번 아깝게 떨어졌다. ⓒ 김성인
은지랑 같이
집에 가고싶어요
어쨌든 공부가 한국에서 사는 데 많이 도움될 거로 생각하면서도, 아깝게 낙방하고 나면 속이 터진다. 아이는 점점 크고,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많은데, 알마가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한국인의 아내로, 한국인 딸의 엄마로 살면서도 알마는 2년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외국인이다.
작년 겨울, 딸과 필리핀 친정에 다녀오려고 했을 때다. 필리핀 국적의 알마가 다녀오는 데는 걸림돌이 없었지만, 딸 은지가 문제였다.
필리핀 이민법에 따르면 부모나 만 20세 이상의 법적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만 15세 미만 소아는 필리핀에 입국할 수 없다. 은지는 지난해 말 만 7세였다.
부모에도 차별이 있어서, 아빠랑 동반할 경우 여권에 찍힌 성(姓만) 같으면 된다. 영문 스펠링만 같다면 남자 성인 누구라도 부모를 대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동반할 경우엔 친부모임을 증명할 수 있는 영문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해야 한다.
알마는 분명 은지의 엄마다. 세상 사람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알마는 한국 주민으로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신분이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세대주는 만 7살 은지고, 알마는 등본 하단에 작은 글씨로 '외국인 모(母)'로 표기된다.
법만 놓고 보면 모녀가 필리핀에 다녀오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1년도에 친지 여럿과 필리핀에 방문했을 때도 당시 만 3살이던 은지의 필리핀 입국이 문제가 됐다. 당시엔 아버지와 동행했음에도 필리핀 현지 출입국신고서에서는 보호자 증명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화로 30만 원가량의 뒷돈을 쥐여주고서야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번엔 모녀 둘이서만 다녀오는 여행이었다. 영문으로 된 각종 증빙 서류를 준비하고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지만, 은지의 필리핀 입국이 거절될 가능성이 여전했다. 외국인의 출입국은 해당 국가의 재량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더구나 최근 동남아에서 아동 인신매매가 빈번히 이뤄지는 것도 출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진 데 한몫했다. 뒷돈을 준대도 얼마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 혼자 가면 그게 무슨 행복이야. 우리 친정엄마 친정아빠도 다 은지 보고 싶어 해요. 나 혼자는 안 가."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어도 연로한 탓에 그럴 수 없다. 82세 친정엄마, 84세 친정아빠는 막내딸이 언제 오나 하는 기다림으로 산다.
"알마야, 얼마 안 남았어. 언제 오니?"
막내딸 시집가던 날 엉엉 울던 아빠는 자꾸만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한다.
올해 안에 꼭 합격하길
알마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시골에선 다들 네다섯 시면 눈을 뜬다. 알마도 딸 준비시켜서 학교 보내고 나면 일을 나선다. 하루 논에 나가면 다음 날은 들깨밭으로 향한다. 풀 약 치고 물 대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다.
집에 일이 없으면 이웃으로, 옆 동네로 아르바이트를 간다. 고모네 사과밭, 큰집 대추밭, 친구네 아로니아밭까지 다니다 보면 여름이 다 간다.
올 초부터는 토요일마다 회인중학교에서 방과 후 영어수업도 시작했다. 회인면에 사는 초등학생, 중학생과 함께 하는 공부방이다.
무더위가 잦아들 즈음, 9월 4일에 사회통합프로그램 수업이 다시 시작된다. 충북대학교에서 매주 월수금 오후에 세 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출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만일 제쳐두고 가야 한다.
알마가 평소에 차려 먹는 밥상. 된장찌개에 보리를 조금 섞은 쌀밥, 검은콩자반, 고추부각, 김치, 가지볶음, 오이피클, 아삭이고추된장무침까지 전부 손수 만들었다. ⓒ 김성인
그녀의 밥상은 한국식이고, 딸도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작물을 키우는데, 국적만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한국인이지, 그럼 누가 한국인이에요?"
대한민국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농사짓고 딸 키우는 그녀는 말한다. '알마'가 아닌 '양성은'으로 불릴 날을 기다리며 그녀는 오늘도 이른 아침 밭으로 간다.
알마는 오토바이를 타고 회인면 곳곳을 누빈다. ⓒ 김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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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