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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란 Mar 06. 2021

도덕과 정신분석 (ft. C.s 루이스)

도덕과 정신분석




내가 도덕을 제일 처음 배웠던 것은 중학교 시절이 최초다.
그 전에도 가정에서 배웠겠지만 그게 도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도덕 선생님은 "아무도 지키는 자가 없을 때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청소를 한다면 도망간 사람과 남아서 청소한 사람이 각각 얻는 유익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끝까지 남아서 청소한 사람은 청소하느라 노력이 들어감은 물론이요, 먼지를 마셔야 하니 건강에도 좋지 않을텐데 그 규칙을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함으로서 얻는 유익이라는 게 무엇이냐는 부가 설명을 보태셨다.

그리고 그 질문은 25년간 내 마음에 남아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도덕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도덕을 추구하고 있는,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유익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루이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 인간이라는 기계를 올바르게 움직이기 위한 기술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지금 당장 눈앞에 물질적 유익과 이기적인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그 끝에 결국 행복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말이다.
영혼이란 그런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에 무수한 선택이 쌓여서 영혼에 흔적을 남기게 되고
그 흔적은 결국 영원이라는 시간에 박제가 되고 만다.

내가 청소를 하면서 다른 친구보다 다소 많은 먼지를 마셔 내 폐에 먼지라는 흔적은 남을지언정,
나는 책임을 다한 하나의 성취를 영혼에 담아내게 되는 유익이 있다.
이것은 인간을 그저 하나의 물질로만 여기는 사람에게서는 평생을 가도 풀리지 않는 복잡한 문제가 될 것이다.
물질에 무슨 혼이 있으며 혼이 없는 물질에게 윤리며 도덕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저 서로 물고 뜯으며 내것을 더 성취하려고만 하면 되는 것을. 그러니 유물론, 진화론의 지식으로 가득한 지성인들에 의해 채워지는 학문세계와 사회가 지옥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려는 마음과 그것을 부정하는 마음간의 전쟁이다.

유년시절에는 아빠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양심을 지키고자 했고
십대 소녀시절에는 도덕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번 도덕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이란 매번 처음부터 돈을 다시 갚으라고 찾아오는 기억상실증 빚쟁이처럼
내게 부단한 노력을 요구했고 앞서 행했던 의로움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도덕적 삶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먹는 순간 받아가야 할 돈의 액수를 부풀리는 고리대금업자같을 때도 있었다.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의롭고 살아간다는 것은 매번 해병대 훈련소에 온 듯한 고단함을 주지만
나와 네가, 우리가 서로 아름다운 조각들처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느껴보는 그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공동체속에 심어 놓으신 도덕이라는 보물찾기를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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