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교육 칼럼
배를 운전하는 법을 모른 채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엄마가 된 기분이 꼭 그랬다. 하나에서 열까지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게 있다고 해도 근사하게 해낼 힘이 없었다. 그만큼 엄마라는 새로운 직분은 고단했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배운 적이 없는 엄마로서의 능력이 점차 솟아났다.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게 되고 주님이 어떤 기도에 기뻐하시는지 알게 될 뿐아니라 삶의 작은 선택과 대화속에서도 어떤 기준을 갖고 자녀를 양육해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얻게 되었다.
믿음의 선배들과 멘토가 되어주신 분들의 애정 어린 조언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격대교육의 김홍도 장로님이 추천해주신 칼 비테 목사님의 자녀양육은 우리 부부에게 구체적인 인턴십이 되어 주었다.
칼 비테는 그의 아들을 폭넓은 학문에 대한 역량 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성숙한 인격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자녀로 키웠다. 그런데 모든 것 중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칼 비테가 교육을 하는 방식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철저히 삶으로 보여주는 진실한 교육을 했고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에 정성을 기울였다.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며 적용점을 하나씩 발견해 가다보니 칼 비테의 교육에 담긴 중요한 철학은 ‘시대에 편승하지 않고 바른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용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재능 체감의 법칙’을 주장하며 모든 아이들에게는 천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영아시기에 최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믿고 아들을 정성스럽게 교육했다. 그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저능아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흔들림 없는 교육을 일관되게 받고 결국 행복한 천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칼 비테의 이러한 교육은 주변의 비난도 무수히 받았다. 100명중 99명이 가는 길로 가지 않고 자신의 믿음대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기 때문이었다. 그 중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에피소드는 검약에 관한 일화였다. 호화로운 파티를 자주 여는 이웃집을 부러워하는 아들 칼에게 칼 비테는 그것을 부끄러운 낭비라고 가르쳤다.
나는 딸에게 선교경제를 가르치고 싶었다. 경제에 대하여 깨끗한 청지기로 성장하길 원했다. 그러다가 칼 비테와 같이 삶을 통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을 응답 받았는데 신생아 무렵의 옷을 모두 물려받아 입히는 것이었다.
옷뿐 아니라 모든 물품을 물려받아 사용했다. 전도와 선교에 자신의 경제를 사용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먼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데 절약은 그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소비를 하기 위한 돈을 많이 벌어들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빠져나와야만 가치 위주의 직업을 가지는데 수월해진다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육아용품을 구입하는 일을 절제했다. 우리 부부는 좋은 모범을 보여주는 책을 읽어 나갈수록 교육열이 과열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차분해졌다.
여유 있게 아이를 바라보며 소신껏 교육하는 것이 지혜로운 교육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이에게 담아 주신 배움의 시간표와 흥미, 호기심을 믿어주고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아기는 부모로서 지켜보니 재능체감의 법칙대로 천재성을 지닌 것이 확실했다. 왕성한 호기심과 놀라운 학습력, 집중력, 심층연습하고 피드백하는 능력과 상황판단력, 공감능력까지.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능력은 영적 민감성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성인의 언어를 쓰지 않는 기간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질 정도였다. 언어로 대화하지 않는 아기는 오직 영적인 영향만으로 성장하는 일련의 기간을 갖는다. 이때 복음적인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은 천하와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일이다.
아기를 안고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든 순간마다 아기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양했다. 그 영혼은 반드시 반응을 보였다. 그럴때면 나는 아기의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복음을 설명해주고 축복해주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마다 오늘 딸이 살아가는 ‘하루’는 천년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려 애를 썼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이 땅의 삶에서 이것과 유사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전달할 부모가 될 힘도 씨앗으로 심어 놓으셨다. 그래서 은혜의 비가 내리면 그 씨앗은 점차 자라서 싹을 틔우고 느티나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러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글. 이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