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궁극적으로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항상 말한다. 어린 독자일수록, 초보 독자일수록,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독서 이유에 따라 그 하위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계속 읽는 사람으로 살다보면 결국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라고 함은 단순한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생각하는 문제가 아닌 어떤 주제나 소재를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문제 해결력을 키우고 세상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힘을 갖는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고는 있는데 '생각하며 읽고는 있을까?' 궁금해해시는 분들이 많다. 이 책 저 책 보는 것 같은데 무언가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면,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궁금할만하다. 독서량이 많을수록 그 궁금증은 아마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독서라는 건 타인이 쓴 글을 읽어나가는 행위이다. 타인이 쓴 글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상상을 그 사람의 어휘로 그 사람의 서술 구조에 맞게 쓴 글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결국 그 글이 어떤 종류든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고 보면 된다. 꾸준히 읽기만 한다면 결국 성장한다고 내가 자주 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그 사고를 더 촉진시키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도와주면 좋은 부분들이 있다. 우선 어린이들은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는 읽고 있는 그 텍스트 자체가 재밌어서 독서를 한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읽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생각하는 힘이 충분히 자라고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걸 인지하도록 돕는 질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피해야 할 질문이 있다. '생각이 어때?' '느낌이 어때?'라는 말이다. 그런 뭉뚱그려진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맞게 '재밌다'정도로 밖에 대답할 수 밖에 없다. 느낌이 어땠냐는 질문 또한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는 매우 추상적인 단어라서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하나 오히려 혼란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서 책을 읽고 일어나는 복잡한 사고 작용을 오히려 단순화해 버릴 수도 있다. 그 어떤 책이 재미있다, 없다, 슬프다, 웃기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 후에 독후감을 쓰기 때문에 독후감에도 재미 유무나 슬픔 유무 등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긴 시간 즐거운 독서를 했는데 그 독서 후의 재미를 감정 단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면 슬프지 않을까, 게다가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가 질문 자체의 어설픔에서 비롯된거라면 더 슬프지 않을까.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미 머릿속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이 일어나는데 두 가지 질문이 오히려 생각을 가로막는다니 이렇게 슬픈 일이 있을 수가~
독서 후 생각의 자극을 돕는 건 '느낌'이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책 속 사건'이나 '인물'을 매개로 그냥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생각하라고 해서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도록 그냥 대화를 하는 것이다. 드라마 본 후 이야기를 하듯이 하면 되는 것이다. 어른이 같은 책을 읽지 않아도 아래 질문들을 기억하면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누구야? 누가 나왔어?
그 사람한테 무슨 일 생겼어? 궁금해~!
무슨 일 벌어졌어??
어머어머 대박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세상에 세상에 상상도 못한 결말이네!
근데 듣고 보니까 너 지난 번에 있었던 일이랑 비슷하네?
그 때 너 어떻게 했더라??
아닌가??? 그 때 뉴스에 나온 사건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더라??
작가가 누구여? 우와! 그 분이구나.
다른 책도 궁금하네!! 읽어 보자~
질문만 모으니 너무 호들갑스러워보이지만 편한 대화를 강조하기 위해 편히 써 보았다.ㅎ 이 질문들은 대략의 책 이야기를 나눌 질문들이며 물론 책마다 달라져야 하고 어린이의 대답에 따라서 수정되어야 하며 방향 또한 달라질 것이다. 고전 명작처럼 복합적 사고를 요하는 책은 훨씬 더 심층적 질문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다시 말하지만 큰 맥락을 보여드리기 위한 질문들이다.
어떤 질문은 오래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어떤 질문은 그냥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은 일단 책 속 사건이나 인물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이 자란다는 것! 수업 중 편한 대화를 위해 책갈피로 만들어 쓰고 있고 이건 '생각정리독서법' 책에도 실었다.
나도 독서교실 어린이들과 이야기책을 읽은 후에 위의 맥락대로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제한된 시간 안에 토론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부수 자료 준비, 더 디테일한 질문 마련은 당연히 더 하고 있으며 적절히 가감해서 한다. 이런 책대화가 쌓이면 아이들은 혼자 읽으면서도 조금씩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생각 자동화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런데 요즘 조금 슬픈 사실은 바로 이런 생각을 가로막는 두 번째 이유가 아이들의 바쁜 생활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들고 있는 한 두 시간만 독서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다양한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들이 자신의 정서와 두뇌를 자극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고를 한다. 한 마디로 눈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생각'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사람과 세상을 보는 태도 또한 읽지 않는 사람보다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나는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래서 책을 읽는 이유는 1등하기 위함도 아니요, 공부를 잘하기 위함도 아닌, 1등 못하고 공부 못해도 세상 살아갈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남다른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도 탐구할 것이며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잘 살지 못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어린이가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게 하려면 책을 읽는 시간을 넘어서 어쩌면 더 중요한 일상은 어떻게 살도록 도와야 할까? 나는 비양육자이지만 이것이 내 인생의 큰 고민일 정도로 나에겐 제법 심각한 문제이며 관심사이다. 어린이들은 아직 양육자의 도움을 받을 나이이니 자기 의지와 생각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삶의 모든 시간을 짜여진 시간표대로만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