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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비유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해왔어. 세상은 단순할까, 복잡할까? 사실 난,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있어. 세상은 당연히 복잡해. 그야, 이거만큼 골치 아픈 걸,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야. 세상은 분명 복잡한데, 너무나 명백할 정도로 단순한 때가 자주 있다는 거야. 벌써 이상하지? 나도 좀 그렇게 느끼고 있어. 맞아. 어쩌면 이건, 나만의 문제일지도 몰라. 세상이 복잡한 거랑, 그 속의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고 있는 건 별개의 문제인데, 굳이 엮어서 생각해 보려는 억지일 수도 있고.


정말 다행인 건, 나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는 거야.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의문들엔, 일단 문을 닫아놓고 살아가지. 하지만 적절한 비유라도 하나 찾게 된다면, 얘기가 너무 달라지는 거야. 또, 난 그런 비유를 완성하기 위해 최대한 몰입하는 사람이지.


난 매듭의 비유를 발견했어. 알렉산더의 오래된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거야.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매듭을 푸는 방법 말이야. 알렉산더는 매듭을 칼로 두 동강 내어 풀어버렸지.


정말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야. 물론 무식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야, 훨씬 현명한 방법을 제시한 거지. 실제로 정확한 것들은 모르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로 유용한 거야. 난,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많은 문제를 지나왔다고 봐.


내가 집중한 건, 그 비유 자체야. 복잡하게 얽혀있는 매듭은 이 복잡한 세상이고, 알렉산더의 칼이 우리의 강력한 문명이라고 생각해 보는 시도지. 이번만은 매듭에 집중해 보자는 거야.


물론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매듭으로 비유하면, 그 특징은 한정되어 있다고 봐. 매듭은 아무리 복잡해도, 한 붓 그리기야. 여러 끈을 사용했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지.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있다 해도, 결국에 풀어버리는 방법은 있는 거야. 엉켜있는 방식을 역행해 보면 될 일이니까. 결국, 아무리 해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된 문제일지라도, 정답은 있다는 말이야.


이게 무슨 헛소리냐면,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엔 풀어버리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란 거지. 물론 우린 일단, 일도양단부터 해버릴 거야. 그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니까. 당연히 그것도, 매듭을 풀어버리는 하나의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속이 시원하지 않아. 난 정답보단 풀이 방법에 신경 쓰는 변태니까. 세상이라는 놀라운 매듭을 단칼에 해결해 버리고 싶지는 않아. 아무리 단순하고 잔혹해 보여도, 세상이 사실은 매우 복잡하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한 붓 그리기야. 내가 굳이 이러는 이유는, 세상이 아무리 복잡한 실타래 같아도, 결국엔 그 모든 실이 하나로 연결되어선, 시작과 끝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지. 어쩌면 이게, 세상이 단순하게도 보이는 이유일지 몰라. 뭔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몇 가지 거대한 원칙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지 않아? 예를 들면, 과유불급이라던가. 흥망성쇠, 생로병사처럼. 덧없는 인생에 대해 우리가 끌어 모은 지혜 말이야. 난 그런 직감에 확신을 가진다는 거지.


비유를 좀 더 넓혀보자. 난 세상이 무한 차수의 큐브라고도 생각해. 물론 매우 복잡한 한 붓 그리기 매듭이라고 생각하는 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하지만, 매듭이 아니라 큐브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더 수학적으로 통용되는 공식이 있을 거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난 매우 만족스러워. 물론, 무한 차수의 큐브라서 공식을 몇 번이나 써야 하고, 훨씬 빨리 풀어버리기 위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공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그런 게 세상이 복잡한 모습일지도? 언젠가 이 매듭을 풀다 보면, 일도양단 외에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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