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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잡담 - 소설

“사람들이 귀찮은 걸, 본능적으로 피한다고 했지? 더 많은 예시가 있을 거 같아. 문에 ‘당기시오’가 적혀 있어도, 일단 밀고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오~.

“맞아! 사람들은 문을 꼭 밀고 들어가더라고!”


(중략)


“그럼, 이건 어때? 아끼는 반찬을 나중에 먹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귀찮은 것을 미뤄버리는 거 말이야!”

“오! 좀 다른 거 같지만 비슷하네.”


(중략)


물론 재밌는 대화지만,

“이제 푸른이도 같이 얘기하면 안 될까?”

“오, 안 돼.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래, 난 가만히 있을게.”


어우…….

“넌 항상 고지식하구나?”

“현명한 거야. 물론 고지식하단 단어도 나랑 딱 맞는 표현이긴 해. 그 어감이 안 좋아서 그렇지.”


그럼,

“있지, 그렇게 효율이 중요하고 할 일도 많으면, 왜 일하는 동시에 대화하진 못 하는 거야? 이건 정말 동시에 할 수 없는 걸까?”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거 같네. 적어도 우린, 그렇게 안 돼. 난 특히 더 그렇고. 여태 많이 시도했지만, 난 절대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더라고. 나도 일하면서 재밌는 걸 할 수 있다면, 너무 신날 거라 생각은 해. 하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네가 왜 그러는지 알 거 같아?”

“어떤 건지 감이 오는 정도? 난 집중하겠다고 정한 거에, 최대한 집중하는 변태더라고. 흥미가 있다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연마하지. 나한테 그 밖에 일은, 부수적일 뿐이야. 어릴 땐, 당연히 그게 정상이라 생각했어.”

“그럼, 지금은 친구랑 대화하는 일에 빠져있네?”

“흠, 글쎄? 아마 맞는 거 같아.”


(중략)


“중요한 건,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겼다는 거야. 네가 뭔가를 느끼는 동시에, 내가 규칙을 어겼다는 걸 알아버려서 그런 거지.”

엄…

“그건 참 복잡하네. 네가 널 통제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사람은 실수하는 법이야. 나를 봐! 얼마나 덤벙대니. ㅎㅎㅎㅎ”

“알긴 아네.”

하…, 푸른이, 쟨 진짜…


(중략)


“내가 자신의 룰을 지키려는 이유는, 합리적으로 살기 위해서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시작은, 자신이 자신에게 들킬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거거든.”

오우!

“좀 더 자세히 말해줘.”


“모든 존재는, 지속 가능한 생활방식을 잘 알고 있어. 난 그걸 일종의, 합리적인 상태라고 봐. 하지만 그런 생활방식이 정확히 뭔지 아는 건 아니지. 그냥 살아지는 대로,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거였으니까. 누구도 그 원리를 정확히 알진 못한다는 거야.”

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네. 가려움이 어떻게 올지 알고 있다면 가렵지 않지만, 모른다면 가려운 거야. 똑같은 충격에도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거지.”


“뭐, 그거로 좋아. 그럼, 인간이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 순간을 얘기할 수 있을 거야. 어느새 인간은 조화 속에 사는 게 불가능해지고 말았어. 문명이라는 발명품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지나와 버렸거든.”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모든 개체가 같은 행동 메커니즘을 가질 수 없었어. 누군가는 더 많은 발전을 원했고, 누군가는 모든 걸 모르는 척하는 길을 택했어. 누군가는 어제처럼 고요한 오늘을 선택하기만 하는, 삶을 택했지.”

당연한 걸까? 슬픈 지점인 걸까?


“하지만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모순의 존재를 탐구하고 있었어. 그들은 세상에 원래 있던 모순을 연구하기도 하고, 새로 생겨난 모순을 규명하려 했지.”

이상하지.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자신의 규칙을 정하고 제어하려는 건, 그런 맥락에서 시작된 거야. 난 세상의 모순을 보면서 스스로 판가름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어. 그 원칙대로 나 자신이 살아갈 수 있어야, 떳떳하게 내 지식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이건 마치…….


“난 그런 사람이야. 세상이 굴러가는 원리를, 기록이 가능한 형태로 구성해 내는 거지! 결론만은 노래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나도 이렇게 엉망진창인 세상이라도, 여전히 인간에게 희망을 걸고 있어. 난 우리의 의식과 합리가, 자연의 그것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봐. 그를 위해선 끝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그걸 몸과 행동에서부터 피워 나갈 수 있어야 해. 내가 규칙이나 규정에 멍청할 정도로 집착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이유가 이거야. 좀 극단적이지? 그래서 이건 동시에, 참으로 멍청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일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우선, 재밌고 문제가 없으니까 넘어가 버리는 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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