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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화 선물 - 소설

“난 그런 걸 떠나서, 고맙고 기쁜걸. 이게 내게 필요했다거나, 정말 예쁜 선물이라는 사실보다, 누군가 날 생각해서 준비해 준, 마음의 표현을 받는 게 기쁜 거야.”


“초롱인 참 착하네.”

아냐,

“당연한 거지! 잔혹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건 하나의 축복이야.”

“하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은걸.”

?


“관심을 받는다는 건, 하나의 축복이 맞아. 동시에, 사람은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단순한 존재지. 누군가는 그 관심을 인지하지도 않고, 불편하게 느끼는 법이야. 누군가는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모른척하며, 삐뚤게 행동한단다. 누군가는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지.”

“…….”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모두가, 어떤 선물을 받든,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진 않아. 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적인 틀 속에서 행동하게 되는 거야. 실제론 사람을 가리고, 물건을 가리고 있으면서 말이야.”


(중략)


“선물이 성의의 표현으로 고정되어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야. 하나의 관습이 된 거지.”


제발 그만했으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뭐야?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고, 좋으면 좋다고 얘기하고, 애매하면 애매하다고 얘기하면 되잖아.”

“그럼, 너무 많은 게 귀찮아지기 때문이야.”


?

“무슨 소리야?”

“사람들은 복잡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거지. 조금이라도 복잡하고 안 중요하다 싶으면, 단순하게 생각하려 해. 좋은 말로는 전통과 예식을, 나쁜 말로는 편견과 규정을 정한다는 거지. 선물을 받으면, 어찌 되었든 기뻐야 한다는 수식이 사회 전체에 퍼져있다는 거야.”


“그럼, 다 좋다고 쳐. 근데, 선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거야? 어떤 의미든, 하나의 재화가 손에 들어오는 거잖아.”

“바로 그 지점이 문제야. 그 선물이 비재화일 수도 있잖아.”


(중략)


“재화가 아니라니?”

“유용하지 않은 물건이란 뜻이야.”

“아무런 역할이나 의미가 없는 것이 세상에 있다고?”

오~ 의외로 날카롭다니까~.


“아니, 세상에 그런 건 절대 없어.”

그럼. 확실하지.

“? 방금은 재화가 아니라며.”

“재화라는 관념은 지극히 사회적이야. 철학적인 물음을 벗어나서, 어떤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은 물건을 비재화라고 하지. 한 기업의 회장님에게 산업 폐기물은, 처리 비용만 늘어나는 비재화인 거야.”

고럼, 고럼.


“…….”


(중략)


“정말… 이기적인 개념이구나. 과자를 먹는 건 기쁜 일인데, 과자랑 부스러기가 별개라고 생각하는 거야. 먹는 과자는 사랑하고, 부스러기는 따로 미워하는 거지. 그게 다 하나인 걸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역시 넌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아. 나랑 다르게…….

“정확해. 그런 걸 비재화라고 하는 거야.”


“누군가에겐 선물도 비재화일 수 있어. 정말 센스 없는 선물을 받아서, 쓸데없다고 느끼기도 해. 누군가는 선물에 들어간 정성과 별개로, 선물이 주는 유용성만을 판단하지. 누군가는 선물이라는 의례 자체를 싫어해서, 모든 선물이 비재화일 수도 있어. 누군가는 선물을 빙자해서, 수여자를 엿 먹이기도 해.”

“선물에 대해, 모두 다르게 느끼는구나.”

오~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하도록 하는 압력도 있지.”

“…….”


(중략)


“난…, 난 비재화라는 개념이 슬퍼. 나도, 사람들이 소중한 것을 분류해 대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건 너무 좋지만,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마음이, 어쩌면 배신당할 수도 있다는 게 훨씬 슬퍼.”

……. 넌 그런 아이지.

“…….”


(중략)


“‘선물’이라는 조그만 주제로도, 세상에 가득 찬 모순을 확인할 수 있어.”

사람 하나 울리겠네. 노래가 사고 칠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건, 모든 걸 수식과 계산 속에 넣었을 때 만들 수 있는 결과야. 세상이 품은 모순에도 단계가 있거든. 수식과 계산을 넘어서서, 정제할 수 없는 관념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어.”

??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아니면 초롱일 생각해서 말을 지어내는 거야? 네가?!


“결국 우린 물건이라는 의미의 선물만 생각해 본 거야. 선물이 정말 무엇인지를 벗어나, 이 개나리 꼬까신이 뭔지를 생각한 거지.”


(중략)


“결국 이건 물건일 뿐이야. 중요한 건, 여기 들어간 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받는 너의 마음이지. 선물이라는 의례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더라도, 그것도 의례일 뿐인 거고. 의례도 그냥 물건과 마찬가지거든. 네가 고맙고 기뻐서, 나도 마음이 좋으면,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는 거야. 선물이라는 의례 탓에, 받는 사람이 고마운 척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비겁한 일이 아니야. 그 사람과 상대방의 관계가 아주 조금 구려질 뿐인걸.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야”

네가 이렇게 허점이 많은 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건, 코미디야. 그런데도 초롱이는 뭐가 좋은지, 금세 얼굴이 밝아. 뭔가 짜증 나네.


(중략)


초롱인 갑자기 싱긋 웃더니, 다시금 개나리 들판을 휘젓고 있어. 뛰다가도 폭 하고 쭈그려선, 뭔가를 만지작거렸고, 싱그럽게 웃으면서 또 다른 곳으로 뛰어가고, 쭈그리고 만지작거리고 뛰어갔지.

어쩌다 보니, 나랑 노래는 놀이터에 노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가 되었어. 나란히 앉아선,

“참 잘 놀지?”

“그러게.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걸까?”

“모르지. 날 때부터 저래 팔팔했으까?”

“우리랑은 좀 다르네.”

이러고 있었으니까.


“…….”

“…….”

“아깐 왜 그런 거야?”

꼭 내가 직접 물어봐야 하지 넌?

“뭘?”

시침 떼지 말어! 이 눈을 보고도 그럴 수 있을까?

“ㅋㅋㅋㅋ. 정말 모르겠어, 인마.”

뻔히 보이게 거짓말을 하시겠다~.


“그 천하의 고집 센 노래님이, 왜 남이 원하는 말을 해주냔 말이지.”

꼭 이렇게 직접 설명을 해줘야 하니? 시침 떼는 게 뻔한데?

“……. 그러면 안 되냐?”

“허! 참, 나.”

“좋아하는지도.”

! 뭐…

“질투하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풉! 아하하하하하하하.”

죽여야겠다. 흡!

“워, 워~. 잠깐만 참아 봐~. 폭력은 옳지 않아. 장난이었어~.”

하…….


(중략)


“아깐 왜 그런 거냐고 물어도, 난 내 스타일대로 초롱이랑 대화했을 뿐이야.”

또!

“진정하래도. 물론 네가 무슨 의문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넌 아마, 내가 갑자기 의견을 굽힌다고 생각했을 거야. 당연히 그렇게 보였을 거고. 하지만 난 네가 아는 것처럼,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야. 이번에도 그랬어. 다만, 초롱이가 납득할 영역에서 얘기를 멈춘 건 맞아.”

그건 정말

“무슨 말이 그러냐?”

“너랑 내가 통하는 건, 고집이 센 거랑, 세상을 복잡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거야. 세상은 복잡한 게 맞아. 세상은 모순덩어리니까. 하지만 이번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더 세상을 알게 해주는 것처럼 보여. 인간의 감정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계산적인 모순을 없애버린 거지. 하지만 정작, 감정이란 걸 고려하면, 더 많은 모순이 앞에 있다는 걸 곧 알게 되지. 감정이란 예식 따위보다, 훨씬 더 알 수 없는 것들이니까. 결국 세상이 모순덩어리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초롱이를 위해서 말을 꾸며낸 게 맞네.”

“아니. 그건 모순이 복잡한 모습만 가지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만든 모순이야.”

“점점 모르는 소리만 할래!”

“ㅋㅋ 초롱일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뭐라고?”

“천천히 생각해 봐. 그게 내 질문이야. 네 질문에 대답해 줬잖아?”

녀석이 턱 끝을 치켜들었어. 그 끝엔, 초롱이가 숨을 쌕쌕거리며 달려오고 있었지. 손에 날계란이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하… 하…. 오래 기다렸지?”

“아냐. 푸른이랑 재밌는 얘길 하느라, 시간 가는지도 몰랐어.”

“그래? 다행이다! ^^”

이 년놈들이 또!


“나도 노래한테 선물이 있어.”

그래. 네 작은 손바닥 위엔, 더 작은 개나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개나리 반지네.

“안 그래도 온통 개나리 천지고만, 너희 둘은 어지럽지도 않냐?”

“갑자기 뭘 새삼스레?”

노래는 이렇게 한 박자 능청을 떨더니,

“고마워~. 이게 뭐야?”

“노래의 봄!”

허!


“음? 아하~.”

노래 녀석은 그 찰나에 눈치챈 모양이야. 분명 내 풀 반지를 봤어!

“이건 이를테면, 스페셜 에디션인 거네?!”

뭐라…

“음~ 그런 건가? 으흐흐흐.”

멋쩍게 머리 긁기는……. 날 비꼬는 거거든!


“개나리가 깍지 끼는 노란 봄이라~. 시적이야. 아~주 맘에 들어. 나도 고마워 초롱스.”

스~?!

“의례 하는 말 아니지?”

“아하하하~. 이거 한 방 먹었네? ^^”

……. 그래 둘이 잘해보라지. 결국 아무리 비재화로 느끼더라도, 안 그런 척하는 게 현명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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