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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추억


난 아무래도, 선물이라는 거에 익숙해지지 않아. 언젠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받는 건 중요한 거’라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지…….


어제만큼 생생하게 후회하는 일이지만,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야. 녀석이 해외여행을 갔다 온 직후였지. 여행 선물로 뭐를 받고 싶은지 미리 얘기할 정도로 친하고, 각별한 사이였어.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멍청한 내가, 알아서 기회를 차버린 일은 밀어버리자고. 요점은 내가, 남이 기껏 준비한 선물에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는 거야. 내색은 안 했지만, 오히려 난 단단히 삐진 상태였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래선 안 되는 거였나 봐.


일의 전말은 이래. 녀석이 전혀 다른 선물을 꺼내면서, 내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자신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대. 죄책감이 들었다는 거야. 물론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어. 하지만 마음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지. 당시에도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고, 객관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었으니까.


그건 사실상, 내가 녀석에게 바라는 모든 걸 끝내 달라는 선언이었어. 게다가, 녀석은 그걸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었지.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녀석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게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확신하면서 지낼 수 있는 거지? 젊은 시절의 어리석음이 뭐? 그런 주제로 훈훈하게 끝낼 수 있다는 발상이 놀라웠지.


그냥 그때 화라도 내야 했을까?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러겠지만, 그땐 아니었어. 참 멍청한 일이지……. 난 전혀 다른 딴지를 걸어버렸어. 직접적으로 그 모욕 아닌 모욕에 항의하기보다는, 비아냥거리기를 선택했지. 내가 패배한 거 같기에 비굴해진 거야.


난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녀석이 가져온 종이 쪼가리를 업신여겼어. 이런 거, 받아도 쓸 일 없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때 왜 빈말이라도 고맙다고도 하지 않은 걸까? 사람의 관계와 그 마음이란 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쪼잔하고 비겁해지는 건, 하나의 법칙이라도 되는 걸까?


이유가 뭐든, 난 눈에 보이는 선을 보란 듯이 넘어버린 거야. 나름 귀여운 복수를 하고 싶다는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건 분명한 선전포고지. 당연히 녀석은 화난 울상이 되었어. 애석하게도 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정말 어리석었지…….


녀석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어. 난 왜 항상 이렇게 느린 놈인 걸까? 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늦기 전에 잘못을 인정하는 게 가장 서툰 사람인가 봐. 난 쩔쩔맸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면서 사과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이 불편한 상황을 넘어가선, 5분 전처럼 재잘거리고만 싶었지. 참…….


한참 울먹이는 설교를 들었어. 정말 고마운 사람이지.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뛰쳐나가기 마련이야. 실제로 난, 그러고만 싶었어.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지. 그만큼 날 소중하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 일은 딱 이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나서, 기억 속에 남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생존본능의 일종이었지. 녀석을 더 화나게 할 선택에 겁이 났거든. 그녀가 정말로 내게 혐오와 싫증을 느껴서, 아예 연이 끊어지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자신이 또 그런 선택을 해버렸다는 사실도, 다시는 그녀와 대화하는 행운을 누릴 수 없다는 현실도, 도저히 감당하고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자신도 없었어…….


그때 사용한 변명거리가 선물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었어. 물론, 더 큰 잘못을 숨기기 위해 사용한 변명이지만, 난 이 주제가 상당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떤 의미에선 행운이었지. 가장 그럴듯한 변명은, 또 다른 진실로 땜빵 치는 거니까. 난 정말 비겁한 사람이야…….


선물 얘기를 하려니, 그런 추억이 생각나네. 그 추억 덕분에, 선물에 대한 내 태도가 많이 달라지긴 했어. 좋은 스승에게 좋은 일침을 받은 거지. 요즘은 어떤 선물을 받든, 고마움을 잘 표현하고 있으니까. 사회적인 의미로 필요한, 성의의 표시도 조금씩 배우는 중이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에게 보이는 태도가 달라졌을 뿐이야. 선물에 대한 내 오랜 의문은 여전히 껄끄럽게 남아있어. 물론 내가 과하게 의식하기 때문이지. 정말 필요하고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선물엔 당연히 감사하기 마련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에도 고마워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걸까?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건 드문 재능이더라고. 게다가 사람의 마음을 일일이 알아낼 수도 없으니, 어떤 의미로든 이 의문에 유의미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겠지.


내 경우에, 세심한 신경이 담긴 선물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같은 반응이나 감정을 느끼진 않아. 난 선물을 받는 그 시점부터, 무언가를 공짜로 얻는 게 당연해지는 놈이야. 물론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지만, 내 관심은 어느새 공짜로 얻는 물건이 무엇인지에 쏠리게 되더라고. 그래서 자연스레 그 내용물에 감복도 하고 실망도 느끼는 거지.


가장 중요한 건, 보편적으로 당연한 것들이라 생각해. 선물을 받으면 감사해야 한다는 상식과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뇌의 본능 말이야. 우선 전자에 대해 말을 해볼까. 무엇을 받는가에 상관없이, 우선 감사를 표하는 예식은 우리의 행동을 많이 한정한다고 생각해. 감정도 간접적으로 간섭을 받겠지. 어떻게 느끼든 선물을 받으면, 불필요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편리하니까.


물론 선물을 주고받는 건 대부분 좋은 일이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고. 그렇기에 우리의 일차적인 행동과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정하는 힘이 있는 거야. 물론 꼭 이렇게 얘기할 필요도 없고 생트집을 잡는 의견이지만, 이상하게 난 그런 규정과 루틴이 불편해질 때가 있단 말이지.


좋은 건 좋은 거고, 같이 웃으며 살아가면 좋겠지만,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찬 덩어리야. 눈치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을 안다는 건, 놀랍고 고마워지는 일이지.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도, 모든 선물에 그만한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내 반응은 ‘정말 착해빠진 사람이다.’야. 내가 쓴 소설을 잠깐 보면 좋을 거 같네.(다음 화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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