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기엔 갈 길이 멀고, 내딛자니 자신이 없다.

번아웃을 의심하는 당신에게.

by 윤성씨

마음이 오아시스 근처에 머물던 때가 있다.



목적지는 아직 멀고 여긴 사막 한가운데이지만, 목을 축일 물이 있고 함께 걸을 낙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잠들곤 했다.


상황과 숫자만 놓고 보면, 불평은 무례하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품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그 수가 많아졌다면, 그래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면, 도대체 그 보다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작년 한 해 번 돈보다 지난 6개월 매출이 더 큰데.

혼자 건사하던 회사에 세 사람이나 함께하게 되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서 툴툴대기보다

땀 식힐 그늘이 길어진 것에 감사해야 옳다.


그러니 이 무기력과 공허함에 붙일 핑계가 없다.

한숨을 틀어막고 웃는 것,

감기는 눈을 카페인으로 깨우는 것,

부정적인 생각을 곱씹는 스스로를 달래는 것,

모든 것이 다 귀찮아지기 시작했다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병원에 가 보아야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기를 써도 일어날 수가 없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누워있던 여름의 초입.

바싹 마른 이파리처럼 멍하니 생각했다.

왜일까.

이 근본 없는 무기력은 어디서 온 걸까.


심드렁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당신...>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띄웠다.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거나 당연한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둥근 어깨를 보면서 - 매미소리 우렁찬 푸르른 여름 아래, 빨랫감처럼 납작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지쳤다는 말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가, 곱씹는다.


아직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을 수도 없고

한 건 한 건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주제에. 지쳤다니.


그렇게 적어놓고 보니 비로소 슬퍼졌다.



번아웃 영상을 다음 날이었던가. 이번에는 한 권의 책이 나를 붙잡았다. 조던 피터슨에 대한 기대보다 '혼돈의 해독제'라는 말에 이끌려 펼친 550쪽짜리 책 속에서 주말을 보냈다. 책이 비춘 게으름은, 바쁘다는 이유로 가장 나다운 몇 가지를 외면해 온 모습이었다.

무엇이 나를 채우는지,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는

묻지 않고 오늘 발등에 떨어진 일을 치우느라 급급한 삶.

급한 일에 모든 힘을 써버리고 정작 중요한 일에는 애정도 마음도 쓰지 않는, 허무한 삶.


시간을 들여 하늘을 보고,

좋은 문장을 따라 생각을 고르고,

한 편의 글을 쓰는 것.

그 단순한 삶을 위해 나는 자연인이 되었던 것인데.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지나며

나는 이 여행의 출발을 잊었더라.

눈앞의 당근 한 입 더 베어 물겠다고 달려온 시간 끝에 메마른 마음이 뻐끔거린다.


지친 나를 돌보지 않는 생에 오아시스는 없다.

가장 비옥한 물가에 앉아서도 쉴 수 없는 것이다.

짧아도 좋으니 내일을 꿈꾸는 휴식을 다짐한다.

더 멀리 걷기 위해 지친 나에게 물 먹이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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