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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Dec 04. 2024

아니, 비상계엄이요?

우주의 먼지도 할 말은 해야겠다.

소시민 중의 소시민에게도 심장과 기억이 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있다.


비상계엄 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임에도

민주화를 위해 쏟은 피들이 생각난다.

말과 글, 그 생생한 기록을 통해

권력을 잡은 한 개인의 고집이

얼마나 많은 삶을 파괴하는 지 충분히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개개인의 자유를 위해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1987, 서울의 봄,

많은 영화들이 구태여 아픈 그 시대를 주제로

소중한 시간과 자본을 들여 만들어지는 이유는,

누구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누리는

언론과 출판과 집회의 자유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에게 선물해 준 어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한 결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2024년의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입 밖에 내었다가,

그 말에 꼬투리 잡혀 입을 막고 손을 묶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이,

우리 역사에는 있다. 아주 많았다.

누군가는 이런 일들에 분노하며 일어났고, 그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도

물과 총과 이런 저런 것들에 태워졌다. 침몰했다.


아주 무서운 이야기다.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런 끔찍한 현실을 남의 이야기로 만드는 쉬운 방법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 그렇게, 날선 총과 칼을 피해 배부른 고양이처럼 누워 있는 것이다.


고상한 외면으로 아직도 뜨거운 희생을 모욕하는 것을 막고싶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 자체가 쓰라린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그 한 마디로 인해 쓰러진 부모 형제를 가슴에 묻은 가족들이 있다.

정치 이념을 떠나 인간다움에 대한 문제다.


자유와 비상계엄은 결코 한 문장에 쓰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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