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
사실은 도시에 대한 구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도착한 이곳은 우선 땅바닥이 흙이 아니라 돌이다. 케리어를 끄는 촉감이 사뭇 다르다. 삼사층 정도의 돌로 된 건물들이 위엄 있고 장중하다. 도로에 달리는 버스도 택시도 새것 같다. 중고라는 느낌은 없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시장과 마트에는 튀니지에서는 볼 수 없던 갖가지 야채와 생선과 돼지고기가 넘쳐난다. 와인과 맥주도 눈에 확 띈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낮에도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아란치나를 외치는 소리에 기분이 들뜬다.
여기는 시칠리아 팔레르모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전통 재래시장 안에 있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활기찬 시장 사람들 소리를 듣게 되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 오징어 튀김 냄새가 우리를 반긴다. 일주일 간 같은 숙소에 머문 덕분에 집 앞 식당 아가씨와는 오며 가며 본 조르노, 차우 경쾌하게 인사를 나눈다. 혼자 집 밖을 나서면 친구는 어디 있냐며 안부를 물어온다.
이들은 즉석에서 아란치니를 만들어 튀겨내는데, 시칠리아 북부에서는 아란치니가 아니라 아란치나 라고 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란치니는 맛도 가격도 다양하다. 카타니아에서는 아란치니 중에 라구 아란치니는 에트나 화산을 본떠서 끝을 뾰족하게 만든다. 각자 조금씩 다르게 변형시키고 개성을 살린다. 아란치나를 빚는 아저씨의 팔뚝은 우람하고, 노래하는 그의 목청은 우렁차다.
내장버거로 유명하다는 집이 있다고 하여 구글맵을 잡는다. 팔레르모에서는 어디든 3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도시는 아담하고 정겹다. 내장버거에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본다. 둘이서 하나를 시켜 나누어 먹는데,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지만 조금씩 음미해 볼 만한 맛이다. 맥주를 곁들이는 게 좋을 것 같고, 배고픈 자들에게는 든든한 한 끼로 충분할 것 같다.
팔레르모 공항 이름으로 명명된 두 사람의 그래픽을 찾아 새롭게 구글맵을 설정한다. 내장버거집에서 채 5분도 안 되는 곳에 두 사람의 얼굴이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칠리아의 마피아 조직을 없애는데 기여한 판사들로, 한분은 마피아 조직원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은 이들 두 사람의 성을 딴 것이라고 한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한참 올려다본다. 두 분이 이마를 맞대고 함께 있어서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다시 에스프레소 명소로 구글맵을 수정한다. 두 번째 방문하는 곳이다. 설거지도 하지 않고 쌓아놓은 커피잔이 이곳의 이정표로 쓰이는 걸 보면서, 본질에 충실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여유 있는 일정이라 좋았던 곳을 두 번씩 방문하다 보면 처음에는 안 보이던 것이 두 번째는 보이는 경우가 많다. 카페의 옛날 사진이 벽면에 붙어있다는 사실도 두 번째 방문하고서야 알게 된다. 사진 속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저명인사들과 젊은 주인의 얼굴이 있다. 청년의 얼굴에 세월이 묻어나도록 한 곳을 지키고 있는 그에게 사진 찍기를 요청해 보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동요가 없고, 여유와 자신감이 보인다.
콰트로칸티, 사거리 광장에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하루에 두 번씩도 지나치게 된다. 악사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면 행인들도 춤을 추며 호응한다. 시칠리아 사람들의 흥을 느낄 수 있다. 여행자들의 낭만도 흘러넘친다.
팔레르모를 떠나는 날, 케리어를 끈 채로 골목길 식당 아가씨와 뜨거운 포옹으로 안녕을 고한다.
이제 에트나 화산 도시, 카타니아로 간다.
2025. 3.19. 오후 4:17
카타니아 성아가타 대성당 광장에서 쓴다. 서울에서 눈소식을 전해온다. 이곳도 어제오늘 15도로 내려갔고, 어제는 비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