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병 속 별천지길

여행일기

by 배심온

화개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숙소까지 쌍계사 방향으로 걷는다. 택시를 타면 5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우리는 걸어서 간다.


며칠째 계속된 한파로 쌀쌀하지만 공기는 청량하다. 애초에 걸을 수 있으니 짐은 가볍게 챙기라고 안내하였고, 식재료도 돼지고기와 요플레만 구입하여 무게를 늘리지 않았다.


십리벚꽃길, 아름드리 고목들이 가로수를 이룬 2차선 도로는 오고 가는 차량을 살피면서 걸어야 했지만, 2월 6일 벚꽃이 피지 않은 계절이라 차량은 많지 않았다. 30분쯤 걸었을까, 지리산자락에서 흘러내려 섬진강으로 향하는 물가로 잘 정비된 도보길이 보인다. 차도를 벗어나 접어든 길 입구에는 ‘호리병 속 별천지길’이라는 푯말이 쓰여있다.


낮게 펼쳐진 언덕의 차밭을 보며, 너른 물가의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에 두꺼비, 코끼리 이름을 붙이며, 물소리를 들으며 별천지길을 걸어서 숙소에 다다른다.


점심식사로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재첩국을 먹고 걸었으니, 숙소에 도착하여 할 일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각자 가방 속에서 꺼낸 카레와 표고버섯, 황태, 김치 그리고 마트에서 구입한 돼지고기와 부엌에 준비되어 있는 감자와 홍당무, 양파, 파를 재료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넓은 부엌에서 주부경력 30여 년의 여인 다섯이서 뚝딱 준비한 저녁상은 간단하지만 영양가 만점으로 꿀맛이다. 메뉴는 카레라이스와 황태국. 구례 쌀로 지은 밥은 풍미가 더하다.


깨끗이 준비된 침구와 따뜻한 방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난 이틀째, 쌍계사를 향한다. 숙소에서 쌍계사 입구까지는 걸어서 25분, 차도 없고 사람도 드문 벚꽃길을 훠이훠이 걸어서 천년고찰 쌍계사에 닿는다. 쌍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으며, 대웅전 앞마당의 진건선사탑비는 최치원의 글과 글씨로 만든 탑비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현재 보수를 위해 옮겨져 있고, 탑비를 받치고 있던 거북만 남겨져 있다.


쌍계사 금당은 문이 닫혀있고, 우리는 바로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불일폭포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오르는 길은 호젓하고 대나무와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겨울임에도 따뜻한 느낌이다. 누적된 한파에 폭포는 얼어붙었지만 얼음 속에서 지리산 물은 계속 흐르고 있을 것이다.


불일폭포로 오르는 동안 최치원의 시 한수를 접하게 된다.


“동쪽 나라 화개동에는 호리병 속의 별천지가 있다. 선인이 옥베개 밀치고 일어나니 세상이 천년을 훌쩍 지났네."


‘호리병 속의 별천지길’은 최치원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불일폭포를 오르는 길에 ‘원숭이 바위’가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걸 보고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은 이렇게 꾸짖고 있다.


“대장부의 이름은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史官)이 책에 기록해 두고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숲 속의 바위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까마득히 잊힐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날아가 버린 그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찌 알겠는가?”


오후 세시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주문하고 5시 25분 귀경버스를 타러 걸어서 갈 것인지 택시를 부를 것인지 의논을 하는 걸 보신 식당주인은 당신이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신다. 이런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우리는 추어탕 다섯 그릇에 미꾸라지 튀김을 추가로 주문하였다. 벚꽃이 필 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축원하였다.


덕분에 쌍계명차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화개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26.2.9.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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