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이탈리아의 리치오디 미술관 소장품 70여 점이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전시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화가이고, 이 전시회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은 딱 한 점뿐이다. 제목에 낚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딱 한 점, 크림트의 작품을 보고 나면 그 그림만 생각이 나니 제목을 가지고 뭐라 할 일이 아니다.
크림트의 <젊은 여인의 초상>은 베니스에서 1910년 처음 전시되었다가 2년 후에 다시 전시된다. 당시 풋내기 소녀를 일컫는 <백피쉬>라는 제목으로.
이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크림트는 자신의 중개상으로부터 그림을 회수하여 1916년 새로운 그림, <여인의 초상>으로 탈바꿈하여 세상에 선보였다. <백피쉬>는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여인의 초상>은 1925년 이탈리아인 리치오디가 사들여 그의 미술관에 걸리게 된다. 1996년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한 미술학도가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록에 있는 <백피쉬> 라는 작품을 보게 되고, 이 작품이 <여인의 초상>과 형태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실제로 엑스레이 촬영 결과 <여인의 초상> 밑바탕에는 동일한 얼굴 라인에 커다란 모자와 검은 스카프를 두른 또 다른 여인이 드러났다.
앳된 젊은 여인은 세련된 모자와 스카프를 벗고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새로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 거다. 어느 여인이 더 아름다운지, 어느 그림이 더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팔리지 않은 그림을 회수하여 다시 덧그렸다면 크림트 자신이 나중 그림에 더 가치를 두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림을 더디게 그리고 신중하게 그리기로 유명한 세잔이 이미 팔린 그림을 구매자의 양해를 구해 다시 고쳐서 돌려주었다는 얘기와는 다른 차원인 듯하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1997년 도난사건 때문이다. 리치오디 미술관에서 액자는 그대로 둔 채 흔적 없이 사라진 <여인의 초상>은 2019년 겨울, 동일한 미술관 건물의 외벽 공간에서 정원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검은 쓰레기봉투에 담겨서.
누구의 짓인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돌아온 이 그림은 그 후 귀한 몸이 되었고, 서울로 처음 해외나들이를 하게 되었단다. 그러니 <크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이라는 제목은 수긍할 만하다.
나는 무엇보다 검은색 스카프를 어떻게 하얀 목덜미로 탈바꿈시켰는지가 궁금하다. 덧그리다보면 색은 탁해질 수밖에 없는데, 검은색 상의를 속살이 비치는 투명한 꽃무늬 블라우스로 어떻게 바꿔 입혔는지 자세히 보고 싶어서 거의 그림 속으로 들어갈 판이다.
한번 도난당했던 작품이라 보안유지가 철통 같다. 작품에 손을 대면 바로 비상벨이 울리고, 자동 습기 조절 장치까지 장착된 유리관 안에 <여인의 초상>은 고이 모셔져 있다.
궁금하다.
크림트는 왜 <젊은 여인의 초상>을 <여인의 초상>으로 다시 그렸는지. 단순히 팔리지 않는 그림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하기에 크림트는 이미 충분히 유명했고 부유했다. 두 초상화 중 어느 것을 가지겠냐고 했을 때 선뜻 선택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새 얼굴로 덮여 지워진 인물까지 포함하여 이중초상화라고 일컫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2026.3.11. 한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