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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의 도시 볼로냐

이탈리아 여행 508

by 배심온

볼로냐에 도착하니 6년 전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동료를 따라다녔었는데, 워낙 학구적인 데다가 똑똑한 친구라 귀중한 곳들을 잘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볼로냐에서는 하루 시간을 내어 라벤나를 방문했었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를 대표하는 산 비탈레성당과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을 찾았었다. 비잔틴 문화와 모자이크로 유명한 곳이다. 단테가 숨을 거둔 곳으로 해마다 피렌체에서 단테의 묘역을 밝힐 기름을 보낸다고 한다.

베로나에서는 기차를 타고 파도바를 방문했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파도바 대학생들었다. 파도바는 인구 20만 명 중에 6만 5천 명 정도가 대학생과 교수라고 하니, 가히 대학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특히 의과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인데, 6년 전 우리는 이곳 의과대학을 방문하여 해부학 극장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를 했던 강의실도 들어가 보았다. 미리 예약하고 갔으며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내로 들어가 민트커피 맛도 본 기억이 있다.

파도바 역에서 가까운 곳에 파도바 아레나가 있고, 그 담장 안에 스크로베니 예배당 있다. 이곳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은행업으로 부자가 된 자신의 아버지가 지옥에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아레나 땅을 매입하여 지은 예배당이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조토에게 내부 장식을 의뢰하였고, 2년에 걸쳐 그려진 조토의 프레스코화는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리는 그림이 되었다. 사전 예약으로 1회에 20명 정도만 입장시키고, 딱 15분만 감상할 수 있다.

내부는 기둥 없이 한쪽 면으로 길고, 좁은 창문 몇 개를 뺀 사방면에 조토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삼단으로 나뉘어 맨 위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가운데는 예수의 탄생, 수난, 설교, 부활까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가장 아래는 7가지 미덕과 7가지 악덕에 관한 알레고리가 그려져 있고, 출입문 쪽에 최후의 심판이 있어, 악덕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서 성가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성스러운 느낌이 있다. 천장과 벽면에 칠해진 청금색(라피스 라줄리), 또는 울트라 마린 때문일까? 더욱이 청금색 안에 별빛이 반짝이고, 그림 속에서 천사들이 날아다니니 과한 감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이곳의 조토 그림은 인물들이 모두 개성이 있고, 슬픔과 애도, 화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음영을 넣어 입체감과 원근감을 표현하였다. 천사도 날갯짓으로 가까이 날고 있다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실제 삶의 현장을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런 것들이 이전에는 없었던, 조토의 새로운 시도로 르네상스를 여는 작품으로 해석되는 점이다. 한 가지 더욱 흥미로운 건 별을 꼬리를 단 혜성으로 표현하였는데, 실제로 조토는 그즈음 혜성의 움직임을 보고 나서 그림 속에 그대로 묘사했을 거라고 한다. 유럽 우주국 혜성 탐사선 이름이 조토라고 하니, 조토의 선구자적 입지를 인정하고 있는 거다.

볼로냐는 회랑의 도시다. 도시의 회랑을 모두 연결하면 40km나 된다고 하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회랑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대학과 관련이 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유럽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명문가의 자제들이 머물 숙소 마련을 위해 기둥을 세우고 위에 다락처럼 방을 만드니, 그 아래 공간이 회랑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하먼 세금을 안 냈을까? 공유지를 사유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대학과 도서관이 많다 보니, 귀한 책이 젖지 않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건 아마도 부수적 효과였을 거다. 볼로냐 대학의 한 건물 벽에는 이곳에 대학을 보낸 가문의 문장들이 가득 걸려 있다. 물론 피렌체 가문의 문장도 보인다.

피사의 종탑이 사탑으로 유명하듯, 이곳에도 기울어진 두 개의 탑이 랜드마크처럼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또한 마조레 광장의 성 페트로니오 성당은 미완성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건 당시 볼로냐 왕국이 로마의 베드로 성당보다도 큰 성당을 지으려 하자 교황이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 대학을 짓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부를 과시하려는 귀족들이 교회나 예배당 대신 탑을 짓기 시작하여 한때 볼로냐에는 200개가 넘는 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지진과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탑이 무너져서, 현재는 24개만 남아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두 개의 탑은 볼로냐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미 절반은 소실된 탑은 더 이상의 기울어짐을 막으려는지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공사장 주변으로 맛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유혹하듯 선명한 색들로 장식되어 있는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를 건너뛸 수는 없지. 피스타치오 크림과 당근과 신선한 살구 잼이 들어간 크로와상은 먹고 또 먹게 만드는 맛이다. 볼로네제의 발상지에 왔으니 오늘은 외식이다. 국물 있는 토르텔리니와 라구소스 볼로네제, 요끼, 라자냐를 골고루 시켜서 음식기행을 즐긴다. 걷다 보니 6년 전 들렀던 식당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천정 가득 돼지 뒷다리에 소금을 입힌 하몽을 매달아 놓은 식당이다. 도마 위에 각종 치즈와 하몽, 살라미, 빵과 잼을 올려주고 와인도 한잔 곁들여 먹는 식당이다. 이 집은 건조 중인 하몽 덩어리 끝에 작은 종지를 달아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볼로냐의 또 하나 특징이 서점과 식품점이 한 공간에 있다는 거다. 우리는 서점에 들러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집었다 놨다 고민한다. 짐을 최소화하면서 상대가 좋아할 선물 고르기는 쉽지 않다. 도심 골목길에 있는 신선한 야채가게에서 저녁거리를 산다. 아기 엉덩이만 한 가지 하나와 손바닥만 한 송이버섯 세 개가 4인이 먹을 양으로 충분할 만큼 야채들은 크고 싱싱하다. 볼로냐는 맛있는 걸 먹고 즐기는 도시 같다. 물론 일하고 학문에 열중하먼서 말이다.

저녁을 해 먹고 슬슬 마조레 광장으로 마실을 간다. 바람은 선선하고 버스킹의 노랫소리는 여행자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2025. 5. 8 밀라노 알펜 샤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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