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캐나다 마케터가 되었나

한국에서 잘 살고있는데 왜 굳이 캐나다까지 와서 새로운 일을 도전해?

by Hailey

잘 다니던 호텔을 1년 만에 그만두고 캐나다로 떠났다.


호텔은 나의 인생이었고 나는 진심으로 호텔을 사랑했다. 사람은 자기가 되고 싶은 환경 속에 자신을 넣어야 한다. 나의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었고, 새해 나의 다짐 1순위는 언제나 '행복하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호텔은 나의 꿈의 직장이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호텔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여행과 휴식이었고 아무리 예민한 사람도 여행을 가면 행복할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대학 시절 내내 나의 완벽한 목표였다.


나의 목표가 완전히 잘못된 전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호텔을 방문하는 이유는 '여행'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미팅, 결혼식 참석, 격식 있는 식사를 위해 호텔을 방문한다. 심지어 내가 근무했던 곳은 복합 리조트였다. 공연장, 쇼핑센터, MICE, 카지노까지 모든 서비스가 모여있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간의 군상을 호텔 일을 하는 1년 동안 손님으로 모두 마주했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행복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난 캐나다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불행했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꿈꾸던 일이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호텔은 엄마 손을 잡고 호텔로 들어온 기대에 찬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카지노'였고, 당연히 어린아이는 출입이 불가하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행복할 일도 만무하다. 결국 남은 것은 행복하지 않은 손님과 행복하지 않은 직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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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텔에서 일하기 위해 4년간 대학에서 공부하고 제주도에서 인턴십 생활을 한 것에 비해, 그만두기 위한 준비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유학원과 상담을 하고 비자를 준비했다. 유학원에서는 내가 캐나다에서도 호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호텔을 빼면 내세울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호텔을 선택하지 않았다. 호텔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었다. 나의 가치가 호텔로만 단정 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능력이 필요했다. 호텔에서 일하지 않는 나라도 이 사회가 받아들여줄 이유가 하나쯤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에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유학을 생각한 것은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였고, 캐나다를 선택한 것은 '도깨비' 드라마를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이다. 토론토가 아닌 밴쿠버를 선택한 이유는 눈보다는 비가 낫다고 생각했다. '마케팅'을 선택한 이유도 거창하지 않다. 첫째, 비즈니스 영어를 배울 수 있다. 둘째, 어느 산업이든 마케팅은 필요하다. 셋째, 해외 마케팅을 배우면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마케팅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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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내가 간과한 것은 내가 선택한 전공이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국내에만 살았던 나는 마케팅이 문과적인 학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디지털 마케팅은 이과이다. IT 분야로 분류된다. 평생을 문과로 살아온 나에게 갑자기 IT 수업을 들으라니.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수업을 들으며 깨달았다. 내 길이 아니구나. 숫자로 표시되는 마케팅이라니. 너무 어려웠다. 나에게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결국 수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과제는 목적 없이 성적 때문에 제출했다.


여기서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난 마케팅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앞으로 내 인생에 마케팅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케팅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이다. 우연한 기회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분께 콘텐츠 마케터로 일해볼 것을 제안받았다. 수업을 들을 때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분이 나를 마케터로 제안하다니. 처음 내가 느낀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상하다'였다. 우선 그분은 업계에서 마케터로 인정받고 있는 진짜 전문가이다. 두 번째로 나는 과제에 최선을 다한 적이 없다. 나의 어떤 점을 보고 마케터의 자질을 보았을까. 이상했다.


참지 못하고 그분께 물어보았다. 우리 수업에는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왜 하필 저를 선택했나요? 돌아온 답변은 내가 생각했던 마케터와 달랐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우러지고 각각의 사람에 맞춰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 마케터는 나의 색깔이 아닌 브랜드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줄임말을 자주 쓰고 친근한 말투를 가지고 있더라도, 브랜드의 타켓이 40대 이상의 비즈니스맨이라면 마케터는 진중하고 프로페셔널한 톤과 보이스로 브랜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좋은 마케터의 또 다른 자질은 사람을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나의 관점이 아닌 소비자의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는지, 어떤 소비 패턴을 가졌는지 궁금해해야 한다. 내가 온라인 쇼핑만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편의점만 가는 사람이라도 백화점에 가는 사람들이 왜 백화점에 가는지 알아야 그들에게 물건을 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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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보기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내 모습이 '좋은 마케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학교에서 마케팅 수업을 들을 때에는 자신의 색채가 뚜렷하고 하나의 톤과 보이스를 고수하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캐나다에서 마케터로 일할 수 있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 '좋은 마케터'가 되지는 못하였다.


나에게 '좋은 마케터'란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다. 브랜드에 맞게 톤과 보이스를 낼 수 있는 사람, 목적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 결과물이 목표한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나의 목표이다. 이 글은 나의 첫 시작에 대한 에필로그이며, 나의 '캐나다 마케터'로서의 여정을 글로 기록하고자 한다. 나의 도전과 시행착오들이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