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직장에서 새로운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편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저 직장동료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도 자잘한 경조사를 챙기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것을 귀한 인연으로 이어나간다. 나는 그런 따뜻한 관계가 참 감사하고 좋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충분히 신뢰를 주고 잘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생각하지 않거나 내가 베푼 친절이 터무니없는 결과로 돌아오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이 힘들어할 때 살뜰히 챙기고 기분을 살피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상대방은 반대의 경우에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고마워할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썼을 때 그 마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베풂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의 보상 심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오랫동안 내가 애정을 가지고 대했던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작년과 올해 직장에서 부장의 일을 맡으며 나는 기대를 내려놓는 법에 대해 참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고 노력한 만큼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간이 갈수록 '아, 이 사람과는 올해가 끝이겠구나. 나도 적당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다.
예전 같으면 그런 관계에 일희일비하며 속상해하고 안타까워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시절인연이구나'하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얼마 전에 내가 존경하는 분이 시절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음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인간관계에도 유효기한이 있어요. 누군가 마음을 괴롭게 하면 마음껏 미워하시고 욕하세요. 실컷 하고 나면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근데 왜 내가 이 사람 때문에 내 에너지를 쓰고 있지?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는 항상 나를 중심에 두고 그 사람이 진짜로 정의로운지, 정직한지 그리고 측은지심이 있는지, 그런 걸 보고 친구를 사귀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 친구들이 여러분을 떠나가도 배신해도 아까워하지 마세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현명한 말씀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는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요즘 나에게도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각각의 관계에 있어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기에 그저 흘러가는 인연이라 해도 하나도 아깝거나 아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시절인연보다, 나에게 따뜻함을 주고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좋은 인연들이 주변에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나를 이유도 없이 좋아해 주기도 하는 반면, 누군가는 나를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며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매달려 나를 다시 봐달라고 재차 설명하거나,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저 시절인연이구나, 하고 물 흐르듯 흘려보내면 된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일상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좋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나의 진짜 인연이다. 이런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서로가 바빠서 연락하지 못해도 다시 만나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고 즐겁다. 언제 만나도 단순한 가십을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대화의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게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지 못하는 지나가는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 큰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