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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Nov 06. 2024

약함을 드러낸다는 것

어쩌면 정말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지난 주말 저녁,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에 책을 읽으러 갔다. 집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지만, 티비나 침대 등 나를 유혹하는 사물들에서 벗어나 온전히 책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시즌메뉴 토피넛라떼를 한 잔 주문하고 창가 좌석에 앉아 은은한 조명을 벗 삼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은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들 중에서 작가가 엄선한 7개의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에 대한 해석과 화가의 삶을 다룬 내용인데 너무나 흥미롭고 쉽게 술술 읽히는, 그야말로 내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작품과 에피소드들 속에서 나의 마음에 가장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작품인 '칼레의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백년전쟁 당시 1347년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포격을 받게 되었고,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영국군에 대항하여 고군 분투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1년 동안 전쟁을 이어갔으나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간 영국군을 힘들게 한 칼레의 시민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어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인해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칼레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오면 그들을 처형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시민들은 살려주겠다.'


 칼레의 시민들은 6명을 어떻게 뽑아야 할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러던 중, 상류 계층이었던 피에르라는 사람이 자신이 기꺼이 시민들 대신 죽겠노라고 나섰다. 그러자 피에르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6명의 또 다른 시민들도 자신이 죽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지원자 7명 중에 어떤 사람을 살려야 할지 고민이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고민 끝에 그들은 동이 트는 아침에 에드워드 왕이 있는 성 앞에 모이기로 했고, 가장 늦게 나온 사람 한 명을 살리기로 했다.

 다음 날, 성 앞에 모인 사람은 딱 여섯 명이었다. 가장 먼저 나섰던 피에르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해서 피에르의 집 앞에 찾아갔다. 그러나 피에르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밤새 그는 행여 자신이 늦게 나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수치스러워 차라리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여섯 명의 사람들은 에드워드 왕 앞에 당당히 나갔고, 다행히 당시 임신 중이던 왕비가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까 만류하여 에드워드 왕은 여섯 명의 칼레의 시민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오귀스트 로댕은 이 이야기를 조각상으로 만들었고,  이 조각상은 지금도 프랑스 칼레 시청 광장 앞에 전시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죽음을 앞두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약함 아닐까. 피에르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죽음을 택했지만 오히려 죽음으로써 가장 강한 인간의 표본이 되었다.

 





 "선생님은 겉으로는 엄청 밝고 씩씩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여린 사람 같아."


 오늘 연구실에서 동학년 선배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제가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 물음 속에는 어떤 면이 나를 그렇게 비치게 했나, 하는 궁금증과 약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나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눈물을 보이고, 약한 면을 보이고 싶지, 동료들 앞에서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람을 잘 보실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후에 나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동료 선생님의 말에 나는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강하고 약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내가 강한지 약한지, 내가 판단할 수도 남이 판단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그 선생님의 말씀에 연연하는 나 스스로가 이미 엄청 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동료 선생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삶'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때때로 흔들리더라도, 부러지지 않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저 이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 누군가의 말을 위안 삼아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가을에 외로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때로는 연약함을 드러내고 싶고 기대고 싶어지는 내 마음까지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저 수용하고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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