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발목 부상을 입은 아이가 대회에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아이의 의지가 워낙 대단했고, 다행히 페달 밟는 것만 포기하면 피아노 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음악학원 원장님의 말씀에 힘입어 아침 일찍 준비하고 대회에 나갔다.
발에 깁스를 하고 피아노 콩쿨 대회에 나간 아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즐기면서 치고 오라는 말을 듣고나간 대회장에서 아이는 대상을 탔다.
지난 6윌, 피아노학원을 다닌 지 1년 만에 처음 나간 콩쿠르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이번이 두 번째 대상이다.
발목 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큰 상을 받아서 아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며 가족들에게 아이의 수상 소식을 알렸다.
부모님께서는 대상을 축하한다며 10만 원, 손주의 다리가 얼른 낫게 사골 국이라도 사주라며 10만 원, 총 20만 원을 용돈으로 보내주셨다. 역시 부모님의 마음씀은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게 용돈을 보내주신 걸로도 모자라 부모님께서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며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우리 집에 놀러 오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두 분이 오시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는 괜찮다며 오후 1시쯤 도착하신다고 하셨다.
아들은 선약이 있어 놀러 나가고, 저녁 먹기 전까지 들어오기로 해서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오붓하게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실만한 맛집을 미리 찾아놓고, 우리 집에 도착하셨을 때 바로 내 차로 두 분을 모시고 식당에 갔다.
따끈한 만두전골집에서 칼국수 사리까지 야무지게 넣고 부모님과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맛있게 잘 드셨다.
"여름에 호주에 다녀왔던 일은 너에게 도움이 좀 되는 것 같니?"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음.. 그렇죠. 학교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어요. 이번에 연구학교 공개수업을 할 때에도 호주에서 배워온 AI도구를 활용해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장학사님들도 흥미로워 하셨어요. 호주에서 사 온 영어 동화책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요.
그런데 사실, 호주에서 얻은 건 교육적인 것보다 다른 게 더 컸어요."
"그래? 그게 뭔데?"
나의 대답에 이번엔 엄마께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말씀하셨다.
"제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좋은 가족들과, 좋은 사람들과 살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호주라는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방황하면서 그동안 나는 참.. 지지적이고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좋은 친구들, 좋은 동료들 곁에서 감사한 삶을 살고 있었구나. 그 삶이 얼마나 따뜻하고 감사한 것인지 느끼려고 이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리고.. 이혼하고 나서 6년 동안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호주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 있으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봐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서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비록 지금 잘 안되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제 닫힌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께서는 짐짓 놀라신 눈치였지만 딸의 긍정적인 생각 변화가 반가우신 모양이었다. 두 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아버지께서 나를 다독이듯 말씀하셨다.
"네, 아부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만두전골의 국물보다 부모님이 나를 아끼시는 눈빛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께서는 6년 전, 내가 이혼한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저 조용히 들어주셨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내 딸이 그렇게 결정했으면 그게 맞는 거지.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오래 버텼다. 아부지는 내 딸이 행복한 게 1순위야."
하고 말씀해 주셨었다.
엄마께서도 처음엔 자랑스러운 큰 딸의 이혼 결심에 너무나 힘들어하고 슬퍼하셨으나, 결국 나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셨다.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임을, 부모님께서는 누구보다 이해하고 인정해 주시고 그저 내가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힘들 때는 어깨를 빌려주셨다. 나는 묵묵히 뒤에서 나를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서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 여기 이건 무슨 꽃일까? 너무 예쁘다. 여기 서봐. 엄마가 사진 예쁘게 찍어줄게."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길가에 피어있는 하얀 들꽃 앞에서 한참을 감탄하던 소녀 같은 엄마는 80년대 신혼부부 감성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의 감성은 100프로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이 틀림없다.
때로는 투닥거리고 의견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이 해가 갈수록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저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서 언제까지나 함께해 주시기를.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기회를 많이 주시기를.. 바라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