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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Oct 25. 2024

그럼에도, 감사.

인생을 따뜻하게 살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

 어제 급식소에서 아이들 먼저 자리에 앉히고 나도 식판에 음식을 받아 앉아서 막 식사를 하려는데 영양선생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셨다.

 "부장님, 혹시 핸드폰 놓고 오셨어요? 000 선생님께서 전화하셨는데 연락이 안 되신다고 급식소에 계시면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000 선생님께서는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신데 급식소에 있는 나를 찾아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하셨다는 건 내 아이가 다쳤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핸드폰을 급식소에 들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연구실에 두고 왔는데 어쩜 딱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영양선생님께 황급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 얼른 3층 연구실로 향했다.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놀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린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 보건실에서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인대가 늘어난 것 같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침착하게 설명해 주시는 담임선생님께 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아직 우리 반 6교시 수업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순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오후에 수업이 남아 있으실 텐데 00이 할머니께 연락드려서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맞다, 할머니께서 여기 계셨지. 내가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니 또 한 번 감사했다.


 "선생님, 심려 끼쳐드려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할머니께 연락드려볼게요!"


 아이의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30분 내로 바로 와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전화를 마치고 보건실로 갔다. 보건선생님께서 아이의 발목에 얼음팩을 대주고 계셨다.


 "보건선생님, 안녕하세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00아, 괜찮니?"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어머, 엄마 얼굴 보니까 눈물이 나나보다. 지금까지 잘 참고 있었는데."

 보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울어~ 아파서 그래? 괜찮아. 선생님께서 응급처치를 잘해주셔서 금방 괜찮을 거야."

 내가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보건선생님, 안 그래도 바쁘신데 제 아이까지 보태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 할머니께서 30분 내로 오신다고 하셔서 그때까지 조금만 더 아이가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급식소에 저희 반 아이들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급식소로 돌아와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교실로 돌아간 상태였다. 나는 빈 식탁에 앉아 급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6교시 수업을 다.


 아이의 할머니께서는 감사하게도 금방 학교에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가주셨고, 다행히 뼈에 이상은 없고 인대가 조금 늘어나서 반깁스를 했다고 연락을 주셨다.


 "내가 우리 집에 데리고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이따 퇴근하고 00이 데리러 올 때 너희 집에 작년에 쓰던 목발이 있으면 가져오는 게 좋겠어."

 


사실 아이는 올해로 3년 연속 목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작년과 재작년 각각 오른발, 왼발 뼈가 부러져서 깁스를 했었는데 올해는 인대만 늘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고난과 역경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집에서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목발을 찾아 아이의 할머니께 갔다. 저녁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감사인사를 드린 후 나오는데 목발을 짚은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작년에 비해 아이가 부쩍 키가 커서 목발이 너무 짧아진 것이다. 구부정하게 서서 나를 보며 웃는 아이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이야~ 그래도 이걸 보니 작년에 비해 많이 큰 것 같아 뿌듯하네."

 무한 긍정 엄마다.


 집에 돌아와서 드라이버로 목발 나사를 풀어 목발의 길이를 아이의 키에 맞게 조정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재잘재잘 나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오늘 보건실에 있는데 엄마 반 형아 세 명이 와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고 걱정해 줬다? 그리고 할머니 오셨을 때 보건선생님께서 나를 휠체어에 태워주시고 주차장까지 옮겨주셨어. 그리고 우리 반 친구 00 이가 문자로 내일 수업 뭐 할지 카톡으로 알려줬다? 나 대신 체육시간에 경기 뛰어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답장했어!"


 잠깐의 대화 속에서도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은지..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감사하고 따뜻했다.


 "내일 엄마가 학교 가서 엄마 반 형아들한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야겠다. 보건선생님께도 너무 고맙네.. 엄마가 다음에 맛있는 밥이라도 사드려야겠어.

 친구 00 이도 너무 고맙다. 좋은 친구가 있어서 우리 아들은 정말 좋겠구나?"






 점심에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잠깐 심장이 쿵, 하긴 했지만 오늘 지나온 과정들을 보니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았다.



 토요일에 피아노 콩쿨 대회에 나가는데 팔이 부러진 게 아니라 감사.

 뼈가 부러진 게 아니라 인대가 늘어난 정도라 감사.

 담임선생님께서 바로 연락 주심에 감사.

 보건선생님께서 살뜰히 응급처치를 해주심에 감사.

 할머니께서 바로 병원에 데려가주심에 감사.

 나와 아이가 주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음에 감사..

 모든 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인생을 사는 것.

 작은 순간에도 감사할 일을 찾고 진심으로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따뜻한 우리 보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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