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꼼꼼하고 가족을 유난히 잘 챙기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언제나 챙김 받는 것이 익숙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사생대회, 글쓰기대회, KBS어린이 합창단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할 때마다 어머니께서 차로 데려다주셨고, 생계가 바빠 맞벌이를 하시는 와중에도 나를 살뜰히 챙기셨다.
초, 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내가 태어난 지역에서 다니게 되면서 본가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다양한 활동을 좋아하고 스스로 찾아서 하는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출가를 한 것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첫 발령이 타지로 나면서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아기자기하게 원룸 공간을 꾸미면서 처음 한 달 정도는 너무나 신기하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혼자 있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외롭고, 점점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주말마다 본가가 있는 청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여동생과 시내에 나가서 쇼핑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연애를 할 때에는 남자친구와 영화도 보고 커피숍도 가고.. 주말 스케줄이 비어있을 틈이 없이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뭐라도 해야 했다.
학생 때의 나는 꿈을 이루리라는 원대한 목표 아래 열심히 공부만 하느라 나의 취향이나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헛똑똑이였다. 옷을 살 때에도 색깔이나 디자인만 보고 샀더니 재질이 너무 싸구려라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버리게 될 때가 많았고, 맘에 들지 않는 물건이나 하자 있는 물건을 사도 환불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집에 처박아두기 일쑤였다. 그러면 야무진 여동생이 대신 환불을 해주거나, 같이 가서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던 내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다. 남편은 항상 바빠서 아이를 낳고서 옆에 함께 있는 시간이 적었고,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어떻게든 아이를 키워야 하니 혼자 운전을 하고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고, 화장실 전등이 나가면 전등을 사 와서 갈고,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버거웠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너무 힘들고 지치고 원망스럽고 화도 났으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아, 내가 그동안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와서 더 성장하려고 그런 시련과 고난이 있었구나. 이제 나는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초연함과 감사함까지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돌아간다. 너무 의존적인 사람은 옆에 잠시라도 사람이 없으면 금방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막상 육아와 살림 등 혼자해야 하는 것들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책임이 커지니 외로움과 불안이 점점 더 커졌다. 혼자 있을 때보다 둘이 있을 때 더 외로웠다.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함께 동반자로서 걸어가야 했는데 나도 그도 서로 맞지 않는 반쪽이었다.
2주에 한 번, 주말에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가고 나에게는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다행히 지금은 혼자 있어도 크게 외롭지 않다. 혼자서도 할 일이 참 많아서 하루가 짧다. 도서관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려다가 커피숍에 가서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독서하고, 동네 한 바퀴 걸으면서 풍경도 살피고, 집에서 그동안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나 영화도 보고, 가끔은 친구들과 만나 실컷 수다도 떨고, 음악도 듣고, 이렇게 글도 쓰고.
여유 있는 아침, 주말 브런치:)
별거 없이 흘러가는 하루에 감사할 줄 알게 된 것도 나의 행복에 큰 일조를 했다.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별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평온한 건지 나는 잘 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도.. 이렇게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다 보면 나중에 아들이 출가한 후에도 나 스스로 나의 삶을 잘 살게 되겠지.
훗날 성인이 된 아들이 '엄마'라는 단어로 나를 떠올렸을 때 언제든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식이라고 집착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독립된 개체로 존중하는 그런 어머니였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