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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Nov 19. 2023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사람도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와 아픔이 있다.

 2019년 1월. 쌀쌀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뿌연 입김이 연기처럼 공중에 퍼지던 겨울, 나는 아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수없는 임장 끝에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금액과 조건이 맞는 집을 찾았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햇살이 가득 비치는 거실을 보는 순간, '아, 이 집을 찾아내기 위해 그동안 수없이 실망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바로 가계약금 100만 원을 이체하고 전세 계약을 준비했다.


 부족한 자금을 메꾸기 위해 은행에 들어가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는데 은행에서 나를 담당해 주신 대리님은 내가 계약을 앞둔 날짜가 3주밖에 남지 않았고, 그 사이에 설 연휴도 끼어있어서 대출 심사 및 여러 가지 상황을 기한에 맞게 처리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혼을 결심하고 별거하는 동안 아이와 둘이 집을 나와 원룸에서 6개월을 살면서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찾은 집이었는데 이렇게 놓칠 수도 있다니! 앞이 막막했다.


 자존심도 버리고 담당 은행 대리님께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아이와 함께 새 출발을 할 보금자리를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이 대출을 기한 내에 받지 못하면 나는 다시 아이와 원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너무 죄송하지만 기한에 맞게 심사받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없냐고..


 단아한 외모의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대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빠듯하긴 한데.. 제가 최선을 다해볼게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도 필요한 서류 제출 등으로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대리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는 다행히도 제 때 대출을 받아 아이와 따뜻한 집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리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에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다. 온화한 표정과 귀티가 나는 단아한 외모의 그 은행원 언니를 보며 나는 감사한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분은 여유로운 집에서 다정한 남편과, 예쁜 자녀들과 함께 편안한 삶을 살고 계시겠지? 나도 저분의 나이가 되면 저렇게 단아하고 편안해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4년 뒤,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나가는 날 나는 문득 그 대리님이 생각났다. 그분 덕분에 이 집에서 아들과 함께 참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을 가득 만들 수 있었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그때 참 감사했다고, 덕분에 4년간 참 따뜻했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노란 프리지아꽃이 가득 피어 있는 따뜻한 편지지에 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언젠가 대리님이 도움이 필요할 때 나도 꼭 돕고 싶다고, 내 연락처도 적었다. 추위에 건조하지 마시라고 록시땅 핸드크림 세트도 함께 준비해서 아들과 함께 대리님을 처음 만난 은행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그분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주변 분들께 여쭤보니 그 대리님이 승진을 해서 지점을 옮기셨다고 했다. 내가 그분께 감사함을 전하려 왔다고 말씀드리니 다른 은행원분께서 옮긴 지점을 말씀해 주셨다.  


 해당 은행 지점으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대리님을 만난 순간,

 "어? 그.. 선생님 맞으시죠?"

 4년 만이라 나를 못 알아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리님은 단번에 나를 알아봐 주셨다.


 "네 맞아요, 대리님! 너무 오랜만에 뵙네요. 감사한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이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러 왔어요. 과장님이 되셨군요! 축하드려요."


 우리는 짧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과장님은 아직 은행 업무 중이셨기에 나는 편지와 선물만 드리고 아들과 함께 감사인사를 한 후 서둘러 은행을 나왔다.



 그날 저녁, 카톡으로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 주고 감사편지와 선물까지 전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 카톡에는 과장님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과장님은 자신이 왜 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씀해 주셨다.


 '고객으로 만난 분께 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네요.'라고 말씀하시며, 과장님께서는 4년 전 내가 은행을 찾았을 때 당신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그 절박함이 자기 같아서 남일 같지 않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과장님의 그 최선은 내 마음에 너무나 깊게 와닿았고 큰 감사와 감동으로 번졌다. 아, 그래서 나를 그렇게 도와주신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고 선망하던 그 대리님도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셨다니..


 내가 캄캄한 동굴 속을 걷는 듯한 어려운 시기에 그분을 만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두 딸을 야무지게 잘 키우고 계신 과장님이 더 대단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그 후로 우리는 카페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종종 연락하며 언니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다.



 올해 2월, 4년간 살았던 전셋집에서 이사를 나오면서 집주인 사모님께도 따뜻한 집을 빌려주셔서 참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이 집을 만나서 너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사모님께서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같은 분도 힘드실 때가 있어요? 항상 밝고 예쁘셔서 힘드신 일이 없으실 것 같은데..."

 

 "어머~ 사모님께서 더 예쁘고 우아하시지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어딜 가도 이런  좋은 집주인님은 못 만날 것 같아요!"

 웃으며 인사하고 정든 집을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시련을 갖고 산다. 세상만사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할 것만 같은 누군가도 나와 같은 삶의 무게를 갖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는 걱정 없이 즐겁게만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모두 평등한 조건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내 앞에 있는 저 사람도 저 사람만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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