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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Dec 17. 2023

스스로 연민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

행복한 삶의 첫 단추

 10년 전, 호수공원 근처에 새로 지은 뷰가 좋은 36층 아파트로 이사하고 난 뒤 새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좋겠다. 20대 후반에 좋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어서. 애들이 다 부러워해."


 그래? 하고 웃으면서도  마음이 참 공허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다 가졌는데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걸까. 저녁에 창밖에 보이는 차들은 반짝반짝한 불빛들을 내며 분주히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불빛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중학생 시절, 나는 학교까지 20분 거리를 걸어 다니며 길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상상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남편과 아이들과 오순도순 작은 집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소박하지만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스물여섯, 존경하던 직장 선배님의 아들을 소개받아 점잖은 인상과 멋있어 보이는 직업에 이끌려 1년 연애 후 결혼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내가 생각하던 상상 속 인물이 아니었다. 인물도 멀끔하고 경제적인 능력도 괜찮았으나 나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면 나는 대화로 풀고 싶었다. 대화를 하면서 서로가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하여 사과를 주고받고, 싸우는 동안 잊고 있던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며 하루가 끝나기 전에는 다시 함께 잠이 드는 그런 일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대화를 시도하면 그는 집을 나갔다. 도피하듯 떠나 2,3일간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부부싸움 도중에 나의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딸과 손자를 데리고 가시라 말한 적도 있었다. 사위한테 그런 전화를 받은 아버지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셨을까.. 그렇게 일주일간 아이와 함께 친정에 있다가 잘못을 깨닫고 돌아온 남편의 사과를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그런 일들도 다 견뎌내면서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나였다. 아이가 있는데 무책임하게(그때 당시의 내 생각이며 지금은 무책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혼하고 싶지 않아서 회당 8만 원에 달하는 상담 비용을 내고 십 회 이상 상담사를 아갔다. 하지만 내가 이혼을 결심한  나와 네 살 아이  앞에서 죽겠다고 베란다 앞에 선 남편을 본 순간이었다.


 진짜 죽을 마음도 없으면서. 승진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받는다며 온갖 짜증과 분노를 내 앞에 표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내 앞에서 죽겠다는 말을 하다니..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다 받아줘서 기어이 저 꼴을 보는구나.


 나는 그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의 승진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렇게 힘들면 내려놓고 그냥 우리 가족 오순도순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자고.. 그는 이야기했다. 그에겐 그게 행복이 아니라고, 구질구질(그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지 당시 우리의 살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하게 살기 싫다고. 그리고 4년 동안 나는 거의 혼자 아이를 키우고 그는 승진 시험을 준비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베란다 앞에 가서 죽겠다고 선 그의 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는 짐을 쌌다. 그 공간에 그와 같이 있기가 너무 힘겨웠다.  이혼을 준비하며 집에서 나와 원룸에서 6개월 동안 아이를 데리고 사는 동안 그는 연락도 별로 없이 공부에 매진했다. 처자식을 저버리고 독하게 공부할 만큼 승진은 그의 인생에 꼭 필요한 거였구나. 다시 한번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란 걸 느꼈다. 3개월의 숙려기간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혼 확정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는 승진했다.






 가끔씩 거리를 걸을 때 지나가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다. 나는 큰 걸 바란게 아닌데.. 그냥 평범한 결혼생활을 생각했는데 왜 그게 잘 안 됐을까?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히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다시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로 돌아갈래?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루어낸 마음의 평화인데. 추위를 막아주는 집 안 햇빛이 가득 비치는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팝송을 부르며 고개를 흔들다가 저녁 한 끼는 나가서 외식을 하고. 이런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안다.


 스스로 연민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사는 것, 그것부터가 행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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