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그동안 나는 나를 참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에 연애를 할 때에는 나를 좋아한다고하는 사람 중에 외모와 성격, 조건이 웬만큼 괜찮으면 만났던 것 같은데 정작 누군가 "너는 어떤 사람을 좋아해?" 하고 물으면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외모나 성격, 조건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면 만족하는 편이라 그것들을 보고 만났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실제로 내가 첫 남자친구를 만날 때, 주변에서 남자친구의 외모가 별로라고, 네가 훨씬 아깝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내가 좋으면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웨이브 OTT 서비스에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의 감독판이 떠서 8회분을 새벽 3시까지 정주행 했는데, 예전에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너무나 재미있게 봤다. 이 드라마는 내가 고등학생 때 방영했던 드라마인데 그때 볼 때에는 그저 재미있다는 생각만 들었던 반면, 지금은 섬세한 인물의 감정묘사와 상황묘사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정을 이입하게 되었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인 현빈 주연의 레스토랑 사장은 처음부터 드라마의 중반부 이후까지 굉장히 싸가지없고 까칠한데,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강아지처럼 온순해지는 캐릭터였다. 초반부에 너무 성격 파탄자처럼 나와서 '와.. 아무리 잘생겨도 저건 못 받아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드라마 횟수를 거듭할수록 이 남자가 그동안 인생에서 너무나 견디기 힘든 아픈 상처를 겪으며 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납득이 되면서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저 상처 입은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의 잘생긴 외모에 빠져든 게 절대 절대 아니다!)
현빈의 전 여자친구로 나오는 정려원 배우가 드라마 대사에서
"이성을 사랑하는 감정은 사실 모성애와 굉장히 비슷하대."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람에게 엄마처럼 잘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었다.
그 사람이 추워 보이면 담요를 덮어주고, 혼자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며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어디가 아파 보이면 약이나 연고를 챙겨주고 싶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친구들은 이성을 챙겨주기보다는 본인이 기대고 싶고, 챙김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도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우선 내 마음이 동해서 누군가를 챙겨줄 때 큰 만족감과 사랑을 느낀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나는 기본적으로모성애가 굉장히 큰 사람이기 때문에 이성도 아기를 돌보듯 챙겨줘야 한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하지만 이성을 사귀는 것과 아기를 돌보는 것에는 하나의 큰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이성적 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와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대화가 아무리 잘 통해도 '내가 저 사람과 스킨쉽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연애를 할 수 없다.
얼마 전, 호주에 갔을 때 조식 뷔페에서 한 잘생긴 외국인이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참 대화를 하다가 그가 갑자기 나에게 "너 혹시 호주로 이민올 수 있니?"라고 물어보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음.. 호주란 나라는 좋지만 이민은 큰 문제라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 하고 대답하면서 악수를 했는데 그 손이 너무 딱딱한 나무껍질처럼 느껴져서 '아.. 난 외국인이랑은 연애를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잘생겨도 그 사람과의 스킨쉽이 싫으면 사귈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면 나는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보다는 인간미 있고 결핍이 있어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따뜻한 남자에게 끌린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손이 예쁜 남자면 더 끌린다. 나 자신이 자기 계발을 즐기는 사람이기에 상대방도 자기 계발을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남자와의 스킨쉽을 생각했을 때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어야 사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20대의 나는 대체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나'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하고, 기대가 된다.
앞으로도 나는 다른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나 스스로와 더 친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