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와 있든지 나는 크게 불편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며 주변을 웃게 하는 힘이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내가 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함께 잘 어울릴 수 있는 가장 큰 비밀은 바로, '솔직함'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솔직하지 못하다. 자신의 치부나 감정을 감추고 가면을 쓰고 대화하면서 자그마한 자신의 실적을 부풀리고 스스로의 불안을 감추는데 주력한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어딘가 공허하고 재미가 없다. 마치 연예인 가십거리를 얘기하듯 영양가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다 오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런 대화를 지양한다.
잠깐을 함께 있어도 양질의 대화, '나와 너'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항상 나를 먼저 솔직하게 오픈한다.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고 '어서 와요. 난 이미 이렇게 준비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타인을 맞이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후에 상처받을까 봐 자신을 오픈하지 않지만 나는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나를 가두는 것이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솔직함을참 동성 간에는 쉽게 드러내는데 이성의 문제로 넘어가면 잘 드러내지 않았다. 동성의 사람들, 그러니까 여자들한테는 쉽게 마음을 열고 금방 친구가 되어서 여초집단에서 나는 늘 핵인싸인데 남자들 앞에서는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가버렸었다.
왜 그랬냐 하면
첫째,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아서.
둘째, 내가 관심 없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서.
셋째, 그 사람이 안전해 보이지 않아서.(신뢰가 없어서)
넷째, 지금까지 그렇게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아주 오랫동안 그 어떤 남자에게도 솔직하지 않았던 나는 최근에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준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을 보여주니 상대방은 오히려 겁이 나 마음을 감추어버렸다. 기껏 힘들게, 겨우 마음을 열었던 나는 '아, 역시 나는 연애를 못하는 사람인가'하는 마음이 들었다.
연애 잘하는 다른 동성 친구들처럼 상대방을 간보면서 적당히 헤픈 웃음과 칭찬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띄워주면서 상대를 애태우고, 안달나게 하고 결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백을 받아내고야 마는 그 친구들의 기술이 나에겐 없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확실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그러하다고 느끼면 바로 솔직하게 표현했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런 뭐랄까.. 잔다르크형의 인간인 것이다.
좋으면서 안 좋아하는 척, 당기고 싶은데 미는 척, 그런 게 나는 안된다. 서글프지만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처럼 솔직함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나 끌린다. 지금까지 내 연애경험은 실패한 결혼까지 포함해서 딱 두 번밖에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두 번 모두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연애는 같은 학교 선후배였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에게 고백해 준 그 사람에게 끌려서 군대생활 2년을 거의 다 기다려주었다가 그 사람이 변심해서 내 쪽에서 칼같이 헤어짐을 고했고
두 번째 연애는 같은 학교 선배님의 아들을 소개받아 첫 만남에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1년을 연애하다가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그와 어머님에게 이끌려 결혼했다.
나는, 솔직함에 이다지도 약한 사람인 것이다.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솔직함' 이라는 전제는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며 이기적인 본성을 너무나 쉽게 드러낸 그에게 나는 지칠 대로 지쳐 5년을 괴로워하다 헤어졌다.
지금에서야 나는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너무나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나와 같은 솔직함을 가진 사람을 평생 기다려온 게 아닐까?
내 마음을 다 보여줘도 끝까지 서로 믿고 아껴줄 그런 귀한 인연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지만 우리 서로 같이 이 힘든 짐을 나눠 들고 '함께' 걸어가자고 이야기해 줄 용기 있는 사람을.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힘든 짐을 함께 지고 어떠한 폭풍우에도 잔다르크처럼 맞서 싸우며 함께 견디며 걸어갈 것이다.
추석연휴를 맞아 아들과 함께 떠난 서울 여행에서 나태주 님의 '너는 별이다'시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는 별이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반짝반짝한 빛을 가진 예쁜 별이었구나. 그걸 모르고 혼자 이렇게 아파했구나..'
앞으로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야겠다. 비록 그것이 홀로 빛나는 길일 지라도, 스스로 발광하며 뜨거운 열에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의 반짝임을 멈추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