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정말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있다.
제0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지난 10월 3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함께해주신 감독, 배우,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현장 스케치와 리뷰, Rotary Sketch를 공개합니다.
2024년 10월 31일 저녁 7시, 혜화카페 애틀랜틱에서 제0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열렸습니다. 매달 작품을 출품받아 진행하는 소규모 영화제, 감독과 배우, 관객이 함께하는 대화형 GV,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솔직히 말하면 설렘보다는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상영보다 1시간 일찍 모인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팀은 행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관객분들에게 나눠드릴 로터리 노트를 반듯하게 잘랐고, 생각보다 무거운 테이블을 함께 들어 카페 밖으로 옮겼습니다. 6시 40분쯤 무렵 용수는 카페 입구에 서서 가장 먼저 관객들을 맞았습니다. 수미는 영수에게 상영 세팅을 배웠고, 영수는 진행자로서 내뱉을 멘트들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습니다.
행사 직전, 예상치 못한 관객 인원 추가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준비된 의자가 꽉 찬 상태로 세 작품(<내가 이것밖에 안 돼>, <인터미션>, <되뇌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어떤 인연과 운명적인 순간이 만들어질지 알지 못한 채, 애틀랜틱은 점차 어두워졌습니다.
어두운 가을 저녁, 창문 밖에는 혜화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제 눈앞에는 작은 공간 안에서 같은 이야기와 제각기 다른 감정을 공유하는 관객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고, 어떤 이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작은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어떤 이는 작품 속 인물과 자신을 겹쳐보며 작은 위로를 받았고, 또 어떤 이는 작품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며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작품 제목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뇌며, 상영 내내 생각을 곱씹는 이도 있었습니다.
비단 단편이라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매력과 흡입력을 가진 작품들이었기에, 정신을 차려보니 세 번째 작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애틀랜틱은 다시 점차 밝아졌고, 우리는 각자의 작은 감정을 담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박수 소리는 정말로 애틀랜틱을 가득 메웠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나서는 GV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저희의 GV는 원래의 GV와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GV는 Guest Visit의 약자로, 창작자와 관객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카페에서 하는 소규모 영화제인 만큼, 감독 과 배우, 관객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대화형 GV를 꿈꿨습니다. 이게 될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우리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으니 물은 엎질러진 셈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준비된 질문을 차례차례 던지던 GV의 시작은 조금 삐거덕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원활하게, 유창한 말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싶었지만 영수도, 수미도, 용수도 처음 하는 일이었기에 생각처럼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게스트들과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모두가 처음이었기에 이 대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돼>의 주기우 감독은 작품을 찍는 내내 생각했던 이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선뜻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쯤, 한 관객이 입을 열었습니다. 자신이 학부생 시절 배운 내용을 언급하며 교육의 부재가 원인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다른 관객은 외국에서 살 때 겪었던 일화를 공유하며 자신의 생각을 보탰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이곳,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되는 자리라는 걸 모두가 인식하게 된 순간 말입니다.
<되뇌다>의 배우는 <인터미션>의 배우에게 물었습니다. <인터미션>의 배우는 <내가 이것밖에 안 돼>의 감독에게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다른 관객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정말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화뿐만이 아닙니다. 이날 우리는 10년 전 추억을 간직한 관객이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초롱초롱하고 선한 눈빛을 가진 배우와 만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누군가의 꿈에 대한 열정이 담긴 작품을 보며 세대를 교차해 건네받은 위로의 순간을, 그럼에도 영화를 붙잡으며 살아가는 이와 영화를 추억 한편으로 묻어두는 이가 나누는 대화의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주기우 감독의 <내가 이것밖에 안 돼>는 우리가 쉽게 꺼내지 못하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했고, 변태진 감독의 <인터미션>은 우리 각자의 꿈과 열정의 순간을 되돌아보게 했으며, 박수민 감독의 <되뇌다>는 여러 번 되풀이되는 상황과 절제 속에서 곱씹게 되는 울림과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시간 반가량의 GV가 끝나고, 우리는 로터리 노트에 우리의 마음을 적고, 또 담았습니다.
이날 우리는, 우리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대화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되뇌었습니다. 큰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세 가지의 이야기는 우리의 입을 거쳐 느슨하게, 어쩌면 그 무엇보다 강력하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관객들이 자신의 생각과 장면의 의미, 경험, 추억을 공유하던 그 순간이 얼마나 반짝이고 설레였는지 모릅니다.
“이 영화제 정말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계속 하나요?”라는 관객들의 질문에 저희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희가 한 달 동안 준비한 제0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이날 저희의 손을 떠났습니다. 감독과 배우, 관객, 저희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팀 각자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고, 기어이 모두에게 가닿았습니다. 영화는 정말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다음 제1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에는 또 어떤 순간들이 찾아오게 될까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날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