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법>의 이준혁 감독님과의 인터뷰입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와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감독 : 안녕하세요,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하고 영화 현장 스태프와 영화제 스태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준혁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이별법>은 현실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마침내, 이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별성장’ 영화입니다. 코로나가 가장 심했던 2020년 한겨울에 촬영된 영화인데 이듬해인 21년도에도 많은 영화제들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서 관객 분들을 좀처럼 만나지 못해서 내심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다시 상영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네요!
Q2. <그녀의 이별법>는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작품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이준혁 감독 : 예전부터 이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해왔어요. 세상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러브스토리를 담은 영화는 너무나도 많은데 이별 영화는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별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많은 것들과 이별하게 된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직장을 잃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연인 간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큰 의미에서의 이별에 대해 다루고자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취준생, 고시생들이 많이 힘들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고 이 영화에 코로나인 상황을 숨기지 않고 같이 담아내기로 결정하면서 주인공 현실이 준비하는 것이 취업 또는 국가고시라는 설정이 추가되었습니다.
Q3. ‘현실’이라는 인물을 이현서 배우님께서 정말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위축되어 있고, 투명하고 말랑한 인물이라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곧이곧대로 그 사람이 될 것 같은 불안함이 유독 잘 보였던 것 같아요. 현실의 인물 설정과 배우님의 캐스팅에 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감독 : 현실이라는 인물이 배우 입장에서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도 아니고 굉장히 섬세하게 감정의 레이어를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라서요. 조감독님이 추천해 주신 배우님이 이현서 배우님이었습니다. 저희 학교 선배님이셨는데 같이 작업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연기는 너무 잘하시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제가 배우님에게서 현실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제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배우님과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캐릭터에 대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배우님과 현실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얘기 나눴던 건 현실이 영화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속으로 삼키는 인물로 표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한껏 몸을 부풀린 복어처럼 하고 싶은 내뱉지 못하고 답답함의 감정을 쌓아가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영화에 두 번 나오는 한강 장면에서도 맥주와 생수를 숨이 찰 정도로 들이키는 장면도 그런 이유로 넣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영화 후반부에 하고 싶은 말을 비로소 쏟아낼 때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Q4. 현실이 내내 붙잡고 있던 것들 중 하나는 퍼즐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조각들과 그 조각의 빈 공간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현실의 모습이 현실이 처해있는 상황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요, 많은 소재들 중 퍼즐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이준혁 감독 : 이별을 하면 항상 따라오는 문제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인 것 같아요. 연인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지우고,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버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이별을 해낸다고 생각해요. 현실도 그런 마음으로 이상에게 선물 받은 퍼즐을 정리하고자 했을 거고요. 퍼즐이라는 게 모든 조각이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사라진 퍼즐 조각들을 찾으면서 현실이가 이별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나를 찾아가는 영화이기도 해서 현실이가 본인의 조각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해 오브제로서 퍼즐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이가 맞추는 퍼즐이 파리의 에펠탑이 그려진 퍼즐인데 현실이가 카페도 그만두고, 몇 년째 준비하던 국가고시와 취업도 잠시 내려두고서 퍼즐 속의 파리의 에펠탑을 보러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파리는 항상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품고 살았을 것 같은데 자신이 처한 현실에 용기내기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Q5. 이상과 몇 마디를 나눈 후 길을 뛰어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품 내내 다소 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여주었던 현실이 끝에 뛰어가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불안함이 옅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장면의 연출과 촬영 간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감독 : 두 연인의 이름을 현실과 이상으로 정하면서 영화를 준비하는 내내 ‘현실이 이상으로부터 멀어져 눈앞의 현실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라는 시나리오 지문을 찍고 싶었습니다. 이 장면을 찍고 싶어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인물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가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기에 관객들이 각자 나름대로 상상해 볼 수 있고 뒷모습이 사람들에게 주는 특유의 인상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현실의 옆모습,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의 마지막 컷은 현실의 바스트 샷으로 시작해 인물이 점점 카메라로부터 멀어지면서 풀샷, 익스트림 풀샷으로 커지는 형태인데요, 이 컷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배우가 뛰어내려 가는 속도와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 내려가는 속도가 맞아야 하고 포커스도 다 맞아야 하니깐요. 현실 역의 현서 배우님과 촬영팀이 고생을 많이 해주셨고 테이크를 꽤나 많이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이 컷이 저희 영화의 진짜 마지막 컷이었어서 더 좋은 테이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Q6. 작품을 보면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노력했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의 현실은 무슨 마음이었을지, 그리고 감독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동안의 노력들은 무엇이 될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이준혁 감독 : 영화의 후반부에 현실과 희수가 술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장면에서 현실이가 희수에게 “일이 잘 안 풀릴 때 사소한 거 하나에 집착하게 되는 거 알아?”라는 말을 해요. 저도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슬럼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뭔가에 집착하거나 매달려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봤을 때는 제가 매달려 있는 이게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의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존재로 느껴지는 거죠. 그때마다 제 주변에 있는 감사한 분들이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 바닥인 저를 끌어당겨 주셨어요. 현실에게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었으면 했고 그게 희수와 카페 사장님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바, 노력했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의 감정은 상당히 복합적이었어요. 한동안 그 하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에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 오는 공허함도 있지만 묘한 후련함도 있거든요. 현실이처럼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낼 용기가 나기도 하고요. 다시 보니 현실이가 참 저를 많이 반영한 캐릭터네요.
현실이에게는 많은 마음의 짐이 있어요. 서울로 상경해 아직 취업을 못해 엄마에게도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는 죄송함, 동생인 현지는 번듯한 직장에, 차에, 남자친구도 있기에 현실이가 언니로서 느끼는 열등감, 희수 집에 얹혀사는 입장이라 희수의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전 남자친구 이상의 이별 통보로 늦게나마 홀로 정리 중인 현실의 마음까지. 영화의 마지막 현실이가 이상을 뒤로하고 뛰어내려 가는 장면은 이 모든 것과의 이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7. <그녀의 이별법>를 만들며 즐겨 들으신 음악이나 참고하신 영화, 책 등 제작 과정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감독 : 이별 영화를 만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로부터 이별담, 이별 극복담 등을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일부 시나리오에 반영된 것들도 있고요. 이별은 아무래도 한 사람이 홀로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제가 이별을 받아들이고 이별하는 ‘이별법’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 비슷비슷하더라고요. 한 가지 공통적이었던 것은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상황에 몰아넣는다는 것이었어요. 이별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을 자신에게 주는 않는 거죠. 그래서 아마 현실이도 이별 통보를 받고 난 뒤에 카페도 더 열심히 나가고 스터디도 더 늘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두 노래를 제일 많이 들었어요. 하나는 가을방학의 [가끔씩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고요. 다른 하나는 Hollow Coves라는 인디 포크 듀오의 [Coastline]입니다. 가을방학의 음악은 실제로 영화를 준비할 당시에 엔딩곡으로 염두해보고 있었는데 가을방학 그룹 내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해 영화에 삽입되진 못하고 제가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에 듣는 정도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할로우 코브스는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진 않은 포크 뮤지션들인데 정승오 감독님의 <오래 달리기>라는 단편에 이 뮤지션들의 <The Woods>라는 노래가 삽입되어 처음 알게 되었어요. <Coastline>이라는 음악이 가사도 어딘가로 새 출발하는 느낌의 가사이고 특유의 분위기가 영화의 엔딩과 잘 맞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서 배우님에게도 영화의 분위기를 상상하실 때 이 음악을 들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Q8. 영화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준혁 감독 : 하나는 나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가닿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영화 한 편씩 만들수록 글을 쓰고 연출을 하는 저 자신이 영화 안에 묻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각 인물이 겉으로는 저와 달라도 뭔가 하나씩은 저의 면모를 담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이 여러 사람들에게도 가닿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 내가 아직 내 이야기를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용기로 다음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구교환 배우가 청룡영화상에서 했던 말처럼 단편영화가 가진 시간의 매력이 관객들에게 선보였을 때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영화 생태계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미쟝센도 올해 다시 부활했고 로터리시네마도 오랜 시간 다양한 작품을 관객분들에게 소개해주시니 이 모든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Q9.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별법>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별이라는 코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시작점인 <그녀의 이별법>이 굉장히 개인적인 영화이자 저라는 사람을 많이 드러낸 일기장 같은 영화로 저에겐 남아있는데요, 이 영화가 있었기에 제가 계속해서 ‘이별’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였길 바라며 모두가 각자만의 이별법을 찾아 이별의 순간에 건강한 이별을 해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