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김이화 감독

<어느 학생의 기절>의 김이화 감독님과의 인터뷰입니다.

by 로터리 시네마
tempImagebSsrKC.heic <어느 학생의 기절>

Q1. 간단한 자기소개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이화 감독 : 안녕하세요. 어느 학생의 기절을 연출한 김이화입니다. 영화와 풋살을 좋아합니다. 어느 학생의 기절은 주인공 이안이 새롭게 짝이 된 지혜와 친해지기 위해 이리저리 애쓰는 마음을 그린 영화입니다. 오재미동 2024 언더그라운드 워크샵을 들으면서 만들게 된 영화입니다. (작년 11월에 상영된 <지나간 여름> 설희원 감독님과 동기랍니다 하하)



Q2. <어느 학생의 기절>은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작품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김이화 감독 : 저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마음 이외에 영화와 어떠한 연고도 없던 사람이었는데요. 문득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후,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며 쓴 첫 시나리오가 <어느 학생의 기절>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만큼 소재를 가장 가까운 곳인 저 스스로에게서 찾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요. 제가 이안이 나이였을 무렵부터 자아가 조금씩 안정되었다고 느낄 무렵까지,10대 초중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약 10년의 시간동안 이 욕망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좌절하고 고통받기 바빴던 것 같아요. 절대 채워지지도, 채워질 수도 없는 그 욕망에 말이에요!


그래서 시나리오 소재를 한창 고민할 무렵에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또 ‘이런 인물을 그리고 싶다’가 정해지고 나니 어느 순간 계속해서 체호프의 <어느 관리의 죽음> 이야기가 마음 속에 떠올랐고,<어느 관리의 죽음>의 뼈대를 가져가되 배경과 인물을 한국 중학생으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로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tempImageRmoDJh.heic <어느 학생의 기절>

Q3. 이안과 지혜는 마음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마음의 모양을 그대로 빚어낸 것 같았습니다. 다가가고 싶어 하며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런 악의 없는 모습에 당황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마음이 그러했는데요. 학생이라는 설정이 겹치며, 조금은 어린 행동들이 나타나는 것에서 인물들이 더욱 잘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두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이화 감독 : 어느 학생의 기절의 시작점이 저였던 만큼 시나리오를 쓸 때 제 기억들을 정말 많이 꺼내어 썼었는데요. 사회 시간 씬은 실제로 중학교 때 있었던 에피소드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답니다 하하 인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이안이는 저의 중학교 시절 모습을, 지혜는 제가 중학교 때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들을 많이 떠올리면서 만들어갔습니다.



Q4. 작품 속 물감과 그림은 두 인물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물감은 이안이의 마음처럼, 그런 물감이 섞인 물에 얼룩진 옷은 지혜의 마음처럼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두 인물의 중심에 있는 소재라 볼 수 있는 물감과 그림에 대해서 말씀부탁드립니다.


김이화 감독 : 흠... 사실 이 질문이 가장 답하기 어려웠는데요.<어느 관리의 죽음>의 뼈대를 가져가되 배경과 인물을 한국 중학생으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첫 씬부터 미술시간 씬까지 후루룩 써 내려갔어요.‘물감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그림과 옷은 이러한 의미를 담아서 장면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주 무의식적인 작용의 결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죠. 그래서 물감과 그림에 대한 부분은 창작자인 제가 ‘물감은 이렇고 그림은 이렇다’라고 말함으로써 의미를 닫아두기 보다는 관객분들이 자유롭고 재미있게 해석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겨놓고 싶은데요. 혹시 그래도 될까요..?


그럼에도 혹시 아쉬운 분들을 위해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리뷰 한 구절을 소개드리고 싶은데요.“수채화는 한 번 스며들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물을 더할수록 번져간다. 이안이가 옷을 빨수록 얼룩이 더 퍼져가는 모습이 그의 감정 상태를 닮았다”는 해석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깊이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tempImage1SNy0g.heic <어느 학생의 기절>

Q5. 이안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정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점점 궁지에 몰려 결국 기절하는 척 연기를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 같은 귀여움이 묻어나는 행동이면서도,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보여 마냥 가벼운 안쓰러움으로 볼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이안이 기절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김이화 감독 : 어른과 어린아이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혹은 모르는가에 있는 것 같아요. 사춘기 시절은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기 앞서 알에 금을 내는 시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시기의 방황과 혼란은 세상이라는 바깥을 향해 크고 작은 균열을 내는 몸부림인 거죠.


보통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균열을 내고 그 균열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세상의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20대 초중반까지는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춘기부터 20대 초반까지, 약 10년에 걸쳐 천천히 전능감이 벗겨지는 거죠.


그런데 이안이는 그 과정을 너무나 순식간에 겪어버립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혜와 친해질 수 있어’라는 어린아이 같은 전능감이 반나절 만에 깨져버려요.10년에 걸쳐 마주해야 할 진실을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채로 반나절 만에 마주해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그 충격 앞에서 기절은 어쩌면 가장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비록 기절한 척이긴 했지만, 실제로 기절했든 기절한 척을 했든 중요한 건 하나죠. 이안은 아직 그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잠시 현실을 멈추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Q6. 악의 없는 순수한 마음이 항상 좋은 상황과 좋은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직면하며, 앞으로 이안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안에게 감독님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이화 감독 : 아래와 같이 이안이에게 간단히 편지(혹은 쪽지) 남기겠습니다.


귀요미 이안아 잘 지내고 있니? 요즘 너는 하루 끝을 어떤 감정으로 마무리 하는지 궁금하구나. 혹시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해. 혹시 너 스스로가 미워지거나 부끄러워질 때면 자책하기 보다는 ‘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 들구나’ 하고 들여다봐줘. 근데 자책 좀 하면 어때. 언니는 너 나이때 더 심했다. 아무쪼록 너의 모든 순간을 응원할게! 너가 사랑할 기쁨과 즐거움과 성취의 순간뿐 아니라 너가 외면할 부끄러움과 슬픔과 상실의 순간들까지도.


추신. 애쓰지 않아도 넌 충분히 사랑스럽단다.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인데 너만 그걸 모르는 것 같아!


tempImagesG2sst.heic <어느 학생의 기절>

Q7. <어느 학생의 기절>을 만들며 즐겨 들으신 음악이나 참고하신 영화, 책 등 제작 과정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이화 감독 : 마이클 니콜슨의 <졸업>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졸업>의 주인공 벤저민과 이안이가 꽤나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의 시그니처 촬영 기법인 ‘퀵 줌 인/아웃’을 어느 학생의 기절에 넣기도 했답니다.


사실 이안이가 지혜와 친해지고 싶어하지만 지혜라는 ‘사람’이 좋아서 친해지려 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뭐랄까요...‘지혜 정말 재밌고 매력적이다. 지혜랑 같이 있으니깐 마음이 편해지고 너무 즐거워’ 라는 마음보다는 ‘세상아 봐라! 나 지혜 같이 멋진 친구랑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에서 이안이의 행위가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물론 이안이 스스로는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겠지만요.)


이안이는 눈 앞의 상대와 존재로서 교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게 초점이 가 있어요.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 동기에서 비롯되다 보니 이안이는 지혜와 자꾸 묘하게 어긋나죠. 저는 <졸업> 속 벤저민도 이런 지점에서 이안과 비슷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벤저민 또한 ‘나’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상대와 함께 있지만 존재로서 교감하지 못하고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말과 행동만을 늘어놓죠.



Q8. 감독님께 영화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이화 감독 : 아직 필모그래피에 단편 영화 하나밖에 없는 감독이라 원동력에 대해 말씀드리긴 조금 쑥스러운데요 하하 그래도 조심스레 말씀드려본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어느 학생의 기절을 찍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영화적인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느 학생의 기절을 완성한 지난해에는 2편의 시나리오를 썼어요. 한 시나리오는 ‘꼭 영화화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고 나머지 한 시나리오는 미련도 없이 휴지통으로 버렸는데요. 살아남은 시나리오와 버려진 시나리오의 차이는 그 시나리오가 ‘제 삶의 강력한 인상을 남긴 감정 및 관계에서 비롯되었느냐 아니냐’에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새롭게 쓰고 있는 시나리오 또한 저의 내밀한 부분에서 소재를 찾아 ‘이 이야기는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해!’라는 신나는 마음으로 개발 중에 있습니다.


또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저만의 영화 지평이 넓어지는 듯한 순간들도 영화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면 저의 궁극적인 꿈인 ‘시네필이 되는 것’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매우 신이 납니다.


tempImagefv4zpK.heic <어느 학생의 기절>

Q9. 마지막으로 <어느 학생의 기절>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이화 감독 : <어느 학생의 기절>은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마치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초심자의 행운이 곳곳에 깃들어 있었던 영화였어요. 영화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영원히 감사합니다 ♥)


또한 <어느 학생의 기절>을 매개로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안이를 발견하는 경험은 제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자 즐거움인데요. “감독님! 저도 학교 다닐 때 이안이 었어요!”라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관련된 소중한 기억들을 꺼내어 공유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만나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나봐요. 하하 ♥


세상의 모든 이안이들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



매거진의 이전글26' 02"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