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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Rotary Interview : 김주리 감독

<환절기>의 김주리 감독님과의 인터뷰입니다.

by 로터리 시네마
<환절기> 김주리(2024)

Q1. 안녕하세요.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팀입니다. 영화 <환절기>에 대한 짧은 소개 및 김주리 감독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주리 감독 : 안녕하세요. <환절기>를 연출한 김주리입니다. <환절기>는 이별을 앞둔 두 친구의 하루를 담은 영화예요. 성숙한 듯 어설프고, 어색한 듯 친밀한 두 사람의 모습을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2. <환절기>는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작품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김주리 감독 : 사실 <환절기>는 (정말 감사하게도) 촬영감독님과 피디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영화에요. 2년 전 연말에 두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몇 달 후면 저희가 각자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질 예정이었는데, 그전에 우리끼리 그냥 재밌게, 작은 규모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요. 두 분과 상의한 끝에 촬영날짜와 장소를 먼저 정해둔 다음 시나리오를 썼어요. 마침 이 전에 해안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 시놉시스를 써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당시의 여건에 맞게 이리저리 고쳐서 <환절기>의 시나리오가 완성됐어요.


한편으로 저는 여섯 살을 전후해서 시골 마을에 반년 정도 살았던 경험이 있어요. 하루에 마을버스가 한두 대 겨우 오는 곳이었어요. 도시에서 쭉 살다가 덩그러니 그곳에 떨어져보니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지루한 거예요. 그때의 낯선 심심함과 답답함은 아직까지도 마음 속 깊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더욱이 그곳에는 제 나이 또래의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혹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어떤 애 하나가 동네에 뚝하고 떨어졌어요. 그다지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동네에 애가 워낙 없으니까 친하고 친하지 않고를 떠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불가피하게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서로 싸우게 되어도 얼마못가 반드시 마주치게 되었고요. 촬영 장소가 그렇게 정해지고 나니 유년시절에 잠시간 머물렀던 그 공간에 대한 느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또래 친구’에 대한 기억을 좀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다시 저는 도시로 돌아와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저는 10대 시절이 좀 괴로웠어요. 세상이 너무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것 같은데 이 울분을 충분히 해소할 수가 없어서 늘 조금씩 슬펐고 화가 나있었던 것 같아요. 한참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그런 치기어린 제 마음에 선뜻 공감해주었던,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을 죄다 잊어버리고 기어이 함께 웃을 수 있게 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던 덕분에 그 시기를 잘 지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그 ‘또래 친구’와의 관계성을 어떻게 담아내 면 좋을지 미약하게나마 감이 좀 잡혔던 것 같아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은데요, 대강 요약을 해보자면... 급박하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제가 가장 잘, 그리고 가장 재밌게 할 수 있을 이야기를 고심하다보니 오늘날의 <환절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환절기> 스틸컷

Q3. 윤재와 민서는 학생이지만 학생 같지 않은,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혼란스러워 보이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시내에서 떨어진 사람이 많지 않은 바닷마을,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 등이 두 인물의 이런 모습을 더 잘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과 인물 설정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김주리 감독 : 질문해주신 그대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바닷마을이 배경이 되는데요, 저 정도의 규모면 정말 친밀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씩 있는지는 미주알고주알 꿰게 되더라고요. 저런 곳에서 또래와 있다 보면 서로 아는 건 많은데 정작 중요한 건 모르고(혹은 모른 척하게 되고), 가끔은 여러 이유들로 애써 친근하게 굴어야하는 어색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이제와 돌이켜보니 좀 재밌는 지점인 것 같았어요. 윤재와 민서도 그런 애매한 관계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라 생각했어요.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그맘때에 속한 누구에게나 또래 같지 않으면서 또한 동시에 마냥 그 나이대의 아이처럼 보이는 면모가 이리저리 울퉁불퉁하게 뒤섞여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균질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부딪혔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렇게 해서 두 혼란이 만나 새로운 그림을 만들 수 있게끔 궁리해보자... 라는 것이 <환절기>의 최우선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술과 담배는 직관적으로는 (미성년자에게라면 더욱이) ‘어른의 것’으로 느껴지는데, 막상 그것들을 접해보면 되려 자신들의 ‘어림’을 상기시키는 물건인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나아가서는 두 사람이 그만큼 쉽게 그런 것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건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걸 암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에 더해서 본래 윤재와 민서에게 더 많은 전사가 주어져있었어요. 특히나 장편으로 계획하고 있었던 시놉시스에서 일부를 떼어내 만든 이야기다 보니 군데군데 생략된 부분도 많았는데요. 이를테면 윤재의 아버님은 배를 타는 분이시라는 언급도 있었고요... 민서의 좀 더 내밀한 가정사도 담겨있었어요. 시골에 살면서 느꼈던 그 사회의 풍경을 좀 더 묘사하고 싶은 욕심도 컸어요. 다만 저의 역량 부족으로 많은 것들이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채로 영화가 완성되어 버린 것 같아요. 이래저래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배워나간 것들이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4. 윤재는 시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예정이었던 아파트에서 민서에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합니다. 그와 동시에 오래된 필름 그레인이 나타나며 과거의 순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 씬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주리 감독 : 짧은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촬영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아련하고 포근한 감각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전반적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게 해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저녁과 밤, 새벽 사이의 시간이 유달리 꿈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요. 마침 촬영감독님께서 색보정도 맡아주셨던 터라, 후반을 같이 진행하면서 촬영감독님께서 그런 ‘꿈’의 느낌을 이런 시각적인 효과로 대체해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의견을 주셨어요. 저도 촬영감독님의 의견에 동의했고, 서로의 생각을 잘 취합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결과물로 완성해보았습니다.


<환절기> 스틸컷

Q5. 작품 내내 신발끈은 윤재와 민서 사이에서 하나의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발끈은 두 인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 같았는데요, 작품 초반 ‘절대 풀리지 않게 묶어준다‘는 민서의 말에서 시작되어 결국 후반부에 다시 풀려버린 신발끈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신발끈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주리 감독 : 제가 신발끈을 못 묶는데요, 묶더라도 제대로 된 방법을 숙지하지 못해서인지 정말 엉성하게 묶여버려서 금방 풀려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항상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제 신발끈을 다시 묶어주곤 하는데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제가 신발끈을 묶지 못하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시놉시스로 써갔을 때 고등학생이 어떻게 신발끈을 못 묶냐, 현실감이 없다는 피드백을 듣고 나름대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당연하게 할 줄 알아야 하는 거구나, 혹시 그동안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의존적이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련의 일들로 신발끈이라는 게 제게는 어른이 되는 관문 같은 걸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실제로 돌이켜보면 학교 다닐 때 제 신발끈을 묶어주는 친구들이 정말 멋있게, 어른스럽게 보였거든요. 그런 저의 인식이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아요.


윤재는 신발끈을 묶지 못해서 헤벌어진 운동화를 신고도 계속해서 길을 걸어요. 대강 끈을 짧게 말아서 동여매거나 차라리 끈이 없는 신발로 바꿔 신어도 될 텐데도, 윤재는 그냥 그렇게 해요. 민서는 그런 윤재에게 다가가서 기꺼이 자세를 낮추고 윤재의 신발끈을 단단히 묶어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발끈을 묶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기도 해요. 앞으로는 윤재가 좀 더 산뜻하게 걸어다닐 수 있게끔요. 그런 정성에 이끌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윤재 역시 서툴지만 스스로 신발끈을 묶어보려고도 하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돌이켜보면 신발끈의 상태 변화(?)만으로도 극중의 두 사람의 관계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6. 작품의 마지막 풀샷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두 인물이 같이 걸어가는 길이 점점 짧아 지는 모습이 마치 둘의 관계가 끝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두 인물이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김주리 감독 :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윤재가 아름다운, 그렇지만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준 공간을 이제는 뒤로 하고 마침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어요. 뒤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걸어가다 보면... 본래 유별나게 친한 것도 아니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이 소원해져 곧 끝나버리게 될 것 같아요. 민서도 얼핏 떠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치니 만큼 전혀 다른 곳에서 예기치 못하게 우연히 다시 만나거나, 많은 과정을 거쳐 다시금 이곳에서 재회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단발적인 만남에 지나지 않게 될 것 같아요. 무척이나 감정적이었던 때의 (어린) 우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각별히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야 보통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어색하게 만들잖아요.


<환절기> 스틸컷

Q7. 영화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주리 감독 : 영화를 만드는 일이 그냥 재밌고 좋아요. 일련의 과정 속에 섣불리 일축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혼재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재밌고 좋아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런 사유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8. 감독님에게 <환절기>, 혹은 ‘청춘’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을까요?


김주리 감독 : 중학생 때부터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을 꽂은 채로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어요. 어두운 방안에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몰두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과 2집이었어요. <환절기>의 제목도 ‘브로콜리너마저’의 2집 수록곡에서 따왔습니다. 다만 그 앨범에서 ‘청춘’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곡은 저에게는 <다섯시반> 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인 것 같아요.


‘브로콜리너마저’와 더불어서 그맘때 정말 좋아했던 밴드가 있는데... ‘세카이노오와리’라는 일본 밴드예요. 제가 윤재, 민서와 보다 가까운 나이였을 때는 (무릇 많은 10대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저 자신이 세상과 불화하고 있다고 자주 느꼈는데, <虹色の戦争>이라는 곡은 그런 이질감에 관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들었어요. 이 곡의 라이브 영상에서 밴드 멤버들에게서 느껴지는 건강하고 명랑한 에너지가 정말 좋은데, 그야말로 청춘만이 뿜어낼 수 있는 활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가끔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환절기> 스틸컷

Q9. 마지막으로 <환절기>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주리 감독 : <환절기>를 촬영했던 지난해 1월말이 정말 추웠어요. 추운 겨울에 고생한 우리 스태프분들과 배우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다시금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저희 촬영감독님과 피디님께는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정말 정말 감사드린다고 덧붙이고 싶어요!


이 영화를 봐주시는 관객분들께도 정말이지 감사한 마음입니다. 작은 규모로 만든 영화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얼떨떨해요. 정말 기뻐요! <환절기>를 만들기를 너무너무 잘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다음에도 또 다른 영화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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