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겨울, 그 사이에 피어난 청춘
제6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지난 4월 24일에 진행되었습니다. 함께해주신 감독, 배우,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현장 스케치와 리뷰, Rotary Sketch를 공개합니다.
2025년 4월 24일 저녁 7시, 혜화카페 애틀랜틱에서 제6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열렸습니다. 어느덧 4월입니다. 이제는 반팔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에, 애틀랜틱에는 여러 계절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4월은 청춘 영화 특집으로, 청춘을 다룬 세 작품(<여름방학>, <에프 더블유 비>, <환절기>)을 상영했습니다. 이번 회차는 역대 가장 많은 게스트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관객석 역시 조기 매진되었습니다. 저희는 혹시나 의자 개수가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며 영화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여러분에게 조금 더 알려진 것 같아 내심 기뻤습니다.
이번 달 진행은 지난달에 이어 은채와 수미가 맡았습니다. 작품의 감독님들과 주연 배우님들, 스태프분들까지 참석해 주신 이날의 대화형 GV는, 작품의 연출적인 측면뿐 아니라 캐릭터 연기와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풍부하게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세 작품은 모두 관계를 중심으로 청춘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에는 서로 마음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못한 두 사람의 첫사랑이, <에프 더블유 비>에는 사랑의 가치관이 서로 달랐던 이들의 젠더를 넘나드는 삼각관계가, <환절기>에는 단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고향 친구와의 첫 이별이 있었습니다.
청춘은 사전적 정의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친 인생의 젊은 시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로만 청춘을 정의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청춘은 무엇이냐는 저희의 물음에 나눠주신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청춘은 ‘흔들리고 깨어지는 시기’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여름방학>의 정희는 마음을 고백하고 이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유독 더운 여름을 보냈을 것이고, <에프 더블유 비>의 도진은 전 애인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여린 속살을 드러냅니다. <환절기>의 윤재와 민서에게는 전학이라는 사건이 죽음과는 또 다른 큰 이별로 다가왔을 겁니다.
<환절기>와 <여름방학>에는 공통적으로 다른 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신발 끈을 고쳐 묶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혼자 신발 끈을 묶지 못하는 미숙한 인물이 영화 끝에 가서 스스로 신발 끈을 묶게 되면, 그 인물이 성장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식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속에는 신발 끈을 잘 묶지 못하는 정희와 윤재 옆에, 기꺼이 무릎을 꿇어 신발 끈을 묶어주는 이준과 민서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신발 끈을 묶어준다는 건 당신의 발걸음, 앞길을 응원한다는 애정 어린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의 정희는 이준이 옆에 있는 한 풀린 신발 끈이어도 해맑게 웃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환절기>의 윤재는 이제 민서 없이도 스스로 신발 끈을 묶으며 담담히 나아갈 것만 같습니다.
<에프 더블유 비>의 도진이 영화 시작과 끝에 변함없이 입술을 뜯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이준과 민서같은 사람이 도진 곁에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사람이 꼭 누군가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 도진도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방학>의 여름과 <에프 더블유 비>의 겨울 사이, <환절기>로 채워진 이날의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여러 계절이 어우러져 푸를 청(靑)에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늘의 영화파티가 청춘을 살아가는 이들뿐 아니라, 청춘을 보낸 이들, 어쩌면 새로운 청춘이 다가올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라봅니다.
다음 제7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5월을 맞아 ‘가족’을 키워드로 한 작품들을 상영할 예정입니다. 5월에는 어떤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고, 또 어떤 대화들이 애틀랜틱을 가득 메울지 기대해 보며 신발 끈을 고쳐 묶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