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겨울이 오면>의 이주원 감독님과의 인터뷰입니다.
Q1. 안녕하세요. 영화 <누구나 겨울이 오면>에 대한 짧은 소개 및 이주원 감독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주원 감독 : 안녕하십니까 <누구나 겨울이 오면>의 감독 이주원입니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남성성이 중시되는 경상도 지역에서 평생 가부장적으로 살아온 중년 남성이 갱년기와 노화를 겪으며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Q2. 영화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어떤 계기로 제작하게 되었나요?
이주원 감독 : 평생 함께 살아온 저희 아버지와 저의 관계를 다룬 영화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여느 가족처럼 저희도 정말 친밀했어요. 퇴근하신 아버지의 다리에 꼭 달라붙어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는단 이유로 저는 ‘코알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버지와 저는 말다툼이 잦아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장으로서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하셨고, 저는 저대로 점점 머리가 커지며 어른의 통제에 한창 반항하는 사춘기가 되었죠. 아직도 기억나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가족 식사 중에 제가 실수로 밥그릇을 떨어뜨린 적이 있어요. 그 작은 실수에 혹여나 아버지께서 노하실까 봐 온 가족이 긴장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때쯤부터 아버지가 점점 무섭고 어려운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서론이 길었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일생 중 제가 지켜본 두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잔병치레 없이 늘 건강하셨었는데, 5년 전에 치질 때문에 간단한 수술을 받으신 적 있습니다. 수술 이후로 아버지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생리대를 빌려 착용하셨어요. 제게 아버지는 분명 경상도 남자의 표본이자 남성성 그자체로 느껴졌었는데, 그런 인물이 여성의 물건을 사용하는 모습이 제게는 정말 낯설고 의아한 인상을 주어서 오래 기억에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건강하셨지만, 유독 감기는 자주 겪으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의 감기가 지속되던 날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아침부터 니 아빠가 말도 잘 못하고 이상하더라.”라고 걱정하셨었는데, 저는 당시에 다른 영화 촬영 준비와 생계를 위한 알바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날은 야간 알바 전에 여자 친구와의 저녁 데이트도 예정되었기에 아버지의 건강은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 아플 사람이 아닌데.’ 하며 말이죠.
그렇게 저녁 데이트와 새벽 알바를 끝내고 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보통 그 시간대에는 온 가족이 출근 준비로 분주해야 하는데, 그날은 친형 혼자서 묵묵히 면도를 하고 있더군요. 이상하리만큼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이었어요.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그 분위기 속에 “솔직하게 말할까? 아님 거짓말로 할까?”라는 형의 발언이 방아쇠처럼 평화를 깼습니다. 제가 여유롭게 데이트나 하고 알바를 하는 동안, 아버지께선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죄책감과 불안함, 슬픔, 부정 등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의 아버지, 병원복을 입은 채로 말없이 꼭 잡아주던 손, 집안의 허전함 등이 기억납니다. 죄책감에 그때는 일도 그만두고 간병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두 순간 모두 제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 두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은 영화입니다. 그때 아버지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저에 대한 반성의 영화이기도 하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다시 화목하게 지내고 싶다는마음을 담아 아버지께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입니다.
Q3. 제목으로 나타나있는 ‘겨울’에 대해서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라면, 짐짓 그 의미를 예상하고는 있겠지만 감독님이생각하시는 ‘겨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주원 감독 : 꽃이 지는 계절. 식물도 동물도 잠드는 계절, 매서운 바람에 온몸이 움츠려지는 계절, 그러나 사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봄을 준비하는 조용한 인내의 계절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속 지환이의 겨울도 그러하길 바랐습니다. 춥고 모진 바람에 위축된 것 같으나, 봄이 오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라 굳건히 믿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이제 막 첫 겨울을 겪은 지환이가 다시금 봄으로 순환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가정 부양만을 목표로 평생을 살아온 첫 번째 사계절의 지환이. 이제는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며 살게 되는 두 번째 사계절의 지환. 그럼, 그다음은 또 어떤 봄이 찾아올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Q4.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감독님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도 알고 싶습니다.
이주원 감독 : 호준을 연기해 주신 ‘최지헌 배우’님께서 미남이신 덕분에 다소 부끄럽지만… 아무래도 실제 가족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아들 역할인 ‘호준’에게 저 자신을 투영했습니다. 전등 정도는 혼자 갈아도 될 것 같고, 이젠 정말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가족들 앞에선 아직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런 캐릭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마디 건네는 것조차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한 번쯤 아버지 앞에서 기세로도 이겨보고 싶지만, 막상 정말 싸우게 되는 건 무서워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마침, 지헌 배우님께서도 경상도에서 비슷한 환경을 통해 자라온 경험이 있으셔서 이런 부분이 특히 더 잘 드러난 것 같아기쁩니다. 하지만 아직은 제가 영화 속 호준이처럼 완전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듬직해지진 않은 것 같아, 마지막은 제가 꿈꾸는 미래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더 성장하고 경험하며 훌륭한 영화감독이자 아들,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로는 역시 주인공 지환이입니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아직 아들만 경험해 본 저로서 자꾸만 호준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쓰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제 주인공인 지환에게 가장 몰입하려고 노력했었는데요. 그만큼 지환이는 마치 실제 제 아버지처럼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지환이는 이때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 아버지는 그때어떠셨지..?’하며 실제 아버지께 대입하는 게 일상이었죠.
작중 트레이닝복도 실제 아버지가 입으셨던 옷을 가져왔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강인하고 듬직했던 시절 애착 잠옷처럼매일 입은 옷이에요. 이제는 옷이 해져 버리겠다던 부모님 앞에서 제가 강하게 만류하여 간직해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다가가기 어려운 만큼 더 관심을 가지고 실제 아버지처럼 느껴진 덕분에 더 아픈 손가락 같고 애증을 가지며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자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로 늘 고생하는 아내 ‘수경’와 너무도 친근한 삼촌 ‘승철’도 개인적으로 정말 아낍니다.
Q5. 갈등이 있던 가족이 통합되는 계기가 주인공 ‘지환’의 노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눈 여겨볼 점인 거 같아요. 삶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계기로 위와 같은 소재를 생각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메세지를 관객분들께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주원 감독 : 가족이 기존에 다 같이 모여서 가족 행사를 치르거나 함께 얘기 나눈 적이 잘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입원 이후로 온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되더라고요. 물론 활기찬 주제보다는 사뭇 진지한 얘기로 가득했지만, 평생 가족만 보며 살아온 사람을 위해서 이젠 가족이 그를 위한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가끔은 아버지의 갱년기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마 아버지께서 여전히 건재하셨다면 이런 상황은상상도 못 했겠죠. 만약 그렇다면 전 아직도 식사 시간을 두려워하는 밥상 앞의 아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화로 인한 남성 호르몬 감소. ‘남성성’을 상실한다는 의미에서 부끄럽거나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변화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였으면 해요.
군대에서 정년퇴직을 앞두셨던 행정보급관님이 기억납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강인하게 살아온 군인이지만, 이제는자글자글한 주름과 푸짐한 몸매를 소유한 아저씨였습니다. 보급관님께서는 혼자 식사하시는 걸 싫어하셨어요. 늘 ”야! 나만 빼고 밥 먹으러 가지 마! 나이 먹으면 이 여성호르몬 때문에, 이런 걸로 쉽게 상처받아 나! “하며 외치시곤 했죠. 그러면서 식사도 어찌나 천천히 하시던지… 덕분에 온 소대원들이 꼼짝하지 않고 대기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병, 일병들은 그 지루한 자리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 상병, 병장이던 선임들은 그런 보급관님을 항상 흐뭇하게 바라보며, ”보급관님 식사하러 가십니까?“. ”보급관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하며 마치 보급관님을 보살펴드리듯이 예우를 갖추더라고요.
솔직하게 갱년기를 밝히는 중년의 군인과 그런 그를 진심으로 배려해 주는 빡빡이 청년 군인들. 그 모습이 꽤나 웃기고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보급관님과의 식사를 지루해했던 저도 언젠가부터는 보급관님과의 식사 무리 일원이 되었죠. 이런 사례처럼 세상의 모든 지환이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께서 현재 겪고 계신 노화를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당당히 받아들이고 알려줬으면 해요. 가족, 동료, 무리와 늘 즐거운 인생을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Q6. 사투리의 어감이 재미있어 기억나는 대사가 많았습니다. 그중 “울릉도나 똑띠해라.”는 ‘지환’의 혼미한 정신을 표현한 엉뚱한 대사라 기억에 더 잘 남는데요. 어떻게 만들어낸 대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주원 감독 : 작중 병명이 정확히 대사로서 언급되진 않지만, 지환은 뇌경색을 겪습니다. 뇌경색 증상으로는 언어나 신체에 장애가 생기는데, “‘거친 말과 행동’이 늘 앞서던 사람이 ‘말과 행동’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쭉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지환의 혼미한 증세를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엉뚱하고 독특한 대사를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대사에의미를 담고자, 지환의 과거와 관련된 ‘경호원’, ‘가족’ 이런 대사를 넣으려 고심을 오래 했습니다.
하지만, 대사에 의미를 담는 순간 결국 대사가 진실되지 않게 들렸습니다. 결국은 꾸며낸 대사가 아닌 실제 이야기를 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실제 저희 아버지께서 당시에 말씀하셨던 단어 중 가장 의문스럽던 ‘울릉도’를 가져왔습니다. 그 단어를 들은 저희도… 그 단어를 말씀하신 아버지도…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확실하게 뇌경색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을 대표할 수 있도록 사투리를 꼭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침 ‘지환’역의 ‘이달형’배우께서 오랜 연기 경험으로 전국 사투리는 모두 소화 가능하신 덕분에 이러한 지점도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호준(아들)’역의 ‘최지헌’배우님과 ‘수경(아내)’역의 ‘김민선’배우님, ‘승철(삼촌)’역의 ‘최인환’배우님 모두 경상도 배우님들이라 사투리에는 큰 걱정 없이 믿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Q7. 감독님은 현재 대구에서 활동 중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활동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주원 감독 : 그 무엇보다도 역시 ’동료‘입니다. 이 영화가 로그 라인만 있던 상태일 때부터 꼭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건방진 후배가 지금의 피디가 되어주었고, 졸업과제 때부터 지금까지 늘 든든한 지주가 되어준 나의 조감독 쿼카 씨, 이젠 없으면 안 되는 서로의 영원한 스크립터, 궂은일들은 모두 골라 맡아주신 우리 군필 여대생 만능 미술감독님, 같은 촬영 수업 수강생이었다가 스태프가 되어 준 라인피디님, 분장을 직접 배워와 준 분장실장님, 급박한 스케줄에도 든든히 달려와 준 제작팀원님, 늘 신세를 지고 있는 최고의컬러리스트이자 촬영감독님, 연제작부와 촬조팀의 소중한 연결고리인 우리 촬영팀원님, 매번 고생만 시켜드려도 항상 웃어주시는 사운드감독님. 그리고 엑스트라 출연과 시나리오 피드백도 흔쾌히 도와준 나의 소중한 동료들.
장일경, 류승원, 김주리, 윤소희, 김서현, 박미지, 손성은, 전상진, 김만준, 조성림, 이명형. 김홍신, 이석현, 조외정.
위 동료들 덕분에 영화를 함께 만들어 나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Q8. 감독님에게 <누구나 겨울이 오면>, 혹은 ‘가족’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을까요?
이주원 감독 : 영화 제목처럼 역시 ’잔나비-누구나 겨울이 오면‘입니다. 가제로 따온 노래였는데, 도저히 다른 제목으로 대체할 수가 없더라구요. 시나리오 작업 때도 늘 반복 재생을 했던 노래입니다. “나에게 지난 겨울은 봄이 오기만은 기다린 시간. 이젠 그 누구나처럼 얼어붙은 맘을 녹일 수 있게 겨울이 온다. ~ 이젠 나에게도 눈이 오구나” 라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가족‘으로서는 ’나훈아-홍시‘가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노래예요. 이유를 직접 아버지께 여쭤보진못했지만, 가사 속에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들으시나?’ 하며 유추한 적은 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아버지가 들으시던 노래를 이젠 제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듣고 있는 셈이죠.
저도 재밌게 들은 덕분에 영화 속 지환의 벨소리로 등장하고, 지환이 직접 허밍으로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Q9. 감독님의 작품 <누구나 겨울이 오면>을 향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주원 감독 : 남성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상도라는 지역을 특정했지만, 전국의 가족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예상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환이들과 호준이, 수경이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