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내게 치유가 아니다, 그냥 숨이다

by 이안나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쉬어졌다.

'하… 이제 살 것 같다.'

말 그대로였다. 숨이 — 쉬어졌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쌀쌀한 날씨도, 얼굴을 할퀴는 바람도, 그 어느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주에 발을 딛는 순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육지에서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혀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숨이 가빠지고, 과호흡이 찾아오고, 공기가 폐 끝까지 닿지 않는 것 같은 날들.

그런 내가 제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심장을 짓누르던 10톤짜리 무게 추가 사라지고. 어깨에 맨 15킬로 가방마저 날개처럼 가벼워졌다.

다행이다. 오길 잘했다.


몸도 마음도 이미 한계였다.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버티고 있었던 거다, 육지에서. 그렇게 간신히 버티다 내린 제주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그 짧은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썰물져 나갔다. 머리가, 맑아졌다.

렌터카를 찾아 차에 오르자마자 망설임 없이 핸들을 돌렸다.

나의 제2의 고향. 나의 낙원. 서귀포로.

조금만 기다려. 이제 간다.

54킬로미터를 단숨에 달렸다. 1시간 20분.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아직 외투도 벗기 전에 익숙한 골목을 찾아 걸어 나섰다. 가장 좋아하는 카페의 라떼가 생각났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됐다.


제주의 카페는 다르다.

육지에도 카페는 넘쳐난다. 하지만 대부분 어딜 가나 같은 간판, 같은 메뉴, 같은 공간.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익숙함이 때로 숨을 막히게 했다.

제주는 다르다. 골목 안쪽에 조용히 숨어 있는 카페들. 직접 원두를 고르고 볶고, 공간 하나에 몇 달을 쏟아부은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들.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기 오길 잘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장소들.

서귀포의 카페만 돌아도 2주는 너끈히 걸릴 것이다.

그중엔 진짜 보물 같은 곳들이 있다. 커피 한 잔이 그날의 여행 전체를 구원해 주는 그런 곳. 그런 곳들이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면서도, 어느 날 문득 닫혀 있는 셔터를 마주할 때면 마음 한켠이 서늘해진다. 제주라고 예외는 없으니까.

그래서 5년째 제주를 오면서, 좋아하는 카페들을 일부러 찾아간다.

소비가 곧 응원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제주에서의 내 하루는 늘 같다. 걷기와 카페, 그게 전부다.

한여름, 등줄기에 땀이 흥건해질 때까지 걷다가 마시는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은 사막에서 마시는 물 같다.

과장이 아니다. 진짜로 그렇다. 손이 곱을 것 같은 한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손으로 감싸 쥔 따뜻한 라떼 한 잔은 온몸이 천천히 녹아드는 경이로움이다.


걷고, 마시고, 또 걷고.

별것 없는 하루인데, 이상하게 충분하다.

제주는 내게 여행지가 아니다. 치유의 공간도 아니다.


그냥 숨이다.

육지에서 잃어버린 숨을, 여기서 되찾는다. 매번, 도착하는 순간. 그래서 나는 또 온다. 또 올 것이다.

숨이 막힐 때마다,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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