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긴 연휴, 언니를 따라 고향집에 내려갔다.
엄마 아빠 산소에 들러 술 한잔 올리고
마음속으로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그곳에서는 평온하게 잘 지내세요?'
언니를 만나는 날이면 엄마의 기억들을 퍼올린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
언니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과
또는 같은 모습들이 각자의 기억속에 남겨져 있다.
서로에게 엄마는 한 명인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참 많이도 달랐다.
'하, 같은 집에 같은 엄마, 같은 자매로 자란 게 맞아?'싶을 정도로.
"언니 우리 같은 집에서 살은 거 맞지?'라며 웃는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추억 속에 엄마를 만나고
아주 이른 저녁부터, 아니 낮 술을 기울이며
지난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낸다.
몇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 끝에 내려진 결론은
엄마는 참 고되고 외로운 삶을 살다가 떠나셨다는 것.
'자식이 많으면 뭐 하나. 반은 서로 남처럼 살다 간 인생'
엄마의 삶은 왜 이리도 연민으로 가득한지.
그렇게 몇 시간을 엄마 이야기로 안주 삼아 밤을 맞이한다.
2025년 5월 5일
같은 날 엄마집에 도착한 오빠의 아침의 호출
"성희야. 쌀 담가 놓았는데 오빠차 끌고 가서 떡 좀 해와"
엄마가 없는 자리에 오빠가 엄마처럼 말을 한다.
딸들이 오면 쌀을 담가 떡을 해주시던 엄마.
이제 엄마의 떡이 오빠의 떡으로 바뀌는 것일까?
"웬 쌀을 담갔어?"
"묵은쌀이 많이 남아서 새벽에 잠도 안 오고 떡이나 해 먹으려고 담갔지."
그런데......
긴 연휴를 맞은 방앗간들은 모두 휴무였다.
"오빠, 방앗간 연락해 보니 모두 영업 안 한데. 어떡하지?"
"아이고, 14kg이나 불렸는데 큰일이네. 할 수 없지.
각자 싸들고 가서 떡 해 먹어야지."
"14kg? 많이도 불렸네. 누가 다 먹어."
이맘때 엄마집에 가면 봄의 기운을 가득 담고 올라온
쑥으로 쑥떡을 해주셨는데, 이제는 엄마가 안 계시지.
2025년 5월 6일
엄마는 안 계시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엄마의 공간과 물건들.
엄마의 유품은 정리되었지만
버리지 못한 엄마의 물건들에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가 쓰시던 텅 빈 침대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을 텔레비전
엄마의 손길이 닿았을 화초들
엄마의 요강......
거실에 들어서면
엄마의 동선들이 눈에 선하다.
엄마의 굽어진 등, 걸음걸이, 엄마 머리모양, 엄마표정
흘러내릴 듯 말듯한 엄마의 바지춤,
식탁에 앉아 식사하시던 모습.
방안 가득히, 그리고 앞마당에도 엄마의 모습은 구석구석 남아있다.
"엄마"라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막내 왔어?"라고 웃으며 걸어오실 것만 같았다.
엄마 없이도 봄을 알리는 꽃나무들은
여전히 집 앞마당에 피어 나를 반겨 준다.
엄마가 가꾸던 텃밭의 밭고랑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엄마를 대신해 오빠들이 심어놓은 땅에는 야채들로 가득했다.
주인이 떠난 그 자리에는
여전히 주인의 시간들을 가득 담고 있는,
자식들을 대신해 엄마와 함께했을 모든 것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짙은 엄마의 그리움을 불러낸다.
하필 또 어버이날이라서 더욱더 생각났던
따뜻하고 예쁜 우리 엄마의 모습.
엄마가 살던 엄마의 집에는
여전히 틈도 없이 엄마로 가득 차 있었다.
◆ 어머니 ◆ -서울여대,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는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당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당신이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당신 걱정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전부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