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말 대신 이제는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만 전하려 합니다.
그리움이 눈물로 가득 메웠던 날들을 지나
이제는 늘 함께 내 곁에 머무는 당신.
나는 그렇게 엄마의 사랑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잔잔한 행복의 미소를 머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을 담아, 엄마가 평생을 가장 듣고 싶어 했을 말.
미안하다는 말대신 고맙다고
미안하다는 말대신 사랑한다고
진작 그렇게 말할걸.
엄마,
요즘 아이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요.
엄마라는 단어만 내뱉어도,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엄마가 그리워서 눈물이 앞서고 목이 메었는데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도 울지 않고
엄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초연해졌어요.
"엄마, 이제 그곳에서도 내가 안심되어 가는 거 맞지요?"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 앞에서
엄마를 보내낸 후에 아무래도 나는
이제부터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가 봐요.
아니,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시작일지도.
며칠 전에 향기 가득한 카네이션꽃 바구니를 받았어요.
엄마딸의 딸에게서.
정말 달달한 날이었어요.
내가 초등학교 때 카네이션꽃을 어버이날 아침에 달아주면
엄마는 그 꽃을 하루 종일 가슴에 달고 다니셨는데.
우리 막내가 달아줬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기억나요? 엄마?"
그때 그 기분이, 또 어떤 마음인지 이제는 충분히 알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조금 더 달달한 말들을 많이 해줄걸.
엄마가 되어보니
매 순간 자식들에게서 얻어지는 행복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하는 무수한 감정들
어쩌면 자식은 부모에게 찾아온 또 다른 스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슴도치 같은 엄마. 팔불출 엄마. 그래도 엄마니까 괜찮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 감정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아이들.
육아 지옥이었던, 그래서 매일 울고 싶었던 독박육아의 시간.
이제 그 힘듦이 추억으로 남아, 웃을 수 있을 만큼
지나버린 시간이 되었음을.
엄마도 그랬겠지.
키워내는 동안 수없는 힘듦이 있었고
죽고 싶을 만큼 버거웠을 테고.
그 시간이 지나 엄마도 우리들의 모습에서
어렸던 꼬마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겠지.
"언제 이렇게 컸나. 너희가 커가면 엄마는 늙어가는 것이지." 하며
애엄마가 되어 누워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지.
이 세상에서 엄마와 딸로서의 만남은 짧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엄마와 나는 이별하지 않지 않고 함께 살아갈 것이기에
이제 슬프지 않음을.....
엄마는
그리고 자식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늘 한결같음을.
늙은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언제나 엄마, 아빠.
어른이 다 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아이 같은 아들, 딸.
그렇게 부모자식 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만남"이라는 단어에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영원한 만남이라는 건 없고
영원한 이별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