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by 김성희

병실 불빛 아래, 딸이 누워 있다.
병원 침대 위에선 아직도 아이 같기만 한 내 딸.
벌써 스물다섯인데, 저렇게 아기 같아 보일 수가 있을까.

2주째 병실에 누워있는 너를 보며 네 곁에 있어 주는 것 말고는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파하는 너를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가 아팠더라면.

병실침대 네 옆에 잠시 누워 너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생각하며 한쪽 가슴이 참 많이도 아팠다.

'엄마도 내가 아프면 이런 마음이었겠지.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 했던 날

그 이후 의식이 없던 며칠, 엄마는 심장이 너무 아팠을 텐데.'

내 아이들이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온기였듯이

엄마도 그랬을 텐데. '엄마...... 보고 싶다.'


자식이 늙을 때 어머니가 자식에게

"얘아, 너는 늙지 마라. 내가 너를 대신해 늙겠다!"라고 말할 수 없고,

또 그 어머니가 늙을 때도 자식이

"어머님, 늙지 마십시오. 제가 대 신 늙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식이 병이 났을 때 어머니가

"얘아, 아프지 마라. 내가 너를 대신해 아프겠다!"라고 말할 수 없고,

또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도 자식이

"어머님, 아프지 마세요. 제가 대신 아프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식이 죽을 때 어머니가

"얘아, 죽지 마라. 내가 너를 대신해 죽겠다!"라고 말할 수 없고,

또 어머니가 죽을 때도 자식이

"어머님, 죽지 마세요.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출세간의 관점 '어머니와 자식사이에 생기는 세 가지 두려움]


2025.05.12.

기절해서 자고 있었던 밤.

아니 나는 정말 시체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2시.

꿈인가? 현실인가?

남편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그리고 딸아이의 울음소리.

각방을 쓰고 있기에 몰랐다.

후다닥 일어나 딸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

의자에 엎드려 고통을 호소하며 울고 있는 아이.

"왜 그래. 지혜야?"

"엄마,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질 못 하겠어."라고 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어서 나에게 폰을 했던 모양이다.

내 폰은 24시간 무음,

그리고 나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내가 폰을 받지 않아서 아빠에게 폰을 했던 것이다.

내가 딸아이 방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119가 도착해서

구급대원들이 현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니.

아이는 아픈 허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엎드린 고정 자세로 울고만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이동하시려면 움직이셔야 해요.

천천히 조금만 움직여서 이쪽(들것)으로 누우시면 되세요."

"아파서 못 움직이겠어요."

함부로 환자를 옮길 수 없어서 구급대원들도 서서 그저 딸아이가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겨우 겨우 울면서 들것으로 이동한 딸.

들것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너무 아파서 이동 시간만 30여분.

지켜보는 나도 구급 대원들도 안절부절.

그렇게 겨우 들것에 실려 딸은 아빠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그 시간 나는.

오전 8시 30분, 오늘은 강의 스케줄이 있다.

당장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

강의장으로 바로 갈 준비를 1시간여 만에 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딸이 아픈데 내가 이래도 되나?'

딸아이와 남편을 보내놓고 강의 준비를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죄책감 마저 들었다.

'애가 응급실로 실려가는 중인데 내가 이렇게 차분하게 이래도 되나.'

'나, 엄마가 맞는 거지?'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이 새벽에 강의를 취소할 수도 없고,

그나마 아빠가 곁에 있어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올해 나이 25살이 된 딸.

내 눈에 마냥 아기 같기만 하다.

응급실에 들러 둘만 남겨두고 그렇게 나는 강의장으로 향했다.

분명 내게 소중한 딸인데, 강의 장소로 이동하는 나를.

알 것 같다.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는 날

주인공은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보여줘야 했던.

비록 그 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식이 힘들고 아프면

부모는 늘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입원 2주째.

첫날, 움직일 수 없는 아이는 간병인이 있는 병실에 입원했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누워서 먹어야 하는 상황.

급하게 기저귀 외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병실에 넣어주고

강의장으로 갔던, 두 시간 강의 내내 아이의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엄마는 평생 문득문득 그날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파하셨겠지.

자식의 아픈 모습은 부모에게 더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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