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모녀처럼 보이는 다정한 두 사람이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몹시도 허리가 굽어 보이는 엄마를 부축하고 걸어가는 모습.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90도 가까이 허리가 굽어진 채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렇게 지내셨다.
어렴풋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허리는
엄마가 65세 이후가 되면서 급격이 허리가 주저앉았던 것 같다.
엄마의 삶이 모두 등에 올려져 있는 것만 같았다.
무겁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가 온통 엄마의 허리에 업혀 있었다.
자식들 다 키우고 그제야 몇 십 년의 흔적을
고스란히 허리를 통해 나타났다.
막내까지 시집보낸 후 편해져야 할 엄마의 삶은
굽어진 허리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으셨을 테지.
어쩌면 엄마는 마지막 자신의 일을 다해낼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리를 꼿꼿이 펴볼 시간도 없이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셨을 테지.
우리 8남매는 엄마의 등골을 휘게 만든 원인 제공자들이다.
자식은 때로 삶의 족쇄가 된다는 것을.
그 족쇄를 평생 벗어나지 못해,
삶을 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식에게 벗어나는 것일까.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컥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아파와 이내 눈물이 글썽여졌다.
흐려지는 눈으로 그들의 모습이 내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늙은 엄마를 모시고 저렇게 다정히 걸었던 적이 없었다.
나쁜 딸.
못된 딸.
이기적인 딸.
나는 도대체 엄마를 만나는 시간 동안 뭘 했던 것일까.
가끔씩 친정에 갔을 때조차 엄마를 챙기는 일은 늘 언니들의 몫이었다.
나보다 살갑게 챙겼던 언니들, 형부들.
그런데 나는?
나는 철이 없었다.
엄마가 되어 살아간 시간에서도 나는 참 철이 없던 딸이었구나.
언니들, 형부들은 엄마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나보다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엾은 한 인간의 모습이, 어머니로써의 모습이
나보다 더 아프고 아파했을 것이다.
철없는 나는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어떻게 자식을 낳아 키우는 내가,
이토록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죽어서도 나는 엄마의 사랑을 다 알지 못할 테지.
오늘도 뒤늦은 후회로 가득 차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의 알맹이를 우리에게 다 내어주고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남은 한 조각조차 더 주고 가고 싶었을 엄마의 사랑.
엄마의 미친 사랑이 우리를 살려냈고
또 오늘을 살아가게 합니다.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 한 사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허공을 향해 외치는 오직 한 사람.
그런 당신은 '엄마'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엄마는 나를 살려내는 내 마음의 뿌리 깊은 나무.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를 볼 때면 왜 그토록 당신이 더 그리워지는 것일까요.
내게도 엄마가 있었음을
이제는 과거가 되어 엄마가 있는 누군가의 삶이 부러운 날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의 뒷모습조차 그리워하는 딸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없이 미안해지는 마음을 끌어안고
엄마의 사진을 품에 안고
내가 눈으로 보아왔던 한 여자의 일생을 떠올리며
그저 가엾고 가여웠던 '엄마'라는 사람을
한 없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내 곁에 있을 때 보다 안 계신 지금에서야 더더욱.
오늘도 엄마로 살아내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