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신뢰 앞에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by 김성희

"진정해, 진정해 따뜻한 물 한모금 마셔."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어머니의 저 반응은 뭐지?'

당황과 어떤 위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 자식의 엄마였지? 내 엄마가 아니었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님 아들이 바람을 폈어요.

그런데 그년 언니들이라는 사람들이 집에 왔어요.

그년 대신해서 그년도 억울하다고

저 새끼가 자기 이혼남이라고 거짓말 하고 만났다고.

그 새끼는 그년이 해준 반찬들을 고스란히 냉장고에 넣어 놓고

잘 쳐먹고 있었구요.

허구헌날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 새끼 사람들 앞에서 자기 와이프라고 했데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 안계셨을때

본가까지 델고 와서 함께 잤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생각할 수록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너무 억울하고 미친짓거리를 한 그새끼가

어떤 인간인지 그의 부모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내가 이렇게 여길 쫒아온게 더 미친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님은 철저하게 그 자식의 엄마였다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부모도 당신자식이 먼저라는 것을


하지만 이 상황이면

적어도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끝까지 당신 자식을 두둔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여기까지 쫒아왔지?

똑같은 인간들이였구나.'


적어도 사람이라면

당신도 딸이 있는데

당신도 여자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이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힘들었겠구나' 라는 말 한마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내 가슴이 아무리 찢어져도

내 눈에서 눈물이 철철 넘쳐 흘러도

그녀는 오직 당신 아들 편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태도에

더 절망감을 느꼈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그 집안에 했던

모든 일들이 등신처럼 느껴졌다


이런 쓰레기같은 집안에

도대체 20년 넘게 뭘 하고 있었던건지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나는 또 그 아픈 순간에도

나 스스로를 탓해야 했다


'내 결혼생활의 모든 것들이

미친짓이였구나

정말 미친짓이였구나'


찾아간 것을 후회했다

내가 무슨 좋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이 밤중에 이곳까지 왔을까?

아무도 내편이라고는 없는

철저하게 며느리는 남이라서 배제된 시댁이라는 곳으로


나는 한 번더 확인했다

이 집안에서는 죽을때까지 철저히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사랑과 결혼했다

처음 그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그 꿈은

마지막 잡고 싶었던 양심마저

철저하게 무너지던 날

나는 한 사람에 대한

사람이라는 양심에 대한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모든 신뢰가 0.00001%의 기대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버렸다


인간에게 신뢰를 기대했던 내 탓일까?

양심도 없는 인간들에게 탓하기엔

나는 또 다시 나를 자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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