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T발놈'의 회로가 끊어졌다

by 눈무리

생각해보면 내 몸은 늘 정직하게 비명을 질러왔다. 분기별로 찾아오는 지독한 감기, 계절마다 눈을 뻑뻑하게 만드는 안구건조증,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장염까지. 나는 늘 이비인후과와 내과의 단골 손님이었다. 이런 '잔잔바리 나약함'은 내 일상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몸의 잔병치레와는 별개로, 내 정신만큼은 무쇠로 만든 엔진이라고 믿었다. 감정이 소용돌이쳐도 남들 앞에서는 절대 패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혼자 일기를 쓰며 다독이는 ‘비밀 테라피’가 내 엔진을 돌리는 유일한 냉각수였다.



나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T'의 회로로 세상을 살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슬퍼하기보다 해결책을 찾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데 몰두했다. 소위 말하는 'T발놈'스러운 냉정함이 내 자부심이자 생존 전략이었다.



심지어 연애조차 그랬다. 누군가를 만나다 맞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미련 없이 이별 버튼을 눌렀다. 눈물을 쏟는 대신 '다음 후보자를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듯 기계적으로 다음 만남을 준비했다.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종료일 뿐이었으니까. 감정은 늘 이성 뒤편에 줄을 서서 내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숨을 죽여야 하는 하인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회로가 툭— 하고 끊어졌다. 감정의 빗장이 풀린 수준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기분이다. 상담실 의자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내 몰골을 보며, 슬픔보다 먼저 찾아온 건 지독한 '당혹감'이었다.



'나 왜 이러지? 내 설계도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나에게 '약해짐'은 곧 시스템의 결함이자 '패배'였다. 나는 항상 '든든함', '독립적', '능숙한 앞가림' 같은 단어들로 내 성을 쌓아왔다. 눈물은 그 튼튼한 성벽에 금이 갔다는 증거 같아서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눈물 앞에서, 역설적이게도 나의 'T발놈 회로'가 마지막 작동을 시작했다. '이 오류를 수정하려면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결론. 그 차가운 이성이 나를 상담실로 떠밀었다.



몇 번의 상담 끝에 상담사가 건넨 말은 내가 예상한 '오류 수정법'이 아니었다.



"눈무리님은 약해진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강한 척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신 거예요. 완전히 방전된 겁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정말 강했던 게 아니라, 강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었다는 것을.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는 척,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척 연기하느라 내 마음의 배터리는 진작에 'Low'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믿어온 '강철 엔진'은 사실 거대한 가짜였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인정했다. 나는 약해진 게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평생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가둬두었던 나의 '약함'을 대면할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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