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완벽한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

by 눈무리

요즘 인스타그램은 내 일상의 화려한 예고편이자, 지인들과 연결된 거대한 거미줄이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순간, 대개는 긍정적이고 화사하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찰나를 골라 올리는 큐레이션 전시관. 그런 곳에 내 마음의 밑바닥이나 구구절절한 우울함을 배설하듯 적어 올리는 건 그 플랫폼의 생리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오버’였다.



블로그 역시 나에겐 이미 일상을 기록하는 공개 계정이 있다. 내 이름 석 자를 박아놓진 않았어도, 가끔씩 올라오는 내 얼굴 사진과 지인들의 댓글로 가득한 그곳은 사실상 완벽한 익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촘촘하게 연결된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나’ 혹은 ‘잘 지내는 나’를 연기해야만 했다. 그들의 걱정 섞인 참견이나 의아한 시선은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 '눈무리' 블로그는 결이 아예 다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첫 번째 비밀 기지다.



돌이켜보니 내 지난 SNS 역사는 늘 나를 타인의 시선에 ‘박제’하는 과정이었다. 실명과 학교를 공개했던 페이스북, 일촌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싸이월드, 그리고 지금의 인스타와 본계정 블로그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지인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100% 익명인 공간을 소유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플랫폼은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큐레이션의 연속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검열관을 늘 의식하며 글을 검열했다.



반면, 이곳은 내 본질적인 솔직함을 여과 없이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지인들이 내 글을 읽고 날 동정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같은 유치하지만 끈질긴 자기검열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기분. 이 낯선 자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톡 쏘는 콜라를 마셔본 아이의 마음처럼 지독하게 달콤하고 짜릿하다.



아무도 나의 본체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안도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무거운 가면을 벗어 던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묘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몰랐으면 좋겠으면서도, 나랑 비슷한 결을 가진 이름 모를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격하게 공감해 주길 바란다. 익명 뒤에 숨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은 이 모순적인 ‘변태 관종’의 마음이라니.



결국 이 브런치는 나를 지탱하는 가장 안전한 도피처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내밀한 통로가 됐다. 나의 찌질함이 익명의 그늘 아래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그 기묘한 가능성을 즐겨보려 한다.



이 공간이 유지되는 한, 나는 계속해서 안전하게 무너지고, 다시 솔직하게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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