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남자로 태어났어야 할 사주

by 눈무리

신년이기도 하고, 올해는 제발 뭐라도 좀 풀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신점을 보러 갔다. 강남 논현동의 낡은 주택가 건물에 이런 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읊조리자, 무속인은 잠시 접신의 시간을 갖더니 첫마디를 툭 던졌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네. 장군감이야.”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신령님이 인간에게 점지해주는 세 가지 운—관운(직장), 재운(돈), 그리고 인연운(결혼)—중에서 나는 두 개는 넘치게 받았는데 하나가 텅 비었다고 했다. 이른바 '공마살'. 내 곁에 늘 빈자리(공망)가 생기는 살이란다.



누구에게 의지해서 먹고살 팔자가 아니라, 내가 깃발 들고 앞장서서 내 인생 개척해야 하는 장군 팔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결혼은 마흔한 살 넘어서나 해야 겨우 인연이 닿을 텐데, 그전까지 아무나 만났다가는 하자 있는 놈을 만나거나 제 발로 '갔다 돌아올' 운명이란다.



근엄하고 진지한 신점 분위기 속에서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빵 터져버렸다.



“아, 그건 좀 싫은데요?ㅋㅋ”



내 반응에 무속인은 그럼 신중하게 운을 기다리라며, 정 급해서 일찍 갔다 오면 그게 다 ‘액땜’이 될 거라는 기상천외한 위로를 건넸다.



그녀는 불경을 외우듯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장군감이네... 남자였어야 해...”



이미 여자로 태어난 걸 어쩌겠나.



복채를 내고 나오며 생각했다. 관운과 재력, 인생에서 꽤나 중요한 두 가지를 가졌으니 사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는 게 아니라 반이나 차 있는 셈이니까. 평소에도 장군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고 있었는데, 전문가(?)에게 ‘공인 장군’ 마크를 획득한 기분이라 오히려 개운했다.



그래, 올해도 내 인생 내가 개척하며 장군처럼 씩씩하게 살아보라는 계시로 알아듣기로 했다.



인연운 따위 좀 없으면 어떤가. 나에겐 내가 직접 벌어먹고 살 ‘장군의 기개’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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