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없는 열정과 선의 없는 이성의 만남
최근에 영포티라는 단어가 유명해지며 다양한 연령대와 분야의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종류의 담론이 생겨나고 있다. 4050 세대를 욕하는 영포티 담론이 유명해지기 이전에는 2030을 욕하는 MZ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오늘은 이 두 종류의 단어를 살펴보며 우리가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상대적으로 먼저 유행한 MZ라는 단어는 M세대(밀레니얼)와 Z세대를 묶어 부르는 의미로 1980년대생부터 2012년생을 전부 묶은 단어이다. 글이 쓰인 시점 기준으로 14세부터 46세까지 포함하는, 엄청나게 포괄적인 단어이다. 30년의 차이를 한 세대로 묶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대체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아래에서 성장해 이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대이며 본래 학술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범용적인 단어는 아니라고 한다.
MZ가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은 '요즘 것들'에 가깝게 쓰이고 있다. 요즘 것들이란 원하는 건 많지만 게으르고, 비판하는 건 많지만 생각은 비현실적인, 기원전 2000년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젊은이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비판이 인터넷 공간과 언론을 포함해 많은 매체에서 제기되었다. MZ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문해력이 부족한 세대, 조금 힘들다고 징징대는 세대, SNS로부터 온갖 나쁜 버릇을 배운 세대, MZ조폭 세대, 우경화/극우화된 세대, 하고 싶은 말 직설적으로 다 하는 세대'
MZ라는 단어의 유행은 분석할 것이 많지 않다. 시대를 막론하고 내려오던 '요즘 것들은 편하게 살면서 원하는 것만 많아' 느낌의 잔소리다. MZ는 선의 없는 이성, 행동 없는 염세주의이다.
이처럼 간단한 MZ 담론과 다르게 영포티 담론은 조금 더 깊은 차원을 가지고 있다.
영포티라는 단어는 초기에 '젊게 사는 사십 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때는 멸칭보다는 패션이나 유행에 신경 쓰는 40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현재는 '자신이 (티를 내건 안 내건) 젊다고 혹은 잘났다고 착각하는 철없는 중년'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신이 유행하는 신발을 사고 아이폰을 쓰면 젊어 보이거나, 더 심하면 유행에 신경 쓰지 않는 젊은이들보다 자신이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영포티에 대한 비판은 보통 다음과 같다.
'이중잣대(내로남불), 젊은 여성에 대한 집착, 자기 객관화 부족, 고도성장의 시대에 꿀빤 세대, 꼰대성향, 과거부터 이어져 온 세대 갈라 치기 정황들'
위 사진에서 보면 영포티에 대한 비판은 정치, 커뮤니티, 소비, 추파, 소비문화 등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패션, 소비습관과 같은 겉모습 때문에 영포티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피상적인 분석이다. 이러한 요소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젊은이들 조차 영포티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잘 모른다. 필자는 영포티 비판의 핵심을 아래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필자는 젊은이들이 영포티에게 가지는 거부감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영포티 비판에 대해 반박하는 하나의 영상과, 해당 영상에 대한 한 커뮤니티의 댓글이 영포티 담론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이쯤에서 위 유튜버가 자신들을 비판하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가 XX 100배는 더 했어'라고 했을 때 무슨 반응을 기대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들은 아마도 젊은 세대가
'와 우리보다 100배 더 많이 했다고? 정말 부럽다!!'
'역시 영포티는 트렌디해. 우리가 감히 비판할 수 없어.'
'아니 저렇게 XX를 많이 했다고? 질투가 나서 버틸 수가 없는걸?'
라고 반응하길 바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승리자이자 알파메일이고, 젊은 세대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패배자들이길 바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영포티들은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넘어, 자신이 포함된 집단과 세대가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을 주도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속한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당연히 주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이들은 대한민국을 주도한 세대였고, 저출산으로 인해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인터넷과 기술의 보급 정중앙에 살아서 오프라인 세계뿐만 아니라 싸이월드, 초창기 dc인사이드와 같은 온라인 세계 또한 선도하였다. 그것이 이들의 성장 배경과 현재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다. 586 세대의 생존 공식은 더 이상 현대에 사용할 수 없다. 현대는 더 이상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쟁취하는 시대가 아니다. 현대는 갭투자나 대출을 통해 집을 사고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현대는 평생을 저축만 하는 돈의 크기보다 부동산이 오른 가격이 더 큰 세대이다. 현대는 노동의 가치가 가장 위협받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온 2030들은 아무런 근거와 능력도 없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영포티들이 꼴사납고 혐오스러워 보일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 비대가 트렌디한 패션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 부분이 거부감을 거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유행과 트렌드는 젊은 세대의 것이다. 영포티들이 아무리 열심히 옷을 사고 아이폰을 써도 트렌디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유행을 따라도 멋있지 않으며, 유행을 주도할 센스는 더더욱 없다. 유행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쫓는 아저씨에게서는 어른 특유의 진중함과 어른스러움, 지혜가 보이지 않고 '철없는 애어른'의 면모만이 보인다. 이것이 '지성 없는 열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영포티 비판의 핵심이 유행, 문화와 같은 피상적인 요소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당연히) 자신일 것이라 믿는 그 '자의식 비대'임을 살펴보았다. 이 글은 4050 세대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아님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586 세대의 아버지를 존경하며, 앞선 세대의 존경받을 어른들이 무수한 야근과 위험한 업무, 희생을 통해 현세대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세대의 공통점을 찾아 그들을 전부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본 글을 적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이 있듯이, '영포티'라는 말로 정의되는 몇몇 사람들이 한 세대의 존경스러운 어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상을 막기 위해 미꾸라지와 메기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본인이 영포티인지 어른인지 반성할 수 있도록 이번 글을 적어보았다.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