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야기의 원형: 남자의 인생

배가본드, 빈란드 사가, 베르세르크

by 고스만

필자의 어린 시절 명절마다 친척들이 모이면 어른들은 거실에 모여 고스톱을 치고 어린이들은 세뱃돈을 모아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20권 정도 빌려 안방에서 책을 돌려 읽었다. 여러 주류 만화를 1년에 2번씩 집중해서 읽으며 만화는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만화를 읽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만화는 아주 순수하게 재밌기 때문에 생산되고 재밌기 때문에 소비된다. 하지만 모든 만화가 같은 종류의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는 유흥이지만, 몇몇 만화는 진지하게 인생을 바꿀 힘이 있다. 오늘 소개할 만화 3종이 바로 그러한 만화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배가본드, 빈란드 사가, 베르세르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3인 3기.jpg 세 만화의 주인공들(왼쪽부터 미야모토 무사시, 토르핀 카를세프니, 가츠)과 그들의 무기. 모두 검이라는 점, 혹은 검이었다는 점이 재밌다.


이 세 만화의 공통점을 보자면 명작이라는 것 이외에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있으며,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있어 스토리의 전개와 구조가 묘하게 닮아 있다(주인공이 2명인 점 등). 인생이라는 것이 삶의 목표일 수도, 삶을 살아가는 태도일 수도, 남자다움의 본질일 수도 있지만 세 만화 모두 무엇인가의 질문을 주고 무엇인가의 해답을 주며 주인공과 함께 독자들이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따라서 본인이 남자라면, 이 세 작품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배가본드

배가본드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천하무적이란 무엇인가?'


배가본드의 이야기는 2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미야모토 무사시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검사이다. 신멘 무니사이라는 강한 검사의 아들이며 검과 힘에 재능을 타고나서 중학생정도의 나이에 나무 표지판으로 성인 사무라이를 때려죽인 경험이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 시절 무사시에게 천하무적이란 '나보다 강한 사람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강한 자들과 싸우고 강한 자들을 죽이는 것. 세상의 모든 강자를 죽이면 나 자신이 천하무적이 될 것이다. 검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일 뿐이고 힘은 강할수록 좋은 것이다. 천하무적이 되어 내 인생의 의미를 찾자! 이것이 초창기 무사시다.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사사키 코지로이다. 코지로는 농아로 태어나 귀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코지로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검을 껴안고 잘 정도로 검을 사랑하며, 검에게도 사랑받는다고 한다. 마치 검이 애착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과 함께 하고 검을 뺏으면 울고, 돌려주면 웃는 갓난아기였다. 이후 자라며 사사키 코지로와 싸우는 모든 사람은 그를 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 평가한다. 온몸이, 온 인생이 검을 휘두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 검과 하나 된 사람이 사사키 코지로이다. 코지로에게 천하무적이란 의미 없는 말이다. 검을 사랑하기에 휘둘렀고, 휘둘렀기에 사람이 죽었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어 검을 휘두르지는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코지로이다.


무사시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무사시는 다양한 강자들과 싸우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성장한다. 한 번은 야규 세키슈사이라는, 한때 최강의 검이었지만 이제 다 늙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뒷방 할아버지를 만난다. 이 할아버지를 죽여 천하무적의 이름을 갖고 싶었던 무사시는 진검을 든 상태로 손긁개를 든 할아버지에게 지는 기묘한 경험을 겪는다. 야규 세키슈사이에게 무릎을 꿇고 패배를 인정하며 천하무적의 의미와 검의 의미를 묻는 무사시에게 세키슈사이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천하무적이란, 한낱 말일뿐이야'

'나의 검은 천지와 하나. 따라서 검은 필요 없는 것이다.'


무사시가 천하무적을 찾고 추구하는 것은 무사시에게 인생의 목표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무사시와 코지로처럼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사시는 천하무적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한낱 한시 모두 천하무적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하며 산다. 이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코지로는 검을 추구하는 행위, 그 행위만을 위해 살며 그 결과가 천하무적이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천하무적이 되기 위해 베는 삶과, 베다 보니 천하무적이 되는 삶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인생의 목표를 위해 살 수 있을 것인가? 부귀영화? 부귀영화를 위해 사는 것인가 살다 보니 부귀영화가 찾아오는 것인가? 이것이 배가본드가 주는 질문이다.


배가본드에 대한 오디오북 수준의 설명회를 즐기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추천한다. 하지만 역시 직접 읽는 것을 가장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DXH1FBd8I


빈란드 사가

빈란드 사가의 질문도 명확하다. 진정한 전사란 무엇인가?


빈란드 사가 또한 2명의 주인공의 인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토르핀 카를세프니이다. 아셰라드라는 바이킹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아셰라드 아래로 들어가 바이킹의 삶을 배우는 기묘한 유년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아버지의 복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무사시와 닮은 면이 있다. 이 시절 토르핀은 전사의 의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토르핀은 복수의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인생의 의미를 잃는다. 그러다 아버지를 알던 인물들에게 아버지가 '진정한 전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전사가 무엇인지 아는 인물은 없었다. 이는 아주 기묘한 이야기인데, 토르핀의 아버지가 진정한 전사가 되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토르핀은 진정한 전사가 되는 삶을 산다.


두 번째 주인공은 크누트 왕이다. 크누트 왕은 덴마크의 왕인 스벤 왕의 둘째 아들로 소심하고 유약한 심성을 타고났다. 심지어 얼굴도 예쁘장해서 가정적인 여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스벤 왕에게 크누트 왕자는 장남이 유년 시절에 사고사 할 경우에 대비한 예비 부품이다. 이야기가 진행된 시점에서 장남은 이미 성장했기 때문에, 스벤 왕은 바이킹을 이용해 크누트 왕자를 죽이려 하며, 크누트 왕자도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시점이다. 하지만 바이킹 중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크누트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크누트에게 진정한 적은 신이다. 신은 인간을 저열하고 욕심 많고 나눌 줄 모르는 생명으로 창조하고 자연에 내던졌다. 하지만 자연은 서로에게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는 존재들로 가득 찼다. 오직 인간만이 주고받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 속에 내던져진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은 사랑을 모른다.

크누트 왕자는 이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 그는 지상에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힘을 모아 국가를 통일해 법과 질서를 안착시켜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려 한다. 크누트 왕자의 적은 신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진정한 전사가 무엇인지 밝혀지는데, 빈란드 사가에서 진정한 전사란 '적이 없는 사람'이다. 크누트 왕자가 힘으로서 적을 없앤다면, 진정한 전사는 애초에 적이 되지 않는 삶인 것이다. 인간이 모두 화합하고 잘 살 수 있다는, 어느 정도는 머리가 꽃밭인 생각이 진정한 전사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전사에게는 검이 필요 없다. 검으로 벨 적이 없기 때문이다(검이 필요 없어지는 면은 배가본드와 비슷한 면이 있어 재밌다). 진정한 전사인 토르핀에게 적은 없다.


참고로 토르핀 카를세프니는 실제로 아이슬란드 태생 스칸디나비아의 초기 식민 원정대 지도자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원정을 실패했다는 내용만 있어 바이킹이었던 유년 시절과 진정한 전사, 그리고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작가의 창작이다.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베르세르크

베르세르크의 중심 질문은 '인생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이다.


베르세르크의 이야기 또한 2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가츠이다. 가츠는 버려진 아이로 유년시절 용병단에 영입되어 위 두 이야기의 주인공과 같이 폭력적이고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가츠에게 삶이란 죽이고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다 그리피스를 만나며 가츠는 2번의 전환을 맞게 된다.


두 번째 주인공은 그리피스이다. 그리피스는 한마디로 '완벽한 남자 친구'이다. 잘생겼고 전투도 잘하며 전략도 잘 짜고 사교성도 좋으며 리더십도 있고 야망도 크다. 그는 '매의 단'이라는 용병단의 단장으로 불리한 전장에 들어가 기적 같은 승리를 매번 쟁취하는 사람이다. 질투를 내기에는 차이가 너무 커서 질투할 수도 없는 그리피스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숭배하거나, 좋아하거나, 죽이려 한다. 이러한 그리피스의 목표는 한 가지이다. 자신의 나라를 갖는 것. 천민 출신으로 단 하나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난 그가 모든 것을 갖기 위해 어떠한 일이든 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일이 자신을 파는 것이든, 동료를 배신하는 것이든,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적과 아군의 꿈을 장작으로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가츠는 전장에서 그리피스의 적으로 만난다. 그리피스는 가츠가 마음에 들었고, 1대 1 결투에서 가츠를 이겨 그를 매의 단 돌격대장으로 임명한다. 이때부터 가츠의 인생은 '검을 휘두르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이 첫 번째 전환이다. 검을 통해 가츠는 용병단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의미를 찾는다.


어느 날 가츠는 그리피스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다 그리피스가 하는 말을 엿듣게 된다. 그러다 그리피스가 생각하는 인생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츠의 두 번째 전환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이다. 꿈에 지탱하고, 꿈에 고뇌하고, 꿈으로 살아가고, 꿈 때문에 죽는 것이 인생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그런 삶은 전 견딜 수 없습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란 대등한 자이다. 자신의 꿈을 관철하기 위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도 따르지 않는, 심지어 자신과 꿈이 충돌해도 내 꿈을 밟고 지나갈 수 있는 자가 친구이다.

가츠는 그리피스의 친구가 되려 한다. 친구가 되기 위해 그리피스와 동등한 자가 되려 한다.


이 만화를 읽는 대부분의 인물은 가츠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것이 타고나 모든 것을 쟁취하는 그리피스와 가진 것도 없고 타고난 것도 없어서 모든 걸 몸으로 때우는 가츠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재능을 타고난 자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베르세르크이다.


결론


이처럼 남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의 구조는 보통 두 남자와 그 사이의 공통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두 남자의 길이 정반대일 수도 있고, 다른 시작점에서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으며, 두 길의 결과가 서로를 보강해 줄 수도 있다. 이처럼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드는 명작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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