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내 인생의 한 방이 될까?

by 작꾸천치

얼떨결에 시작된 회계사 공부. 기본 지식도 없는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다. 아무것도 없던 내 인생을 단번에 바꿔줄 한방이 되기를 기대하며 시작했기만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다. 명문대도 아닌 우리가 성공할 길은 오직 전문직, 고시 패시만이 살길이라고 서로를 다독여 주면서. 하루에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오직 회계사 시험공부에만 전념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같이 갔던 오락실. 그 당시 유행이었던 오락실 게임이 철권이었다. “아라차차차차, 슈라겐”


20250223221818.png 오락실 철권 게임. 출처: 구글


공부를 하러 만나는 건지, 철권을 하러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그냥 열심히 했다. 공부도 오락도. 100원짜리 동전을 옆에 쌓아두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목숨을 걸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 풀이라도 하듯이.


내가 주로 하던 캐릭터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폴이었다. 게임 내내 쳐 맞다가, 한두 번 제대로 공격을 하면 상대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안겨 줄 수 있던 캐릭터. 게임 중 나의 무시무시한 10단 콤보를 성공하면, 상대방이 저 먼 곳으로 나가떨어지거나, 하늘 높이 치솟을 때면 마치 회계사 시험을 패스한 사람 마냥 목이 터져라 오락실이 떠나가듯이 소리를 지르고, 게임에서 이길 때면 마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한없이 행복했던, 열받은 친구의 얼굴을 볼 때면 기쁨 두 배 행복 두 배.




이제 회계사 1차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한다. 근데 요즘 친구 녀석 얼굴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지. 지친 걸까 힘든 일이 있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얘기하고 같이 고민을 해 왔는데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심각한 얼굴을 하며 얘기한다.


“실은 말이야. 나 지난달에 회계사 시험 포기 하기로 했어. 미안해. 미리 얘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열심히 해서 도저히 얘기를 못하겠더라고”

"뭐 뭐라고? 농담하지 말고"

"농담 아니고 진짜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고, 너무 힘들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해서 포기하고 다른 걸 하기로 했어"

충격이었다. 회계사라는 직접에 대해 나름 조사는 했지만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회계사 시험 준비 하기로 한 이유의 70% 이상이 너 때문인데. 지금 와서 안 한다고. 난 어쩌고? 그러한 친구의 무책임에 너무 화가 났다. 또 이렇게 꼬이는 건가.




“포기했으면 미리 얘기하지. 지난 한 달 학원하고 독서실은 왜 계속 온 거야?”

친구가 말을 못 한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뭔데 얘기해. 공부 포기 했다고 얘기하는 마당에 못 할 얘기가 뭐가 있어?”

“실은…”

내가 제일 싫은 게 밥통이다. 자꾸 뜸 들이니까. 굼뜨니까. 설마 했는데

“오락실에서 너랑 철권 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

아씨 말이라도 못 하면

“회계사 시험 포기 했단 말은 1차 시험 끝나고 끝나고 하려고 했어.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면 말을 말던가. 얘기해 놓고, 남의 속 다 뒤집어 놓고. 뭐야

“그럼 학원은 그렇다 치고, 한 달 동안 도서관에서 뭐 한 거야 엄청 열심히 하던데?”




가방에서 소설책과 만화책을 꺼내 보여 준다. 아 진짜.

너 때문에 나 회계사 공부 시작한 거고, 지난 8개월 가까이 머리 쥐어뜯으며 회계사 공부했는데. 학교 수업시간에도 맨 뒤에 자리를 잡아 회계사 공부를 하고, 그걸 또 여러 교수님에게 들켜서, 무역학과 다니는 놈이 회계사 공부 한다고 그렇게 매 수업 시간마다 갈굼을 당했는데, 그것을 버티고 버텼는데. 이게 뭐람.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그냥 너 꺼져버려. 낼부터 나오지 말고 집에서 만화책이나 실컷 봐”




다음날부터 친구가 정말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뭐지… 하루이틀 지나면 나한테 미안해서라도 나올 줄 알았다. 고시 준비는 시간과 나 자신의 싸움이기에 가능하면 하루하루의 루틴에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데, 잠자는 시간 이외에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친구가 없으니 허전하다. 마음이 쓰인다. 집중이 안된다.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뭐 하냐?

"......" 대답이 없다.

"뭐 하냐고? 배신자야" 대답이 없다.

"만화책 보냐?

"응"

"재미있냐? 아주 그냥 살판났구먼”

좋단다. 내가 화나서 삐져서 당분간 연락 안 올 줄 알았단다.




“야 내가…. 네 얘기 듣고 지난 며칠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나도 회계사 시험 떼려 칠라고.”


1.png


당장 달려온단다. 나는 와서 나에게 위로를 해 주거나, 자기처럼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하라거나 뭐 친구로서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다. 근데 시험 포기한 기념으로 오락실 가자는 게 말이 되냐. 오늘 하루는 자기가 게임비 다 낸단다. 그 걸 또 좋아하며 따라가는 난 뭐냐 대체.


친구가 바꾼 동전을 쌓아두고, 모든 것을 잊은 채 하루 종일 오락만 했다. 우린 친구니까.

뭔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도 엄청 스트레스받고 힘들었었다. 그 친구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은 여러 번 그만하겠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친구야 먼저 총대 매고 얘기 꺼내 줘서 고맙다.

2.png


회계사를 포기하고 마음 한 켠에 큰 짐은 덜었으나, 또 다른 큰 결단의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sticker sticker


keyword
이전 05화복학, 열등감, 새로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