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군대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매번 반복되는 월드컵 16강 경우의 수도 아니고. 삼수를 하기 위해 1년 휴학을 해야 하는지, 1학기 마치고 휴학을 해야 하는지, 삼수에 실패하면 바로 군대, 만약에 성공하면 바로 휴학계를 내야 하나, 1학기를 마치고, 아님 1학년을 마치고... 복잡하다. 경우의 수가 많다.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삼수를 하지 않고, 택한 건 ROTC였다. 사병 대신 장교로 군 복무를 하게 되면 그나마 실패로 거듭된 인생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작은 바램으로.
그 당시 ROTC 합격 여부는 총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는 입학성적과 학점 2차는 체력장 3차는 신원조회. 1차, 2차를 통하여 많은 친구들이 떨어졌고, 이제 남은 건 마지막 3차 신원조회. 여기에서 아무도 문제가 없으면 1차 2차 점수를 합하여 최종 합격자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80명 뽑는데, 85명이 3차에 남았으니 떨어지는 사람은 5명이다. 그 당시 난 입학성적과 학점 (방황은 했지만 학점은 좋았다), 그리고 체력장에서 좋은 점수를 가지고 있었기에 최종 심사에서 떨어질 확률은 0%에 가까웠고, 뭐 제복 입고 캠퍼스에 동기들과 줄 맞추어 행진하고, 뭐 쩌렁쩌렁 필승 또는 충성을 수시로 외쳐대는 뭐 그런 상상을 했다.
마침내 12월. 발표날짜가 가까워지면서 긴장되거나 전혀 떨리지 않았다. 당연히 될 거니까. 이번엔 확실하니까. 발표당일 도서관 앞에 대자보가 붙었다. 같이 지원한 친구들도 우리 모두 합격할 것이라는 것에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축배를 들기 위해 달려갔다.
어디 보자.
김 00, 친구가 있다. 남 00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박 00 역시 있다…. 하하하… 인생이 그런 거지.. 친구들이 모두 합격을 했기에, 내 이름이 없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감히 상상초자 하지 못했다. 그 들 보다 내가 성적이 좋았으니까. 하하하하. 나도 뭐. 그때만큼은 자신감 뿜뿜뿜! 이제 내 차례. 내려갈 갈 때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고. 난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어 근데 그다음 이름이, 유 00. 유 씨다.
어?
난 안 씨인데
가만있자.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분명 유 씨 앞에 안 씨가 있어야 하는데, 그 사이 내 성이 바뀌었을 리는 없고, 세종 대왕님이 틀렸을 리는 만무하고…..
연신 반복했다. 당황한 친구들도 같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아 씨. 노래 부르냐? 나는 속이 타는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꼴이라니. 근데 나도 따라 부르고 있다. 그 만큼 간절했기에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내 이름이 없다. 없다. 진짜 없다. 아무리 눈을 씻고, 코를 씻고, 입을 씻고, 이마를 씻고 봐도 없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뭔가 실수가 있겠거니 하고 학군단 본부에 갔다. 혹시 이름이 빠진 게 아닌지. 왜? 대자보에 이름을 손으로 쓸 때였으니.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내 이름이 또 발음하기 어렵고, 쓰기가 좀 어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바늘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이름이 뭔가요?”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질문하나로 내가 위로를 받을 줄이야. 이런 실수가 여러 번 있었다는 반증이니까.
“안 00입니다”
“보자…. 합격생 이름에는 없네요.” 그러니까 달려온 거잖아. 그니까 왜 없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고
“1차 2차 점수는 거의 상당히 좋은데, 왜 합격자 명단에는 없는 거지?” 아 젠장. 저기요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게 궁금해서 달려온 건데.
“잠시만요. 제가 좀 더 확인을 해 볼게요”
여기저기 왔다 하시며 2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좀 높아 보이시는 분이 오셨다. 뭐지?
“안 00 씨?" 내 성이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해 잠시 안도하며
"네 맞습니다."
"점수는 합격하기에 충분한데,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있었네.”
“네? 신원 조회요. 저희 걸릴게 아무것도 없는데,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형도 없고, 누나도 없고, 동생도 없고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그냥 지극히 평범한 집인데. 무서운 데 갔다 오신 분도 없고”
“혹시 백 00이라는 분이 할머님 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친할머니십니다.”
갑자기 할머니는 왜 할머니가 무슨 사고를 치셨나. 그 연세에. 나 모르는 사이에 무서운 곳이라도 다녀오신 건가. 아 도대체 뭐야? 속이 탄다.
누가 봐도 아주 오래된 신문기사에서 복사를 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신다.
“본부에서 확인을 해 보니, 할머니 동생의 따님이 1987 년도에 월북을 하셨네. 여기 신문에 기사도 났네, 몰랐어?”
"뭐 뭐요? 월북이라고요?"
내 귀를 의심했다. TV에서만 듣던 월북? 월북이 그렇게 쉬운 거였어? 그냥 뭐 맘먹으면 그냥 이웃집 담 넘어가듯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갈 수 있는 거였어? 그것도 신문에 났다고. 아무것도 없던 우리 가문의 영광이긴 한데, 참. 어이도 없었고, 아이도 없었고, 싹 다 없었다.
할머니 동생분이 계셨어? 할머니 동생분의 따님은 또 누구고?
아 뭐 이렇게 되는 게 하나도 없냐, 뭘 해도 안되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뭐 무슨 사업가와 만나서 결혼하고, 일본으로 갔다가 거기서 월북을 했다고.
왜 그걸 인제 얘기하는 거냐고.
되지도 않을 걸 가지고 1년 가까이 ROTC를 해 보겠다고 한 난 뭐냐고.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억울한 실패다.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기인한 것이 아닌. 내가 원인이 아닌. 너무 억울했다. 언제까지 이 버러지 같은 일들로 피해를 봐야 하는 건지. 그 때 참 많이 울었다. 억울해서. 너무나 억울 했다.
앞으로 선택지는 하나다. 육군에 끌려가든가, 아님 친구들처럼 해군이나 공군 시험을 보든가. 다른 선택지는 답안지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