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 실패 이전에 나에겐 2번의 억울한 실패가 있었다. 내가 모자라서, 부족해서, 준비가 되지 않아서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상황으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그것으로 소박했지만, 간절했던 꿈들이 좌절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 억울한 실패는 대학입시다. 고등학교 내내 사당오락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꽤 나름 공부도 잘했고, 반장도 여러 번 했다. 어머니가 육성회 이사도 했으니 담임 선생님들의 이쁨도 많이 받았고, 마지막 학력고사 2-3달 전엔 마지막 피치를 올려, 사소할 수도 있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그 몇 점을 올리기 위해서 그 당시 엄격했던, 실제로는 불법이었던, 옆반 영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족집게 과외도 받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부모님의 유일한 희망이자 기대주였던, 그 당시 흔하지 않은 무남독녀 외동아들이 부모님께 큰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희망과 내가 꿈꾸던 대학의 학과에 갈 수 있아는 부푼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고, 선지원 후시험이었던 그 당시 내가 꿈꾸던 대학에 지원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신도 1등급이었고, 학력고사 전 마지막으로 치렀던 4번의 모의고사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마지막 학력고사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마지막 몇 개월인데, 자포자기하며, 방황을 했다. 내가 원인이 아닌 외부의 사건에 휘말려 내가 꿈꾸던 학교에 지원을 하지 못했기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마지막 학력고사 시대였고, 다음 해부터는 수능으로 바뀌는 민감한 시기 여서 그런지 몰라도, 마지막 학력고사 시험이 너무나 쉽게 나왔다. 다들 점수가 너무나 잘 나왔고, 상향 평준화가 되었지만,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는 오히려 시험을 망쳐, 심지어 안전빵이라고 하향 지원한 학교에서 물을 먹고 만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대학 입시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듯이,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바로 재수 준비를 하기 위해 그 당시 최고의 재수 전문 학원이었던 종로학원에 등록을 함과 동시에, 부모님의 권유로 후기 대학에 원서를 집어넣었다. 어느 학교든 합격하는 걸 보고 싶어 하셔서. 그 당시 대학교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졌었고, 전기와 후기를 동시에 받는 학교, 또는 전기만 후기만 받는 학교로 나누어졌었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후기 때 지원할 학교 수가 현저히 적었고, 후기 때 경쟁은 너무나도 치열했다. 후기로 서울 안에 있는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차라리 재수를 택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후기 대학에 합격을 했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기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다닐 학교도 아니었고, 더더욱 내가 꿈꾸던, 목표로 했던 곳이 아니기에. 등록을 하지 않고, 재수를 하려고 했으나, 고등학교 시절에 한 고생을 다시 한번 해야 하는 것에 부모님이 마음이 쓰이셨는지, 우선 등록이나 해 두고, 좀 쉬면서 1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하고 재수하는 것을 고민해 보라고 하여 우선 학교 등록을 했다. 그다음에 벌어질 펼쳐질 일은 상상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고등학교 내내, 집, 학교, 독서실만 다람쥐 챗 바퀴 돌듯 생활했던 나에게는 대학교 생활은 완전 딴 세상이었다. 신입생 환영회, MT, 각종 미팅, 학교 축제, 여유로운 수업. 이러한 대학교 낭만으로 인해, 재수에 대한 생각은 온 데 간데없고, 각 종 동아리 활동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자유, 그리고 남자들의 필수 과목이었던 당구의 매력에 빠졌다.
학기 초 당구를 처음 접한 나는, 같은 학번이었던 이미 한 수 위의 재수/삼수생들에게 매번 졌다. 아니 이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당구만 친 건가. 게임비도 정말 많이 냈다. 짜장면 값은 덤으로. 이미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적지 않은 돈을 게임비로 날리고, 또 돈내기를 통해 잃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많이 놀라셨을 거다. 1학기 내내 지속된 수업교제 구매와 그 금액으로 인해. 후에 들은 얘기 지만 내가 재수는 관심 없고, 맘 잡고 공부하는 줄 생각하셨다고 한다. 당구비 충당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이러한 수모를 갚고자, 2달간의 여름 방학 동안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움에 배움을 거듭하고, 동네 아저씨들의 커피 심부름을 도 맡아 가며 기술들을 전수받고, 하늘에서 그러한 노력을 가상히 여기셨는지 방학 전 50에서 80 사이었던 나의 실력이 방학 후 무려 300이 되었다. 마세이까지 자유자재로 찍는.
나의 당구 실력에 대한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한 후 나는 자랑스럽게 허풍을 좀 섞어가며, 방학 때 진짜 열심히 해서 150으로 올렸다고 말하니, 주위에서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또다시 나의 눈먼 돈을 따기 위해 줄 서서 나에게 도전을 하던 것이 아닌가. 너무나 힘들었다.

300인 내가 150인 것처럼 흉내 내고, 가끔 아니 자주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의로 실수를 해야 했기에 너무 힘들었다. 아니 너무 즐거웠다. 나의 목표는 그들의 실력이 결코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게임 막판에 나에게 운이 좋아서, 그 당시 유행어로 뽀록으로 이겼다고 연기를 해야 했고, 결코 그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조작 아닌 조작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그들이 그들의 실력이 아닌 그들의 운을 탓하며, 계속 도전을 할 테고, 그래야 1학기 때 잃어버린 나의 용돈들을 회수할 수 있으니까. 나한테 배우의 피가 흐르는 줄 알았다. 이게 웬 떡이냐. 뭐 알다마, 쿠션, 줏빵 종류에 상관없이 거의 당구는 평정을 했고, 통쾌한 복수를 통해 적지 않은 용돈을 당구로 벌었었다. 너무나 좋았다. 이제 뭔가 꼬인 인생이 풀리는 건가. 시작이 미약했으니, 앞으로 잘되는 일만 남은 것처럼. 그런 줄 알았다. 1학년 말 고등학교 친구들의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 당시 내가 시험을 볼 때가 마지막 학력고사이고, 수능으로 바뀌면 재수생에게 불리하다는 얘기가 많이 있었으나, 오히려 재수생에게 유리한 면이 많았다고 했다. 나와 달리 재수를 한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소위 모두 명문대에 합격을 했다. 아차 싶었다. 내가 더 공부는 잘했는데 그래서 내신도 더 좋았는데. 그렇게 친구들이 재수를 해라 너무 아깝지 않냐 나중에 후회한다며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꼬셨는데, 첨엔 듣다가, 재수가 좋은 니들이라 해라, 얼마나 재수하며 재수가 좋은지 보자며 결국엔 그들을 멀리 하기까지 한 내가 아니었던가.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당구의 재미로 인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고, 내년에라도 휴학계를 내고 삼수를 해야 하나? 지난 1년 정신없이 놀았는데, 다시 고3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그 시간들을 버텨 낼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