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의 진짜 사나이가 되어, 30개월의 기나긴 공군 복무를 마치고 드디어 제대를 했다. 동기들과 함께 근처에서 설렁탕으로 아침을 먹고 아쉬움을 뒤로하며 헤어졌다. 그토록 기다리던 시간이었기에, 미처 동기들과 헤어짐의 순간이 줄 아쉬움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하긴 그 어느 누구 의지할 곳이 없는 삭막한 곳에서 서럽게 눈물을 흘린 시간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근데 난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10개월 전 병장을 달면서 좀 여유가 생겨 밤마다 내부 독서실에서 영어공부를 해 오던 참이었다. 편입을 하기 위해서. 내가 가고 싶은 학교와 전공으로 가기 위해서. 그 지긋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험. 제대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 볼 참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가방을 챙겨 나왔다. 영등포에 있는 독서실 총무 자리 인터뷰를 제대 날짜에 맞추어 잡아 두었다. 어차피 공부는 해야 하고, 부모님께 용돈 받기도 죄송하고, 시험까지 남은 3-4개월 목숨 걸고 해 보려고.
고개를 연신 좌우로 흔들며 독서실 주인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오늘 아침에 제대를 하고 점심에 독서실 총무자리 인터뷰를 왔다고?
왜? 그동안 못 본 친구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이트도 가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하고 싶은 거 많지 않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뭔가 의심을 하는 눈치이다. 당연하지. 제대하는 날 이렇게 나름의 목표를 갖고,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근데 인생에 공짜는 없으니까.
No Pain No Gain이라는 말도 있잖아.
의심의 눈초리를 한 아름 받으며, 군대이야기, 10개월 전부터 편입을 목표로 매일 밤 영어와 씨름한 이야기. 이렇게 나의 얘기를 계속 들으시더니, 이제야 나의 사연에 공감 버튼을 누르시며
"언제부터 나올래? 온 김에 오늘부터 할래?"
그래도 그건 아니다. 제대 첫날인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내일부터 나와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오늘부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독서실 총무 알바를 구하고, 남은 4개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미친 듯이 했다. 오전에는 편입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밤늦게 까지, 가끔씩 운이 내 편일 때는, 다음날 아침까지 독서실 총무 일을 하며 치열하게 처절하게 했다.
편입선발 기준은 영어 80%와 면접 20%로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고, 영어야 잘은 못하지만, 좋아하니까 자신은 있었다.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못 당하니까. 난 영어를 좋아했고, 즐겼고, 추가로 미친 듯이 하니까 그 누가 당하랴. 하지만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단 2명을 뽑는데, 300명 이상이 지원을 했으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편입 시험 당일, 예상대로 영어시험은 잘 본 것 같다. 아주 잘 본 거 같다. 80 문제 중 기껏해야 1개,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2개 정도 틀렸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되려나? 이제 남은 건 면접.
근데 질문이
“지금 IMF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데 IMF가 온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다행이다. 예상했던 질문이다. 그러나 영어 시험에 몸의 모든 근육과 신경을 쏟아부은 후유증인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생각나는 대로 답변하자니 앞 뒤가 꼬여 시작을 어디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뭔지 불안하고, 찜찜하고,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인 나의 무지가 다 뽀록 날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처음부터 진실되게 솔직하게 얘기를 하자라는 생각이 스쳐 가면서
“아 제가 군대 말년부터 편입을 목표로 영어만 죽어라 했습니다. IMF 이런 거 관심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대신 합격한다면 그때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방귀인지. 이게 면접에서 할 말은 아닌데,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입 안의 세치 혀를 통해 내가 내뱉은 말은 교수님들의 귀에 제대로 꽂힌 듯하다. 하두 어처구니가 없으셨는지, 이렇게 너무 솔직한 친구는 처음이네 라는 반응으로 교수님 3분이 웃으신다. 좋은 징조냐? 어이없는 웃음이냐? 자세히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이다. 으이구. 다음 질문이다.
“그렇게 영어만 좋아하면 영문과를 가야지 왜 경영학과에 지원을 한 겁니까?”
요런 건 또 내가 잘하지.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경영과 영어는 떼려야 뗄 수가 없고........ 술술술…."
내가 생각해도 답변을 잘했다.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그다음 이어지는 질문에서도 막힘이 없었다.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 뒤에는 한 개의 그림자가 아닌 두 개의 그림자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결과와 상관없이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의 그림자. 다른 한편에는 좀 더 잘할걸. 아쉽다는 씁쓸함의 그림자. 그래도 다행인 건 두 놈 모두 지푸라기 라도 잡은 심정으로 합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결과 발표일, 아직까지도 그 두 놈의 그림자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누가 이길까? 그 당시에는 인터넷 뭐 이런 게 잘 안 돼 있어서, 전화를 하거나, 학교에 직접 가서 대자보로 확인을 해야 했다.
결과는
불! 합! 격!
기대를 한 내가 잘 못이다. 인터뷰를 그렇게 하고선.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응원했던, 간절히 합격을 바라던 두 놈이 결국에는 모두 졌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공 없는, 준비 안된 상태에서의 진실함은 허상이자 그냥 허공 속에 외침일 뿐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낸 내공에 밀도라는 색깔이 입혀지고, 그 위에 진실함이 더 해 질 때 진짜가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게 대기자 첫 번째 란다. 그 의미는 합격한 2명 중 한 명이 입학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합격이라는 얘기다. 와. 그래도 그게 어디냐 300명 넘는 지원자 중 3등이라니. 이렇게 라도 그동안 애썼던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오늘부터 기도를 빡시게 해야 할까 보다. 특별새벽기도, 금식기도. 둘 중 한 명이 입학하지 않도록.
결국엔 간절히 바라 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대 초반인데, 벌써 3번의 실패다. 그 기나긴, 험난한 인생길에서 뭐 이런 일에 실패라는 고귀한 이름을 붙이냐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중에 이러한 실패 들이 모여 성공의 밑거름이 되든지 아니면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든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실패는 실패다. 단 인생의 실패가 아닌, 그 인생을 채워가는 수많은 점들 중 하나인 편입의 실패.
그리고 다시 가기 싫은 학교로의 복학. 뭘 해야 하나, 남은 2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또다시 원점이다. 아니 원점에서 2-3발짝 뒤에 서 있는 기분이다.